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위안부 합의 입장, ‘인정도 파기도 아닌
애매한 봉합’
정부가 9일 발표한 12ㆍ28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입장은 안정적 한일관계와 국내 위안부 피해자들의 여론 사이에서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엔을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는 등 사실상 기존 합의를 무력화시켰으나 재협상 요구까지 나아가진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본이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한 10억 엔을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화해·치유재단 통장엔 10억 엔, 우리 돈 107억 원 중에 61억 원이 남아있다. 우리 정부가 별도로 10억 엔의 기금을 만들게 되면 일본이 보낸 돈은 쓰지 않고 그대로 남긴 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졸속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만큼 그 결과물인 10억 엔에도 손대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만 바로 일본으로 10억 엔을 되돌려 보내진 않겠다고 했다.
일방적으로 돌려주면 일본이 받을 가능성도 없거니와 곧바로 협상 파기로 간주할 텐데 우리 정부로선 현실적으로 당장 재협상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돈을 쓰지도 않고 당장 돌려주지도 않는 모호한 처리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본과 협의하겠다고만 했다. 노규덕/외교부 대변인은 "일본 측 반응과 관련해서는요. 앞으로 여러 외교적 접촉 계기를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한 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라고 말했고 정부는 예탁이나 UN, 스위스 등 제3의 기구에 10억 엔을 공탁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기호/성공회대 교수는 "(앞으로) 일본 측과 즉시 이것에 대해서 논의를 해서 이 돈을 돌려주든지, 아니면 제3국에 국제 공탁을 통해서 일본 정부가 갚도록 압력을 가하든지…."라고 말했는데 10억 엔이 출연된 화해·치유재단은 당연직을 뺀 이사진 8명이 모두 사퇴해 사실상 업무가 정지된 상태며 정부는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재단의 해산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일본과 국내 여론 간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지만 거꾸로 양측 모두의 반발에 직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당장 이번 조치에 대한 일본 반발이 불 보듯 훤하다. 우리 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일본 입장에선 눈속임으로 비칠 공산이 크다.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엔을 한국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는 것은 ‘일본 정부 예산에 의한 피해자 지원’이라는 위안부 합의 본질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10억엔 처리 방안에 대한 피해자 할머니들의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다”며 “일단 그만큼의 돈을 우리가 마련해두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결 같이 바라는 것은 자발적이고 진정한 사과”라며 일본 정부의 추가 조치를 요구했다. 기존 합의 외에 일본이 먼저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행동에 나서라는 것으로 이 역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ㆍ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기존 합의를 깨고 나온 것이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 무력화에 나선 것으로 일본은 판단할 것”이라며 “한일 간 외교접촉마다 일본은 합의 존중을 강하게 요구해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과거사와 한일 간 협력을 분리해 모색하겠다는 투트랙 전략도 밝혔으나 일본이 이에 호응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익명의 정부 관계자는 “한국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일본은 위안부 협상을 진행했던 아베 신조 정권 그대로”라며 “한일 간 신뢰 재구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이날 내놓은 해법에 피해자들이 얼마만큼 공감할지도 미지수다. 일각에선 외교부가 위안부 TF 보고서가 나온 지 보름도 안 된 시점에서 서둘러 입장을 발표한 데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10일 신년기자회견을 할 예정인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할 경우 외교적 파장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실제로 강 장관 역시 이날 발표에서 대내외적으로 민감하다는 이유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