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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가족 상봉행사 2차 첫날인 23일 오후 금강산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김사분(왼쪽)씨와 김영순(오른쪽)씨가 북측 언니 김태운(79)씨를 안고 오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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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첫 단체상봉 이어 환영 만찬서 재회의 기쁨 나눠
(금강산=연합뉴스) 공동취재단·장용훈 기자 = "아버지!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6·25 전쟁 때 젖먹이였던 남궁봉자(61) 씨는 이산가족 2차 상봉단 357명의 일원으로 23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 상봉행사에서 북쪽의 아버지 남궁렬(87) 씨를 만나 60여 년 만의 꿈 같은 재회의 시간을 가졌다.
금강산 면회소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하는 것은 2010년 11월 이후 3년 4개월만이다.
남궁 할아버지는 "저 알아보겠어요?"라고 묻는 딸의 질문에 "못 알아보겠다"고 말하며 "너의 엄마는?"이라며 남쪽의 아내 소식부터 물었지만 5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대답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북한에서도 결혼해 남매를 둔 남궁 할아버지는 미안함에 차마 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이날 동행한 조카들에게 남쪽 형제의 소식만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딸이 모든 것을 용서하듯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얼굴을 대고 "엄마가 아버지 많이 기다렸어.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고…"라고 하자 "진짜 나한테 과분한 사람이었다"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또 이번 상봉에는 해외에서 거주하다 가족 상봉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가족들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남편을 따라 성을 바꾼 미국 국적의 김경숙(81) 씨는 오빠 전영의(84)씨를 만났고 최정수 씨는 언니 정애(80) 씨를 만나려고 캐나다에서 태평양을 건너 상봉에 참가했다.
경숙 씨는 오빠를 만나 오열하며 "엄마가 오빠 나가시고 대문을 안 잠그고 살았어요"라고 하자, 영의 씨는 "어머니! 내가 언제 올지 몰라 대문을 안 잠그고 살았단 말이요…"라며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금강산에서는 남쪽의 동생 박금화(78), 추대(71), 금순(65) 씨는 전쟁 전에 출가했다가 생사를 알지 못하던 큰언니 계화(82) 씨를 만나 네 자매가 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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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가족 상봉행사 2차 첫날인 23일 오후 금강산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임종석씨가 북측 오빠 임종수(80)씨를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허리 수술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상봉에 참가한 금화 씨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큰 언니만 전쟁통에 사라진 것을 평생의 한으로 생각하고 우셨다"며 "이제야 비로소 네 자매가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북쪽의 형 김재곤(84) 씨를 만난 장곤(80) 씨는 재작년 10월 버스에 치이는 교통사고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이번이 형을 볼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금강산을 찾아 상봉에 참여했다.
또 이번에 나오는 북쪽 상봉 대상자의 상당수는 의용군에 의해 끌려갔다고 남쪽 가족들이 주장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북쪽의 동생 박운철(81) 씨를 만난 운성(85) 씨는 "6·25 때 의용군으로 끌려갔다"며 "우리는 의용군으로 끌려간 사람은 100% 죽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운철 씨는 전쟁참전 훈장 등을 가져와 자랑하며 평양에 거주하며 화물 수송일을 하고 있다고 형에게 자랑했다.
누나 조매숙(82) 씨를 만나려고 이번 상봉에 참가한 돈방(69) 씨는 "6·25 당시 우리는 강원도에 있었는데 누나 둘이 북한군 간호사 자격으로 끌려갔다고 들었다"며 과거를 회고했다.
60여 년 만에 만난 남매는 "이렇게 보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이날 저녁 7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남측 주최의 환영 만찬이 진행돼 남북한 가족들이 한자리에 앉아 60여년 만에 음식을 함께 나누며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상봉 이틀째인 24일에는 금강산호텔에서 '개별상봉'과 '공동중식',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이어지며, 마지막 날인 25일 오전 9시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끝으로 2박3일간 6차례, 11시간에 걸친 만남을 마감하게 된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2/23 19:1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