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공전, “바보들아 문제는 선진화법 때문이야”- 스스로 자업자득 <정치특집>
국회공전, 무엇이 문제인가? 추석연휴 내내 국민들은 ‘뭐하나 되는 것이 없다’, ‘정치권, 국회, 이제 욕하는 것도 지겹다’,는 푸념들이 귀를 때리고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법안통과를 주문하고 외쳐도 오리무중이다. 수개월째 국회 법안통과처리 0건, 국회의원들도 사람이다. 그들도 듣는 귀는 있다. 물론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그들도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없을까? 있다. 바로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3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세월호특별법은 물론) 대통령이 처리 요청한 19개 법안도 선진화법에 따라 재적의원 60%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 상황”이라며 “야당 동의없이 물리적으로 처리가 어렵다”고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한 국회 운영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앞서 그는 전날에도 선진화법에 대해 “야당이 반대하고 협의하고 합의해주지 않으면 단 1건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국회선진화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도대체 국회선진화법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국회운영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인가. 선진화법은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이나 안건 처리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2012년 제정됐다. 물론 그 동기는 좋았다. 하지만 소수당이 주요 쟁점 법안 처리와 함께 민생법안을 인질로 삼으면서 악용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국회선진화법이란 무엇인가?
새누리당의 황우여ㆍ황영철ㆍ구상찬ㆍ김세연 의원, 민주당 박상천ㆍ원혜영ㆍ김성곤ㆍ김춘진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주도해 발의한 법 개정안으로, 2012년 5월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에서 국회선진화법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18대 국회 마지막 날인 2012년 5월 2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국회선진화법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국회의장 직권상정 제한, 안건조정위원회 설치, 안건 자동상정 등을 골자로 하고 있는 법안으로 2012년 5월 30일 19대 국회 임기 개시일에 맞춰 시행됐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 법안은 과반수보다 엄격한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이 동의해야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또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요구가 있는 경우 본회의 심의 안건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는 필리버스터 제도를 도입했다.
■ 국회선진화법 주요 내용
1. 국회의장 본회의 직권상정 요건 : 천재지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상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한 경우로 제한해 쟁점 법안의 일방적인 직권상정을 원천 봉쇄했다.
2. 안건조정제 : 상임위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쟁점 법안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안건조정위) 구성을 요구하면 여야 동수로 위원회를 구성해 최장 90일간 논의할 수 있다. 조정안 의결은 재적의원 2/3의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3. 안건신속처리제 :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할 수 있는 안건신속처리제도를 두었는데, 이는 재적 과반수 요구로 발의한다. 이후 재적 5분의 3 이상이 찬성으로 가결 시 의장이 해당 안건을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하게 된다. 그러나 지정 후 각 상임위와 법사위의 심사기일을 채우기 위해 최장 270일을 기다려야 해 사실상 어렵다.
4.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원하면 최장 100일까지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는 필리버스터 제도를 도입해 합법적으로 의사일정을 방해할 수 있도록 했다. 필리버스터의 종료는 재적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국회선진화법”이란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이나 안건 처리를 막기 위해 2012년 제정된 국회법 개정안이다. 그러나 조금만 뒤집어 보거나 깊이 살피면 그 다수가 국민합의며 일종의 선의가 다수의 의지라고 해도 일부소수가 이법을 악용 한다면 얼마든지 “땡깡”정치를 할 수가 있는 법이다. 소수의견 존중을 위해 다수의 의견을 얼마든지 밟아버릴 수 있는 맹점이 이번 세월호 사태, 민생법안 통과 0건 사태로 여실히 드러나 버렸다. 다수의지 자체가 작동할 수 없어 오히려 민주주의 파괴가 되어 버렸다. 정책생산에 있어 부작용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표퓰리즘 정치의 전형이 된 것이다.
실제 선진화법은 과반수보다 엄격한 재적의원의 5분의 3(180명) 이상이 동의해야만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결국 야당의 동의 없이는 단 한건의 법안도 처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회가 정쟁 속에서 본연의 임무인 입법 기능을 상실할 경우 경제 파탄시 모든 국민의 분노는 정치권으로 향할 것이고 정치권은 국민과 국가의 역적이 될 것"이라며 "여야가 함께 세월호법은 세월호법대로 민생경제 법안은 민생경제 법안대로 분리 처리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라며 야당의 협조를 당부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각종 민생법안을 세월호특별법 처리와 묶어서 하겠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즉 세월호특별법이 재협상되지 않으면 그 어떤 다른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땡깡과 발목잡기가 가능한 것은 바로 선진화법이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선진화법을 ‘식물국회법’이라거나 ‘국회마비법’이라고 부르겠는가.
선거가 민의(民意) 표출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선진화법에 발목이 잡혀 대통령과 과반의석을 확보한 여당, 즉 민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정부와 여당이 소수정당인 야당 에 발목잡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제도다. 이런 법안은 마땅히 개정돼야만 한다.”고 정치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치권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역시 선진화법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실제 선진화법을 개정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2 동의, 즉 180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 여당 의석은 비록 거대 집권당이라고는 하지만 의석은 158석으로 22석이나 부족하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생명으로 한다. 민의가 최대한 반영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진화법은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반(反)민주 악법(惡法)’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국민의 힘으로 이를 개정하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다. 실제 ‘법률상 위헌’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 과반수의석을 가진 정당이 제출한 법안이라고 해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적은 의석의 정당이 반대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든 법안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수결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회가 날치기와 몸싸움이라는 야만적 후진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회의원 개개인의 양심에 따른 문제이지, 이를 법제화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오죽하면 모변호사가 “OECD 가입국 중에 이런 식으로 국회에 제동을 거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질책했겠는가.
여당 지도부는 이 법안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마땅히 개정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고, 야당은 그에 동의해 주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끝까지 선진화법 개정을 거부할 경우 차기 총선은 7.30 재보궐선거보다 더 가혹한 선거가 될지도 모른다. 그게 민심(民心)이자 천심(天心)이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스포츠닷컴&추적사건2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