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놓고 “애국(愛國)"?
'박근혜 정권, 하성용 비위첩보 알고도 KAI사장 임명 강행' 의혹
하성용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이 KAI 임원 시절 비위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2013년 청와대가 이를 알고도 하 사장 임명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정치권과 검찰 등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2013년 4월께 하 사장이 KAI 경영관리본부장 시절 횡령 의혹에 연루됐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관련 조사를 벌였다. 하 사장이 전무급인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있었던 2007∼2008년 수출대금 환전장부를 조작하고 노사활동비를 몰래 빼돌리는 등의 수법으로 십억여원대 비자금을 조성하는 데 관여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었다.
하성용 KAI 사장
청와대 조사 당시 성동조선해양 대표이사로 있었던 하 사장은 KAI 사장으로 내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민정수석실이 관련 의혹의 사실관계 확인을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KAI는 2013년 5월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하 사장을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방산업체인 KAI는 당시 금융 공기업인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이 지분 26.7%를 가진 최대주주였다. 비위 의혹을 덮고 사장 임명을 강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민정수석실은 이후 하 사장의 비위 의혹 조사를 중단하고 관련 자료를 검찰에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당시 하 사장 관련 검증을 진행하다가 다 확인이 안 되니까 이후 검찰에 자료를 넘겼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하 사장을 비롯한 KAI 임직원의 횡령 등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오랜 기간 내사해오다 최근 증거인멸이나 관련자 직접 조사의 필요성 등이 높아졌다고 판단해 본격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제보나 감사원의 수사의뢰 내용만으로 수사에 들어간 건 아니다"라며 "그동안 KAI를 상대로 충분히 내사를 진행해왔다"고 말했다.
검찰, KAI 증거인멸 정황포착
한편 검찰은 수백억원대 원가 부풀리기와 하성용 대표의 횡령·비자금 조성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19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박찬호 부장검사)는 지난 14일 경남 사천의 KAI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다수 직원의 컴퓨터에 데이터 삭제전용 프로그램이 설치된 것을 확인했다. 이 삭제 프로그램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무작위로 생성한 데이터를 수차례 덮어쓰기 하는 방식으로 전에 있던 데이터를 복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레이저' 프로그램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없어진 옛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2010년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압수수색에 대비해 이레이저 프로그램을 가동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검찰은 2015년 감사원의 수사의뢰 이후 지속적인 내사를 받아오던 KAI가 최근 직원들에게 삭제 프로그램을 나눠주고 사용하게 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회사 차원의 조직적인 증거인멸 시도와 관련된 것인지를 파악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KAI에서 삭제전용 프로그램을 대량 구입해 증거인멸에 나선다는 첩보가 입수돼 압수수색을 나가게 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검찰은 KAI 압수수색 때 확보한 하드디스크 복사본을 대상으로 디지털 증거 분석(포렌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복구 작업을 통해 KAI 임직원들이 이 삭제 프로그램을 실제 사용했는지, 사용했다면 어떤 자료들을 없애려 한 것인지를 파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닷컴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