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고조선관계연구회 30돌…단행본 7권 발간에 특종 발굴도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주일대사관에서 강제동원 명부가 대거 발견된 것을 계기로 일제강점기 민족 수난사가 재조명 받는 가운데 30년간 생업에 종사해가며 징용사 등 일본내 한인사(史)를 연구해온 재일 한인들의 '풀뿌리 연구회'가 눈길을 끈다.
일본 효고(兵庫)현의 재일한인 2,3세들로 구성된 '효고조선관계연구회(약칭 효초켄·兵朝硏)' 회원들은 지난 17일 현내 한 식당에서 30주년 기념식을 조촐하게 열었다. 모임에 도움을 줘온 일본인 교사 등 30여명도 초청했다.
모임은 '효고현 내 재일 코리안 역사, 한반도와 일본의 교류사를 연구·조사해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재일 코리안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한다'는 목표로 1983년 11월 발족했다. 그 후 30년간 매월 세번째 목요일마다 모임을 열어 효고현에서 살다간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나갔다.
모임의 원년 멤버이자 현 회장인 서근식(63)씨는 "'효고현의 동포사, 즉 아버지의 역사를 조사해 기록에 남겨서 2,3세들에게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으로 30년전 모임을 결성했다"며 "민족으로서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조상들이 어디서 구체적으로 어떤 고생을 하고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소개했다.
비록 조국은 갈라져 있지만 이 모임은 '회원의 사상, 신앙, 소속 단체를 묻지 않는다'는 규약에 따라 현재 회원들은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재일민단) 쪽 4명,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쪽 3명이 어우러져 있다. 연령대도 20대 후반에서 60대 후반까지 다양하다.
매달 열리는 모임에서 회원들은 각자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한다. 역사연구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모임 차원에서 정치활동과 사회운동은 하지 않기로 했고, 역사문제에 집중하면서 시사문제는 취급하지 않았다.
회원들은 각자 생업에 바쁜 사람들이다. 회장인 서씨는 소 부속물 도매상을 가업으로 경영하고 있고, 다른 회원들도 물리 치료사, 노무사, 사법서사 등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쉬는 날마다 징용 노동자들이 일한 광산, 지하공장 등 현장과 도서관을 찾아다녔고, 교포 1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영업자인 서씨의 경우 약 20년 동안은 한달에 단 하루 쉬는 날을 쪼개 연구에 투자했다.
전업이 아닌 '아마추어' 사학자들이지만 이들의 연구 성과는 눈부시다.
연구 결과들을 모아 '효고와 조선인(1985년)' '광산과 조선인 강제연행(1987년)', '지하공장과 조선인 강제연행(1990년)', '재일조선인 90년의 궤적-속(續) 효고와 조선인(1993년)', '근대의 조선과 효고(2003년)', '효고의 대지진과 재일한국·조선인 (2009년)', '효고와 조선인3(2013년)' 등 7권의 단행본들을 펴냈고 2개월에 한번씩 회보 '효초켄'을 냈다.
또 1990년께 일본 군국주의 시절 전투기를 생산한 니시노미야(西宮) 지하공장에 3천명 가량의 조선인이 징용돼 강제노동한 사실은 효초켄이 발굴한 '특종'이었다. 이들은 산속 지하에 만든 공장 입구의 콘크리트벽에 한자로 '조선국 독립'이라는 글귀를 적어 놓은 것까지 찾아내 지역 신문에 제보했고 결국 대서특필됐다.
서씨는 모임이 30년간 명맥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 최대의 원군으로 일본인 교사들을 꼽았다.
그는 "일본학교에 다니는 한인·조선인 학생들을 돕는 '외국인회'라는 일본 교사 조직이 있는데, 거기 소속된 교사들이 효초켄이 펴낸 책을 전폭적으로 사서 읽고,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쳤으며 연구를 위한 현장 방문에도 동행했다"고 전했다.
서씨는 아베 정권의 퇴행적 역사인식과 일본 혐한단체들의 활동을 보면 "화도 나고 힘도 빠지지만 언론보도를 통해 소개된 연구결과를 보고 '고맙다', '고생했다'고 격려해주는 동포들의 전화를 받으면 힘이 솟는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20 06: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