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정 “내 입은 지퍼-열면 놀랄 것”? 채널A와 통화
16일 오후 11시 40분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H병원에서 체포된 박관천 경정(48·)은 체포되기 한 시간 전 채널A와의 통화에서 “비밀을 지키고 있는 데 대한 회의감이 든다”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언젠가 폭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박 경정은 “내 입은 ‘자꾸(지퍼)’다”라는 표현으로 말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그런 민감한 일들을 다 시켰지. 남자가 그거(비밀) 못 지키면 안 되는데 요즘은 점점 이게(비밀을 지키는 일이)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심경의 변화를 보였다.
박관천 경정
그는 ‘정윤회 동향’ 문건 작성을 조 전 비서관이 지시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말하지 못한 진실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그는 “이렇게 (진실을 함구)하는 게 대통령에 대한 충성일진 모르지만… 10년 20년 후에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박 경정은 ‘정윤회 문건’의 진실과 관련해 “남자가 어떤 일을 끝까지 함구하기로 했으면 지키는 것이 도리”라면서도 “국민들이 진실을 알고 속이 후련해지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내가 말할 날이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번에 나온 (정윤회) 문건의 내용, 수사 과정에서 있었던 일, 문건 작성 경위 등을 이야기하면 국민들이 놀랄 거다. 내가 시작과 종착이었으니까 민감한 사안을 가슴속에 쥐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정수석실 회유 의혹을 받고 있는 한모 경위(44)에 대해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연락할 수도 있지. 연락 왔다는 것 가지고 저렇게 떠들고 난리면 나 같은 사람은 가슴이 터져 죽었게? 내 가슴, 입 속에 담겨 있는 것이 1억 배가 넘는데…”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박 경정은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말하지 못한 진실이 있다는 점을 드러내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그는 통화 말미에 사건 진행 과정과 관련해 “아직 전반전도 아니다. 오픈 게임이다. 물바가지는 한번 새기가 힘들지 한번 새기 시작하면 그 바가지는 깨진다. 누군가 둑이 뚫렸다고 하지 않았느냐”라며 청와대 문건이 대량으로 유출돼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검찰, 청와대문건 작성·유출 동기, 막바지 수사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수사가 막바지로 향해 가면서 검찰은 문건을 왜 만들었고, 유출·유포한 동기는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지난 1일 수사를 개시한 뒤 2주일여간 이른바 '정윤회 문건' 내용의 진위를 따지는 한편 청와대에서 빼돌려진 다량의 문건들이 어떻게 옮겨졌는지를 추적했다. 정씨와 청와대 비서진의 비밀회동 의혹을 골자로 한 '정윤회 문건'은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 박지만 EG 회장 미행설을 담은 문건 역시 최근 조사에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내용으로 가닥이 잡혔다.
유출 및 유포 과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 밖으로 반출,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에 몰래 보관하던 것을 정보1분실 소속 한모 경위가 빼낸 뒤 복사했고 최모 경위가 언론사 등에 유포한 것으로 파악됐다. 남은 주요 과제는 '범행 동기'의 규명이다. 문건을 반출한 박 경정과 이를 복사한 한 경위, 외부에 유포한 최 경위는 모두 경찰공무원이다. 부담을 떠안은 채 위법 소지가 있는 일을 단행한 이유가 지금으로선 불분명하다. 정보 분야에 종사하는 경찰의 성향에 비춰 자신의 활동배경에 대해선 입을 꾹 닫을 가능성도 크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감찰·동향 정보를 다뤘던 박 경정은 업무의 일환으로 문건을 작성했다고 진술했을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가 '박지만 미행설'을 공문서 형식도 아닌 문서에 적어 박 회장 측에 건넨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동생인 박 회장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출세를 도모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상급자였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박 경정의 문건 작성 및 반출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수사의 마무리 단계에서 과제로 남아 있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이는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 등 7인회가 문건의 작성·유출을 주도했다는 청와대 특별감찰 결과를 검증하는 작업과도 맞물려 있다. 문건을 반출한 박 경정이 외부 유포에는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7인회는 실체가 불분명해졌지만 조 전 비서관의 사건 관여도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 중이다.
문서를 빼돌려 복사한 혐의를 받는 한 경위와 이를 언론사 등에 건넨 것으로 지목된 최 경위가 각각 왜 그랬는지를 규명하는 것도 검찰의 몫이다. 상부의 지시나 교감이 있었는지, 경찰 조직 내 다른 인사들 중 관련 사실을 알고 있던 이들이 있었다면 묵인했는지 등도 함께 밝혀야 할 사안이다. 이 부분은 최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검찰은 유출 문건 내용을 보도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세계일보 기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법리 판단을 내려야 한다. 세계일보 측이 문건 내용을 진실로 믿을 만한 이유가 충분했는지가 명예훼손 여부를 가릴 핵심 쟁점이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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