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 '출구'가 안보인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소비성향 더 하락할 가능성 크다’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 경제 잠재성장률은 앞으로 2%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향후 5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대 중반으로 위축되고 2020년에는 1%대로 낮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소비성향 하락은 장기성장률 저하에 대한 예상과 기대수명 증가로 가계가 일생에 걸친 소비 스케줄을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 같이 예측했다.
2000년대 중반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수출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면서 우리 경제를 이끌어간 까닭에 소비 역할에 대한 중요성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기 침체와 함께 중국 등 개발도상국과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제 수출이 경기를 주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내수 서비스산업 육성을 통해 소비가 성장을 끌어가는 방향으로 구조개혁이 필요하지만, 소비는 더욱 부진해지고 있어 이런 구조변화를 힘들게 하고 있다. 한국경제에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고 있다.
얼어붙는 소비심리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경제성장률은 0.3%로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민간소비는 0.3% 감소했다. 더 큰 문제는 눈으로 보이는 경제지표보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가 훨씬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소비 심리가 얼어붙고 있다. 한은이 발표한 지난달 현재생활형편 소비자동향지수(CSI)를 보면 ▲올해 5월 93 ▲6월 90 ▲7월 89로 둔화되고 있으며, 현재경기판단 CSI도 같은 기간 79에서 65로, 다시 63으로 주저앉고 있다.
CSI 기준선은 100으로, 이 수치가 100 미만이란 것은 소비자들이 느끼는 부정적인 경기판단이 긍정적인 대답보다 많다는 의미다.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응답이 많을수록 기준선 100을 넘어서게 된다. 실제로 6월 카드승인금액이 레저타운(-43.6%), 종합병원(-13.8%), 대형할인점(-6.2%), 교통(-0.6%) 등 일부 업종을 중심으로 전년 대비 감소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의 한 선임연구원은 “소비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우리 경제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며 “2012년 이후 민간소비 증가율은 3년 연속 1%대에 머무르면서 경제성장률을 크게 밑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올해 상반기 중에도 민간소비는 1.5% 성장에 머물러 지난해보다 성장세가 더 떨어졌다”면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라는 충격 요소가 있었지만 저유가·저금리 호재에도 민간의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못한 것이 소비부진의 주요인이다”고 분석했다.
소비부진의 배경에는 경제의 성장잠재력 저하, 기대수명 상승, 불확실성 증가 등이 꼽힌다. 국민들이 기대수명은 늘어나는 데 비해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미래에 벌어들일 소득이 그만큼 줄어들 것으로 판단하고, 지금부터 소비를 미리 줄여 노후에 대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요확대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공적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늘리고, 단기적으로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서 ‘노후 불안’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내수서비스 육성해야”
가계경제만 위축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기업들이 바라보는 경기인식도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usiness Survey Index·BSI) 조사 결과, 8월 종합경기 전망치는 89.6으로 기준선 100을 하회했다. 기준선 100에 5개월 연속 못 미치고 있다.
전망치를 부문별로 살펴보면 내수(91.7), 수출(93.0), 투자(95.7), 자금사정(97.1), 재고(103.3), 고용(95.6), 채산성(93.8) 등 전(全) 부문에서 부정적으로 전망됐다. 재고는 100 이상일 때 부정적 답변으로, 재고과잉을 뜻한다. 7월 실적치도 88.4로 기준치 100을 하회했다. 실적치를 부문별로 보면 내수(90.1), 수출(93.2), 투자(96.5), 자금사정(96.1), 재고(102.9), 고용(97.7), 채산성(91.5) 등 모든 부문에서 역시 부진했다.
홍성일 전경련 재정금융팀장은 “이번 종합경기 전망 BSI는 89.6으로 메르스의 직접적 영향이 있던 지난달(84.3) 보다는 높아졌으나 기준선을 여전히 밑돌아 기업의 부담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2분기 저점에서 3분기 반등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의 조속한 집행과 투자활성화를 이끌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올해 2분기 기업실적 발표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3분기에도 상장회사들의 실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에 의하면 3곳 이상의 증권사가 실적 전망치를 낸 코스피 상장기업 178개사의 지난 7일 현재 3분기 영업이익 평균 전망치(컨센서스)는 33조4914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개월 전과 1개월 전의 컨센서스와 비교할 때 각각 5.57%와 1.24% 축소된 수준이다.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2개월 전에는 35조4670억원으로, 1개월 전에는 33조9128억원으로 각각 추산됐다. 이처럼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수년간 서민경제와는 별개로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국내기업의 경영실적마저 위축되는 상황을 타개하는 해결책으로 내수서비스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소비성향도 제고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효용을 높일 수 있는 서비스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면 사람들의 소비욕구를 높임과 동시에 경제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점을 타개 하려면 여가 관광, 헬스 케어 등 앞으로 수요가 크게 불어날 여지가 있는 분야에 규제 완화 및 세제 지원 등 정부 정책을 집중하고, 공급 측면에서 시장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