이명박 회고록 논란 점화
<국민,동아일보,경향신문 회고록 입수>
한중관계 격상 뒷얘기건의했던 류우익, 후일 中대사로 “역사의 이치가 그렇게 되겠습니까?”
2012년 1월 10일 중국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원자바오 당시 총리가 북한과 관련해 남긴 말이다. 28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당시 원 총리는 “저는 북한의 젊은 지도자(김정은)에 대해 잘 모른다”며 “그러나 우리는 북한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원 전 총리에게 “내년이면 우리 둘 다 은퇴합니다.
(반면) 북한은 젊은 사람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앞으로 50∼60년은 더 집권할 텐데 걱정”이라고 답했다. 이 전 대통령의 우려에 대한 원 전 총리의 답변이 바로 ‘역사의 이치’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중국 지도자가 북한의 장래를 두고 그리 오래 참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의미의 발언을 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적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말한 ‘북한 붕괴론’과 맥이 닿아 있다고 해석했다는 얘기다.
2008년 5월 30일 중국 쓰촨 성 지진 피해지역을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 이 전 대통령은 “피해상황을 보니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해 보였다”며 “서울에 있는 한승수 국무총리에게 전화해 추가 지원을 지시했다”고 회고했다. 이 전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된 ‘사건’으로 자신이 중국 쓰촨 성 대지진 현장을 방문한 일을 꼽았다. 이 전 대통령이 2008년 5월 중국 방문 당시 쓰촨 성 대지진 현장을 찾은 것은 류우익 대통령실장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당시 여진이 계속돼 안전상 우려가 있었지만 한중 관계를 실질적으로 격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고 류 실장의 건의를 적극 수용했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후진타오 당시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 직후 열린 만찬에서 전격적으로 쓰촨 성 방문을 제안했다. “후진타오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만류했다”고 회고록은 적었다. 쓰촨 성 방문 일정은 그렇게 즉석에서 추진됐다. 후일 류 실장은 주중 대사에 임명됐다. 류 주중 대사는 2008년 10월 중국이 한국과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데 대해 중국 지도부에 고마움을 나타내자 중국 지도부는 “쓰촨 성 대지진 때 이 대통령이 우리 국민을 안아준 것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2010년 5월 28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한 원 전 총리에게 이 전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 현장에서 발견한 어뢰 잔해 사진과 북한이 제작한 어뢰 설계도 사진을 보여주며 “북한이 올바른 길을 가도록 중국이 인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북한, 정상회담 대가로 100억달러 이상 요구”
북한이 이명박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 100억 달러가 넘는 거액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은 또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직접 또는 중국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해 왔던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이 전 대통령은 첫 번째 국정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이 같은 내용을 털어놨다.
28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회고록에 따르면 2009년 11월 개성에서 열린 우리 측 통일부와 북한 측 통일전선부의 실무접촉에서 북측은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내용이라며 3장짜리 합의서를 제시했다. 북측이 제시한 문서에 의하면 남북정상회담 조건으로 우리 측이 옥수수 10만t, 비료 30만t을 비롯해 아스팔트 건설용 피치 1억 달러어치를 제공하고 특히 북측의 국가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를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이 전 대통령은 기술했다.
앞서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단으로 온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가 처음 정상회담을 제시할 때부터 요구해온 조건과 동일했다고 이 전 대통령은 설명했다. 이에 임 전 장관은 “합의서를 써준 적은 없다”면서도 “김 부장이 제시한 회담 내용을 수정해서 제 사인을 했다. 이러이러한 내용을 논의했다는 것이지 합의문은 아니다”라고 회고록에 밝혔다.
또 김기남 비서는 이 전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저희 장군님께서는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이 잘 실천되면 앞으로 북남 수뇌들이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말씀하셨다”고 인사한 뒤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북한이 먼저 남북정상회담 의사를 내비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며 “전임 정부 시절 두 차례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모두 남한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또 천안함 폭침 사건이 터지고 4개월 뒤인 2010년 7월 북한의 요구에 따라 국가정보원의 고위급 인사가 방북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기존에 우리가 제시한 원칙 이외에도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면서 “그러자 북측은 쌀 50만t의 지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국무총리실이 자원외교 총괄지휘” 책임전가
이명박 전 대통령(74)은 4대강 사업 논란과 관련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한국이 세계 금융위기를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빨리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은 28일 경향신문이 전문을 입수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알에이치코리아)에서 “세계 금융위기가 들이닥쳤을 때 우리가 신속히 4대강 사업을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을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한국수자원공사의 부채 누적과 22조원의 천문학적 예산 투자 등 4대강 사업을 둘러싼 ‘혈세 낭비’ 비판에 대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투자’로 반박한 것이어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특히 회고록의 상당 부분을 외교 사안에 할애하면서 자화자찬으로 일관한 반면, 4대강 사업, 자원외교, 광우병 파동 등 재임 중 ‘내치 실패’에 대해선 대부분 야당과 당시 여당 내 친박계 의원들의 책임으로 비판해 파장이 예상된다. 회고록은 오는 2월2일 출간된다.
이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나온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 결과에 대해서도 “내가 대운하를 만들기 위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벌였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이라면서 “감사원의 비전문가들이 단기간에 판단해 결론을 내릴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 전 대통령은 또 한반도 대운하가 좌절된 원인으로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들의 ‘반대’를 지목했다.
이 전 대통령은 “대운하 사업은 국회 예산 통과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 일부에서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라며 “17대 대선 때 치열한 당내 경선 과정에서 반대편에 섰던 의원들이 그 중심에 섰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자원외교 부실 논란과 관련해 “국내외 복잡한 현안은 내가 담당했으며 해외 자원개발의 총괄지휘는 국무총리실에서 맡았다”고 밝혔다. 초대 국무총리로 한승수 총리를 임명한 이유도 특히 자원외교 부문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원외교 총괄 책임을 사실상 총리실 쪽으로 넘긴 것이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시 자원외교의 장밋빛 성과를 줄곧 강조했다. 그는 2012년 12월14일 해외 자원개발 성과 보고대회에서 “해외 자원개발에 종사하는 여러분들은 단순한 경제활동이기보다 국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입장에서 자원은 경제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 안보와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해외 자원개발 과정에서 비리가 있다면 철저히 조사해 관리자를 엄벌하면 된다”며 “이런 문제를 침소봉대해 자원외교나 해외 자원개발을 죄악시하거나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주장했다.
재임 시절 남북이 수차례 비밀 접촉을 통해 정상회담 성사 직전까지 간 사실도 확인됐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12월5일 북한 보위부 고위급 인사가 서울에 와서 실무협상에서 정상회담에 합의했으나, 2011년 초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이 북측 인사가 북으로 돌아가 공개처형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지방선거 쟁점이 된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에 대해선 “민주당은 무상급식을 보편적 복지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이를 ‘무차별 복지’ ‘정략적 복지’라 생각했다”고 비판했다.
이전대통령의 회고록이 아직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이에대한 내용을 입수해 접한 사람들은 “진실은 남이 객관적으로 그리고 후대의 역사가 판결하지만 너무 자의적인 자화자찬 아닌가? 불리한 것은 숨기고… 시종일관 ‘남 탓’이다. 역사를 위한 기록인지, 무엇을 피하기 위한 꼼수출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들이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