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무료 '힐링 사랑방' 운영하는 의사 김흥모씨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정신과 전문의 김흥모(53) 씨가 매주 월요일 저녁 향하는 곳이 있다. 대학로에 있는 서울연극협회 사무실이다.
지난 3월 그는 이곳에 '심리치유 힐링사랑방'을 열었다. 마음이 아파 찾은 연극인들을 무료로 진단·처방해 회복을 돕기 위해서다. 월요일마다 그는 수원에 있는 병원 문을 닫고 부리나케 퇴근해 이곳에서 연극인들을 만났다.
최근 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씨는 "연극인인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길을 가겠다는 의미"라며 "그 길목에서 내가 지닌 힘을 조금 나누어 보태고자 이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협회에서 사랑방을 연지 8개월 남짓 하지만, 실제 그가 대학로에서 연극인 상담을 시작하기는 8년 전 일이다.
지인을 통해 상담이 필요한 연극인을 만나기 시작했고, 정신과 치료를 통해 호전되는 사례들을 보면 절로 힘이 나 꾸준히 이 일을 이어왔다.
5년 전, 지금은 유명인이 된 배우가 연습 중 공황발작이 왔다는 전화에 헐레벌떡 공연 연습실로 찾아간 적도 있었다.
"당시 그 배우는 모노극을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극중 인물 성격이 너무 강한 나머지 정신적으로 감당하지 못했죠. 일단 급하게 약 처방을 했고요. 이후 몇 차례 상담 치료를 통해 회복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가 연극과 연을 처음 맺기는 고교 2학년 때였다. 당시 한 무명극단이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공연한 '햄릿'을 보면서다.
연극을 공부하고 싶어서 연극영화과에 지원하려 했지만, 주위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1980년 연세대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대신 단과대 연극 동아리 '세란극회'에 들어가 예과 시절 내내 '혼을 불태워' 활동을 했다.
1년에 연극 200여 편을 볼 정도로 열성을 다한 시절도 있었고, 극단 실험극장 정기공연 작품을 번안하는 등 기성극단 사람들과도 교류를 이어왔다.
급기야 7년 전에는 온 가족을 이끌고 대학로로 아예 이사를 했다.
그는 연극을 가까이하면서 인간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됐고, 그런 배움을 토대로 정신과 전문의의 길을 갈 수 있었다고 했다.
"저에게 연극은 굉장한 시너지를 가져다줍니다. 제가 정신과 의사가 된 것도 연극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지금은 전문 분야인 정신과 상담만 진행하지만, 앞으로 연극인을 위한 의료 지원 활동을 본격화할 생각이다.
우선 '연극인의료생활협동조합'(가칭)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실제 이런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협회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연세대 의대 동문회에도 생협의 취지를 전했고 이들도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수술비 문제로 맹장염 수술을 못 받고, 진료비 부담 때문에 독감에 걸려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연극계 친구들의 상황은 그에게 피부로 와닿는 현실이다.
그래서 그의 꿈은 "연극인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술인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아직 취약하기에 지금 개인이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19 07:4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