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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호 "음악인의 낭만 누린 삶, 때론 지금도 낯설죠"

posted Nov 1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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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음반 '첫사랑' 발표…선후배들과 왕성한 음악 교류

"내년 영화감독 도전…프랑스로 그림 여행 떠날지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첫사랑을 노래하는데 나이는 전혀 관계없어요. 늙은 노래, 젊은 노래가 없듯이 음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니까요."

'낭만 가객'인 싱어송라이터 최백호(63)가 환갑이 넘은 나이에 애틋한 첫사랑을 고백했다. 최근 발표한 싱글 음반 '첫사랑'에서다.

 

여의도에서 만난 그는 "마누라와 30년 살다 보니 탈출해야겠는데, 지금 바람은 날 수 없으니 첫사랑이나 생각하자는 것"이라며 농담부터 건넸다.

 

자작곡인 '첫사랑'은 '그집 앞'을 연상시키는 가곡 풍의 멜로디에 '아쉬워 작은 가슴 어째지 못해 아팠던, 이제는 멀어진 세월 그리운 첫사랑~'이란 시구(詩句) 같은 노랫말이 담겼다. 따뜻한 솔이 차오른 그의 목소리는 상념에 젖게 만들기 충분하다.

 

"중학교 1학년 입학식 날 부산으로 통학하는 기차 안에서 콧날이 오똑하고 눈이 크고 얼굴이 하얀 단발머리 소녀를 봤어요. 3년간 가슴앓이를 하느라 공부도 안 했죠. 말 한마디 못해보고 밤마다 보내지 못하는 편지를 썼어요. 그 덕에 지금 가사를 쓸 수 있나 봐요. 하하."

 

그는 천성적으로 부끄러움 많고 소극적이었다. 스스로도 "지금 내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여전히 내가 있는 자리가 낯설다. 가끔 무대에서 '다른 사람의 운명에 들어와 있지 않나'란 느낌도 있다"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부산 기장군 좌천 출신인 그는 딱히 가수가 되겠다는 꿈이 없었다. 군에서 건강상의 문제로 제대하고 삶이 막막하던 시절, 친한 친구의 매형이 운영하는 부산 서면의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했고 1주일 만에 윤시내의 '열애'를 작사한 배경모 씨에게 스카우트된 계기로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1977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데뷔한 이래 36년을 가수로 살았다. "90%의 운과 10%의 태평스러움 덕"이라고 했지만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은 그의 왕성한 활동을 보면 겸손일 뿐이다.

 

그는 새 앨범을 꾸준히 내면서도 6년 넘게 라디오를 진행했고 갑자기 화가로 변신해 그림 전시회도 열었다. 2009년에는 연기 도전도 화제가 됐다.

 

그는 "새로운 일에 대한 흥미가 많다"며 "한 자리에 머무르는 타입이 아니다. 복이 많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삶 자체가 역마살이 강해 한 가지를 꾸준히 못 한다"고 웃었다.

 

그러고는 훌쩍 어딘가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깜짝 발언'도 했다.

 

"라디오를 6년간 하면서 어디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포화 상태가 됐어요. 음악을 하다가 그림을 10년간 그렸고 기초가 없으니 한계에 도달하자 다시 확 때려치웠죠. 이후 가수로서 열심히 살다 보니 다시 프랑스 남부로 떠나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어요. 그곳은 자연 빛이 무척 좋거든요. 이미 마음의 결정은 했는데 마누라가 제가 몇 년간 놀까 봐 불안해하네요. 하하."

 

말 그대로 지난 몇 년간 최백호는 가수로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지난해 10월 기타리스트 박주원 등의 후배들과 작업한 월드뮤직 앨범 '다시 길 위에서'를 냈고 올해는 아이유, 에코브릿지의 앨범에도 목소리를 보탰다. 아이유는 최백호와 '아이야 나랑 걷자'를 듀엣 한 뒤 "선생님과의 작업에서 충격받았다. '지금처럼 노래하면 안 되겠구나'라고 진정성에 대해 고민했다"고 존경을 표시했다.

 

그는 이들과의 작업은 의도적인 교류라기보다 인연에서 비롯됐을 뿐이라고 했다.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연을 맺은 박주원의 앨범에 피처링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박주원의 기획사 뮤지션들과 '다시 길 위에서' 앨범을 작업했다. 에코브릿지를 소개해준 것도, 아이유와 듀엣 한 것도 박주원이 제안했다.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진 셈이다.

 

"성격상 자연스러운 게 좋고 사람에게 다가가는 템포도 느려요. 후배들과 인연을 맺어도 산울림의 김창완 씨처럼 술 한잔 편히 하지도, 밥 한번 따로 먹지도 못해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있는 건지, 정이 없는 건지…. 하지만 인연을 맺으면 그 사람과 쉽게 끝나진 않아요. 구창모, 배철수 씨와는 20년 넘게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씩 보니까요."

 

후배들과의 작업은 힘들었지만 많은 걸 배운 경험이었다. 젊은 작곡가의 작업 방식을 통해 새로운 공부를 했고 자신이 가진 다른 면도 발견할 수 있었다.

 

"전 음악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어요. 피아노 연주도 엉터리이고 기타로 곡을 작업하는 정도죠. 후배들에게 곡을 쓰는 방법, 리듬을 택하는 감각 등을 배웠으니 앞으로 좋은 싱어송라이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흔 살이 되면 빅 히트곡 하나는 내겠죠?"

 

이처럼 후배들과 접점이 있는 중견 가수들은 꽤 있지만, 그보다 윗세대 선배를 챙기는 가수는 드물다. 그는 ㈔한국음악발전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최근 1960년대를 풍미한 한명숙, 안다성, 명국환의 신곡 앨범을 기획했다. 이들이 신곡을 낸 건 50년 만이다.

 

그는 "난 마지막으로 그분들과 닿아있는 세대"라며 "한 시대를 뚜렷하게 보낸 분들이 새 노래가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내가 끊임없이 앨범을 내는 것도 신곡이 가수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금사향, 손인호, 오기택 등 원로 선배 열다섯 분의 신곡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음악발전소는 각계의 기부를 받아 원로 음악인들의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무대에 설 기회가 없는 인디 밴드의 공연을 후원한다. 그는 "나도 무명 시절이 있어 이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최근에는 자신의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작곡해준 최종혁의 첫 앨범 프로듀서도 맡았다. 최종혁과는 1975년 무명 가수와 작곡가로 인연을 맺었다. 어느 날 최백호가 써둔 글에 곡을 붙여준 게 그를 세상에 알린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였다.

 

이 곡의 가사는 스물한 살 겨울에 어머니를 그리며 쓴 사모곡이었다. 그가 스무 살이던 10월 15일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누나 둘에 외동아들인 그에게 어머니의 기대는 컸지만 그는 중·고교 시험에 떨어질 정도로 속을 썩였다. 자신의 탓인 양 회한이 밀려와 사흘 밤낮을 울었다. 술을 마시고 부산의 한 부두를 걸으며 쓴 글이었다.

 

"(최)종혁이 형님과 술을 먹다가 '이것도 노래가 되겠느냐'고 그 글을 건넸어

요. 잊고 있었는데 며칠 뒤 곡을 붙여와 피아노 연주를 하는데 소름이 돋더군요. 어머니가 외동아들이 걱정돼 주신 선물이었나 봐요. 전 문학 공부도 안 했는데 간혹 제가 쓰는 가사를 보면 어머니가 준 능력 같아요."

 

그는 올해 조용필의 '바운스'가 울려 퍼지는 등 중견 가수들의 활약이 반가웠다고 했다. 앨범의 히트보다 만드는 과정의 마음이 중요하기에 60대 뮤지션도 앨범을 꾸준히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송창식 형님을 만날 때마다 새 앨범을 내라고 한다"며 "형님이 만들어둔 노래가 1천 곡이 있다는데 차라리 우릴 주던지…. 그런 형님이 있어야 후배들의 공간도 넓어지고 새로운 움직임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훌쩍 떠나고 싶다고 했지만, 그는 아직 할 일이 많아 보였다.

 

오는 20-21일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송창식, 이장희, 한영애와 함께 '낭만콘서트 사인사색(四人思色)' 공연을 앞두고 있다. 히트곡이 몇 곡 없다며 '낭만에 대하여', '입영전야', '영일만 친구', '열애' 등을 노래할 생각이란다.

 

그는 내년 영화감독에 도전할 계획도 공개했다.

 

"10년 전에 영화를 만들려다가 실패했어요. 배우도 캐스팅했는데 사기를 당해 돈만 날리고 촬영도 못 했죠. 내년에는 제작을 위한 여러 조건이 익어가니 도전해보려고요. 과거 드라마에 출연한 것도 제작 현장을 배우기 위해서였죠. 시나리오 제목은 '미사리'인데 그곳에서 노래하는 무명 가수의 슬픈 얘기입니다."

예술의 경계를 넘어 유영할 수 있었던 건 음악인의 낭만을 누린 덕이다.

 

그는 "음악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라며 "음악의 낭만 안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서두르지 않았고 1등보다 3등의 자리가 좋았다. 가수로 어려워지면 매달리지 않고 다른 곳을 찾았다. 그래서 지금의 내 길 위에 서 있다"고 웃어보였다.

 

 

mimi@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18 06:1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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