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잡을 판도라 상자 열리나?
청와대, '박 정부 문건' 54일 만에 발견
과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잡을만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인가? 청와대는 서류상자 5개 분량, 300종의 박근혜정부 시절 민정수석실 문건을 지난 3일 이전 정부 민정비서관실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54일 만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4일 청와대 브리핑에서 “해당 비서관실은 이전 정부에서 민정 부문과 사정 부문이 함께 사용하던 공간으로 현 정부 들어 민정 부문 쪽만 사용해 왔다”며 “문건이 발견된 캐비닛은 사정 부문에 놓여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캐비닛은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민정비서실의 인원이 보강되어 공간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캐비닛을 정리하다 자료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이 들고 있는 문건은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보이는 문건"이라고 밝혔다. 탄핵 정국 등 어수선한 상황에서 문서 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채 방치됐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박 대변인은 지난 3일 발견된 300종의 문건에는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보이는 자료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3년 1월 생산된 것으로 보이는 자료 1건도 사무실의 책상 서랍 뒤쪽에서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에 아직도 빈 사무실이 많다”며 “빈 사무실에 인원이 배치되고 정리를 해나가는 중에 발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5명 내외가 쓰는 사무실 하나에도 개인 캐비닛을 포함해 20여개에 가까운 캐비닛이 있다”며 “캐비닛을 다 열어보고 점검하는데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린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민정비서관 사무실이 인원 배치가 제일 늦게 됐다”고도 덧붙였다. 정권 교체 직후 발견한 문건을 정무적 판단 등으로 늦게 발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 3일 발표한 문건을 왜 11일이 지나서야 발표했느냐는 문제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공식 논평에서 “청와대 브리핑 내용에 대한 보다 명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필요하다”며 “지난 3일 해당 문건을 발견했음에도 14일인 오늘까지 문건에 대해 함구하다 갑작스럽게 오늘에 이르러 공개한 것에 어떤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것인지 의아스럽다”고 밝혔다.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는 “공개된 문건이 300건이라는데 성격 규명이 필요하다”면서 “문건 공개 시점이 오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검찰에 제출하는 것이 더 현명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문건 발견 이후 법리적 검토 등을 거치느라 발표가 늦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가 해당 문건을 지난 3일 발견한 이후 열흘 넘게 지나서야 발표한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이 있어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등) 법리적, 내용적 검토가 필요했다”면서 “시간이 걸렸고 해외 순방으로 많은 (청와대) 인력이 해외에 나가 발표를 오늘에야 할 수 있었다. 전부 내용 파악이 끝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자료 특성상 소수 인원이 검토할 수밖에 없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문건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오해를 받을 수 있어 검토가 끝난 직후 곧바로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나 정부가 주요 언론 발표 등을 일요일이나 월요일 등 주초에 발표하는 것을 감안하면 금요일인 14일 오후에 문건 입수 사실을 공개한 것은 자료 300건의 파악이 끝나자마자 발표를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국정농단 수사·재판 '2막' 예고-우병우·정유라 새 변수
한편,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1심 재판이 후반전으로 접어든 가운데 검찰의 후속 수사와 공소유지에 중대 변수가 될 추가 단서가 쏟아져 향후 수사·재판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주에만 굵직한 발표가 두 차례나 이어졌다. 먼저 감사원은 지난 11일 2015∼2016년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에 위법 및 부당 행위가 있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관세청 관계자들을 고발 및 수사 의뢰했다. 앞서 이뤄진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롯데와 SK에 면세점 추가 면허를 발급한 과정의 특혜를 파헤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감사 결과는 롯데가 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업권을 빼앗겼는지 근본 원인 규명에 방점이 있다.
이번 감사 결과는 2015년 두 차례에 걸친 '면세점 대전' 전반 과정을 살펴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국정농단 재판에서 검찰의 논리를 다져주는 의미가 있다. 이에 더해 감사 결과는 향후 수사를 확대할 중요 단서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요 경제 부처에 "롯데에 강한 워닝을 보내라"고 추가 지시하는 등 롯데의 면세점 사업권을 박탈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시가 집행되는 과정에서 고위 관료들의 직권남용 등이 드러난다면 종전에 처벌받지 않았던 이들의 재조사가 불가피하다.
14일에는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 민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며 사본을 검찰에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특검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하지 못해 확보에 실패한 자료가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가 검찰 손에 들어온 셈이다. 공개된 부분만 봐도,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와준 대가로 뇌물을 수수했다는 검찰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건이 삼성 뇌물 재판 등에서 증거로 쓰이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 증거능력과 증명력을 인정받아야 해 법원이 얼마나 받아들여 줄지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특검과 검찰은 혐의사실을 뒷받침할 간접 증거로 삼아 대대적인 공세를 펼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추가 수사에도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청와대가 밝힌 이 자료의 생산 시기(2014년 6월∼2015년 6월)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청와대 근무 시기와 겹쳐, 우 전 수석에 대한 추가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된다. 마침 박상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우 전 수석의 수사를 두고 "철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과거 편향됐거나 미진했다는 평가를 받은 수사를 재검토할 의사를 밝힌 상태다. 여기에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돌연 태도를 바꿔 특검과 손을 잡은 상황도 검찰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고 있다.
정씨는 변호인단 몰래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어머니 주장을 뒤집는 증언을 했다. 변호인단과는 연락을 아예 끊었다. 변호인단은 '정씨 수사'라는 칼을 쥔 특검·검찰의 '증인 회유'가 의심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농단 재수사 가능성을 시사하고, 특검팀 파견검사이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발탁되는 등 검찰 안팎에서 무르익던 재수사의 흐름은 그동안 롤러코스터 같은 반전을 거듭했다.
검찰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 수첩을 추가로 확보하고 감사원이 문화체육관광부 감사를 통해 김종 전 2차관을 수사 의뢰하는 등 검찰이 재수사의 방아쇠를 당길 명분을 쌓는 듯했다. 그러나 검찰이 두 차례나 청구한 정씨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이재용 부회장 재판부가 안 전 수석 수첩을 뇌물의 직접 증거로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위기가 찾아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와중에 이뤄진 감사원 감사와 청와대의 문건 공개, 정유라씨의 변심 등으로 재수사와 재판 흐름에 다시 전환점이 찾아올 가능성이 커져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스포츠닷컴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