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누가 뭐라고 해도 나답게'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가수 솔비(본명 권지안·30)가 연예인으로 산 지난 8년은 참 녹록지 않았다. 2006년 그룹 타이푼으로 데뷔해 예능 프로그램에서 솔직하고 거침없는 언변으로 주목받자 '드센' 여자란 꼬리표가 붙었다.
그런 이미지가 덧입혀져서인지 악성 댓글과 여자 연예인으로는 참담한 구설도 따라다녔다. 성형 사실을 솔직하게 밝히자 악성 댓글에 시달렸고 솔비와 닮은 여성이 나오는 음란 동영상이 퍼져 2011년 경찰 수사 끝에 유포자가 처벌받기도 했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인 지난해에는 연예인 성매매 루머 명단에 이름이 거론됐다.
솔비는 3년 전부터 찾아온 슬럼프를 치유하기 위해 그림을 배우고 글을 썼다. 그림 실력을 평가받으며 '화가 권지안'으로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연 그는 다음 결과물인 책을 출간했다. 에세이 '누가 뭐라고 해도 나답게'다.
최근 청담동에서 '작가 권지안'으로 만난 그는 지난해 루머와 관련해 "꿋꿋하게 버티며 왔는데 '내 시련이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란 생각을 했다"며 "서럽고 속상하고 억울해도 버텼는데 그게 무너지는 느낌이었고 마음이 지치더라"고 토로했다.
그렇기에 책에는 솔비가 지난 시간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마음을 다스린 20대의 아픔과 희망이 빼곡하다. 이 글들은 슬럼프를 이겨내면서 세상에 대한 시각이 긍정적으로 바뀔 즈음부터 일기장과 휴대전화 메모장, SNS에 쓴 걸 모았다.
키워드로 나눠 '나에게 더하는(+)' 꿈·도전·목표·배움·관계, '나에게 빼는(-)' 눈물·한계·20대, '나에게 곱하는(*)' 사랑·이별·그리움, '나에게 생각하는(…)' 극복·치유·가족 등으로 정리했다.
'누구에게나 콤플렉스는 있다/ 그 콤플렉스를 숨기면 치부가 되지만/ 세상 밖에 꺼내면 꿈을 만들어주는 밑거름이 된다 (중략) 새로운 꿈은 콤플렉스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23P)
'하나씩 점을 찍다 보면/ 그 점들이 모여/ 꼭짓점을 이루고/ 빛나는 날이 있을 거야/ 그날을 위해!'(186P)
그는 "내 진심을 쓰다 보면 나처럼 힘든 시기를 겪은 누군가에게, 삶이 무료한 사람들에게 공감되고 힘이 될 것이란 생각으로 용기를 냈다"고 웃어 보였다. 그래서 출판사 편집장에게 글을 매만지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수준 있게, 거창하게 쓰지 못해도 어설픈 게 나의 있는 그대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답게'란 제목도 직접 붙였다.
"어린 시절부터 무척 약했고 눈물이 많았어요.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에 강박이 있었고 집안 환경 탓에 성공도 해야 했죠. 살아남고자 절 지켜야 했고 강해 보이려 하니 '센 캐릭터'가 됐어요. 절 포장하며 산 거죠. 요즘 많이 듣는 말이 '방송에서 본 것과 다르다'는 거예요. 그런데 전 이 말이 슬퍼요. 마치 '지금이 더 나아요'란 뜻 같아서 그때의 제가 안쓰럽고 미안해요."
그러나 그는 천방지축이던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자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지 지금의 나는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조금 더 채워졌을 뿐"이라며 "예전의 나를 이상하게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답게'란 표현도 이젠 누군가를 위해 포장하는 삶이 아니라 여린 내 모습까지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책을 쓰면서 마음의 기둥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예전엔 사랑, 관심 등 뭐든지 받고 싶은 게 많았다면 이젠 음악, 글, 그림 등을 통해 얻은 배움과 감동을 나눠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간 그림으로 기부 전시를 한 것도 이때문이다.
"어린 시절 꿈인 가수가 됐고 제 또래에 비해 많은 돈도 만져봤고 관심도 받아봤죠. 꿈이 실현됐지만 반복되는 스케줄 속에서 '난 뭐지?'란 생각을 하면서 절 욕하는 악플이 보였고 한때는 그 원인을 외모 탓으로도 돌려봤어요. 혼자 떠안고 있던 고민을 그림과 글로 풀어내고 극복하면서 제가 가진 걸 나누는 삶을 살고 싶어졌어요."
그는 마음이 건강해지기 위한 노력 중 기억에 남는 일로 2012년 한 달 가량 부산, 속초, 광주 등지를 돈 나 홀로 전국 여행을 꼽았다. 한동안 악플로 대인기피증에 시달릴 때 직접 경차를 운전해 떠난 도전이었다.
그는 "설악산 등반 때 정말 죽을 것 같은 순간 쉼터가 나오고 사람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며 자신이 이때 쓴 글을 펼쳐보였다.
'위기는 내리막이 아니에요/ 위기는 오르막을 오르던 중 지나가는 태풍을 피하는 순간이에요 (중략) 태풍이 지나고 나면 화창한 맑은 하늘이 다시 옵니다/ 그때 다시 천천히 한 걸음씩/ 삶의 계단을 오르면 돼요.'(138P)
기사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산에서 만난 일행들과 횟집에서 회식도 하고, 테디 베어 박물관에서 만난 아기 엄마와 사진을 찍으며 함께 구경도 다녔다. 특히 재래시장을 둘러보며 느낀 게 정말 많았다고 한다.
"초반에 혼자 다니는 게 창피했어요. 그런데 한 재래시장에 젓갈을 사러 갔을 때 할머니가 '서울에서 온 예쁜 아가씨'라며 절 전혀 모르시더라고요. 순간 '내가 뭐가 잘났다'고 모자에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는지 부끄러웠어요. 제 안에 스스로 갇혀 산 거죠. 하하."
이 과정을 글로 옮기며 마음이 예전보다 단단해졌기에 이번 루머도 빨리 털어낼 수 있었다.
그는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3일은 누워 있었다"며 "그러나 힘들다는 핑계로 게을러지는 게 더 싫어 털고 일어났다. 지금은 직장인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평일에는 어디든 나간다. 일요일에는 직장인처럼 집에서 쉰다. 직업이 연예인일 뿐 솔비와 권지안의 삶을 이끌어가는 법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남의 시선 탓에 체면 차리며 무모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그는 비싼 밴을 타던 시절보다 일터에 직접 차를 몰고 다니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소속사가 없지만 오는 3월 음반도 낼 계획이고 현재 소설도 집필하고 있다.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회 제안도 받았다. 뜻한 삶이 톱니바퀴처럼 물려가는 것이다.
"취미로 시작한 것들이 조금씩 결실을 보고 있어요. 물론 이렇게 주목받은 것도 연예인이란 직업 덕이죠. 하지만 아직은 모든 게 어설퍼요. 그래서 계속 도전해야 합니다."
페이퍼북. 240쪽. 1만5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4/01/20 08:1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