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터만 40여개 동, 8세기 전반 창건 추정 유물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사역(寺域) 규모로는 익산 미륵사 터나 경주 황룡사 터를 능가한다는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가 고려시대에 어떤 위상의 대규모 사찰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조사 성과가 나왔다.
법천사지에 대한 연차 학술발굴을 진행 중인 매장문화재 조사기관 (재)강원고고문화연구원(원장 지현병)은 법천사 중심사역으로 추정되는 Ⅱ구역에 대한 올해 8차 조사 결과 고려 중기에서 조선 전기에 이르는 시기에 만든 40여 개 동의 건물터를 확인했다고 20일 말했다.
조사단은 "이런 건물 숫자는 우리나라 사찰 건물터 중 최다"라면서 "법천사가 고려 왕실의 후원과 지방 호족과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지속하면서 조선전기까지 법상종(法相宗)의 중심으로 번성한 사찰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 건물터는 평면 배치 양상을 보면 구역별로 일정한 숫자의 건물이 구역을 이루는 다원식(多院式) 가람 배치를 보여준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일부에서는 관아 건물을 연상시키듯 좌우에 딸린 부속채인 익사(翼舍)를 거느린 대형 건물터도 확인됐다.
나아가 대형의 사각형 우물터와 개방식 배수시설, 석등 하대석으로 추정되는 연화대석, 탑과 공양보살상을 안치한 지대석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드러났다.
이번 조사에서는 법천사가 언제 창건됐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8세기 전반 통일신라시대 인화문 토기 조각과 당대(唐代) 월주요에서 생산된 청자 조각, 높이 5.6㎝인 9세기 말-10세기 초 고려 초기 금동불입상, 고려 중기 법천사 전성기의 고급 청자, 송대(宋代) 수입 자기와 송나라 동전, 법천사 중심건물에 사용된 대형 치미 등의 유물이 수습됐다.
연구원은 "앞으로 법천사가 가장 번창한 시기인 고려 중기와 그런 세력을 어느 정도 유지한 조선 전기까지 시기별 각 건물터에 대한 정밀조사가 진행되면 법천사의 창건에서 폐사에 이르기까지의 변천사를 살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형 금동불입상 |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20 11:16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