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김용판 무죄, 권은희 모해위증죄로 검찰조사 불가피
2012년 18대 대선 직후 1년 넘게 나라를 뒤흔들었던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 축소·은폐 사건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29일 김용판(57)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특정 후보자를 반대 또는 지지하려는 의도로 김 전 청장이 여러 지시를 한 것인지 여부 등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 확정 판결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 전 청장은 2년 1개월 만에야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축소 은폐 혐의를 벗었다. 대구시장 출마를 꿈꿨던 김 전 청장은 후배의 ‘폭로’로 발목이 잡혔고, “정치에 뜻이 없다”던 폭로의 장본인 권은희(41)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지난해 7월 정치인으로 변신해 ‘금배지’를 달았다.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41) 의원은 시종일관 김 전 청장의 수사 외압·축소를 주장해왔다. 상부 압력을 폭로한 권 의원은 “(야당은) 나를 이용하고 싶겠지만 나는 ‘너는 누구 편이냐’는 낡은 사고방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라고 했다. 야당 한 의원이 ‘광주의 딸’이라고 추켜세우자 “그런 말 꺼내지도 말라. 차라리 ‘경찰의 딸’로 불러주면 좋겠다”고도 했다. 자신의 순수한 뜻을 훼손하지 말라는 취지였다. 권 의원은 전남대 법학과를 졸업해 사법시험을 거쳐 2005년 7월 15일 경정 특채로 경찰에 들어왔다. 여성 사시 출신으로 경찰 특채에 합격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권 의원의 폭로는 1심과 2심은 물론 대법원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고법은 “김 전 청장이 부당한 외압을 행사했다는 권 과장의 진술은 다른 여러 경찰관의 진술과 배치돼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권 의원은 1심에서 무죄가 나자 경찰 신분으로 스스로 기자회견을 자청해 “충격적인 재판 결과”라며 법원을 공격했고, 2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자 사표를 냈다. 정치에 뜻이 없다던 권 의원은 불과 9일 만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7·30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보은(報恩) 공천’ 논란이 벌어졌다.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김 전 청장은 회고록 발간 등을 통해 재기를 노리고 있다. 그는 이날 “사필귀정이다. 격려와 믿음이 그간 느꼈던 억울함과 분노와 고통을 극복케 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한 그루의 나무로는 숲이 되지 않는다’라는 말의 의미를 그간 절감했다”며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역사 앞에 낱낱이 밝히겠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공격을 지렛대 삼아 국회의원이 된 권 의원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 전 청장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면서 모해위증(謀害僞證) 혐의로 고발된 권 의원은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앞서 시민단체가 “권 의원이 김 전 청장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한 증언에 대해 1심과 2심 법원은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의도”라며 고발했다. 검찰은 김 전 청장이 최종 무죄가 확정됨에 따라 조만간 권 의원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