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항소심, 내란음모 무죄, 내란선동 유죄 <정치,사회특집>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석기(52) 통합진보당 의원이 항소심에서 징역 9년으로 감형받았다. 서울고법 형사9부(이민걸 부장판사)는 11일 이 의원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는 대부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이 의원은 1심에서 내란음모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돼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 받았었다.
항소심 재판중의 이석기
재판부는 또 김홍열 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에 대해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은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와 홍순석·김근래 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은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 한동근 전 진보당 수원시위원장은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내란선동죄가 성립되려면 반드시 선동목적인 내란행위 시기나 대상이 구체적으로 특정될 필요는 없다"며 "선동 상대방이 가까운 장래에 내란 범죄를 결의, 실행할 개연성이 있다면 충분히 내란선동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란음모죄에 대해서는 회합 참석자들이 내란 범죄의 구체적 준비방안에 대해 어떤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지하혁명조직 RO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존재가 엄격하게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피고인들을 비롯한 130여명이 특정 집단에 속하고, 이 의원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질서가 존재한다는 부분까지는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지난해 5월 회합 당시 피고인들의 발언을 보면 국가기간시설 파괴를 논하는 자리였음이 명백하고, 특히 이 의원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 죄질이 가장 무겁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야 할 국회의원의 주도 아래 국가 지원을 받는 공적인 정당 모임에서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해할 수 있는 내란선동죄를 저지른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폭력적인 방안을 논의한 것은 그 자체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행위에 잘못이 없어 내란음모를 무죄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고 꾸짖기도 했다. 이 의원 등은 RO 조직원과 함께 국가 주요시설을 타격하는 방식으로 내란을 음모·선동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9월 구속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이 의원에게 적용된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이상호·조양원·김홍열씨에게는 징역 7년·자격정지 7년, 홍순석씨는 징역 6년·자격정지 6년, 한동근씨는 징역 4년·자격정지 4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게 되면 이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자격정지형의 경우 징역형의 집행이 끝난 이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16년간 선거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검찰은 "재판부가 내란음모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을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며 즉각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변호인단은 "내란음모는 무죄, 내란선동은 유죄로 판단한 것은 법리적으로 인정할 수 없고, 정치적 중압감에 대한 표현이라고 이해한다"면서 상고 입장을 밝혔다.
*항소심, 왜 이런 판단을 했나?
항소심 재판부가 1심 재판부의 판단을 뒤집고 이석기(52)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선고형량을 징역 12년에서 징역 9년으로 감형한 것은 주된 혐의였던 내란음모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내란선동 혐의는 내란음모 혐의와 엄격하게 구별해 판단하면서 내란선동 혐의를 유죄로 인정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봤다.
앞서 1심 선고 당시에는 재판부가 내란음모 혐의와 내란선동 혐의를 구별하지 않고 모두 유죄로 판단하면서 "치밀한 법리검토가 이뤄지지 못했다"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내란음모죄와 내란선동죄의 차이점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두 범죄의 기준이 될 법리까지 자세하게 구성했기 때문이다.
*내란음모 혐의 부정…"음모죄 처벌하려면 구체적 합의 있어야"
내란음모 혐의가 부정된 가장 큰 이유는 회합 참석자들에게 실제 내란죄를 저지르기 위한 구체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이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우선 형법상 '음모'가 처벌되는 경우의 법리부터 자세하게 설명했다. 현행 형법상 음모행위가 처벌되는 범죄는 극히 제한적이며 대법원 판례와 학계는 해당 범죄행위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나 모의가 있어야 음모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즉 내란음모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도 폭동행위, 주요기간 시설 파괴행위 등 내란을 구성하는 주요 범죄행위들을 언제 실행할 것인지, 무엇을 대상으로 실행할 것인지, 음모자들 중 누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윤곽이 어느 정도 특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같은 전제 하에 당시 회합 참석자들 사이에 내란을 실제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이 의원과 참석자들이 '선전전', '주요기간 시설' 파괴 등을 논의하기는 했지만 이 또한 내란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합의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검찰 측은 항소심 재판 도중 "홍순석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이 회합 전부터 내란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해왔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의심이 가는 정황은 있지만 증거가 없다"며 이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내란음모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기는 했지만) 폭력 방안을 논의한 것은 그 자체로서 사회에 해악을 끼친 것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용납될 수 없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행위에 잘못이 없어 무죄로 판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고 이 의원 등을 엄히 꾸짖었다.
*'내란선동' 혐의는 유죄…"범죄 유발만 하면 처벌 가능"
반면 재판부는 내란선동죄의 성립 범위는 폭넓게 인정하면서 이 의원 등의 내란선동 혐의는 유죄로 판단했다. 현행 형법은 내란음모·선동죄를 제90조에 함께 묶어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예비·음모죄는 제1항에, 선동·선전죄는 제2항에 규정해 엄격하게 분리해두고 있다. 다만 두 죄의 법정형은 같다. 이 때문에 내란음모죄와 내란선동죄를 구별하지 않고 일괄적인 판단을 내렸던 1심 재판부의 결론에 대해 "법리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선동은 해당 범죄행위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유발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으면서 내란음모죄의 법리와 내란선동죄의 법리를 달리 판단했다. 즉 내란선동죄는 내란음모죄와는 달리 내란의 시기나 대상,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특정해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라도 구체적으로 내란을 실행한 개연성만 있다면 성립하는 범죄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동 범죄가 처벌되지 않지만 유독 내란죄에 있어서만 선동이 처벌되고 형량까지 음모죄와 같은 것은 '타인에게 범죄 실행의 결의를 강화한 것만으로도 범죄를 실현할 위험성이 생길 경우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한반도 전쟁 발발 시기에 통일혁명 완수를 위해 대한민국의 기간시설을 파괴하자"는 이 의원 등의 주장은 내란을 직접 선동하기 위한 발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회합 참석자들이 이 의원의 발언에 호응해 '폭탄 제조'까지 논의하다가 결론에만 이르지 못한 점을 지적하며 내란행위의 실행을 결의시켰다고 보기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RO' 실체는 내란음모죄의 요건?…"상관없다"
1심 재판부가 내란음모죄의 '주체'로서 내란음모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이 된다고 판단했던 'RO'의 존재에 대해서도 항소심 재판부는 "구성요건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국가보안법에서 반국가단체구성죄 등을 처벌하고 있는데 이 조항에 규정된 법정형이 내란음모·선동죄의 법정형보다 훨씬 더 무겁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덧붙였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RO의 결성시기, 가입자, 활동내역 등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며 RO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내란음모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이 아닌 만큼 RO의 실체가 내란음모죄의 성립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날 이같은 판결을 내리면서 "양형의 적정성, 형평성, 엄정성 등을 기하기 위해 건국 이래 거의 모든 내란죄, 내란선동죄 등에 대한 판례와 법리를 참조하고 검토했다"고 강조했다. 또 "재판부 구성원들은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따라 판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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