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세기의 재판-1심 법원, “이재용 징역 5년” 선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법원은 25일 유죄를 인정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적용된 5가지 혐의는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국외재산도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국회 증언·감정법 위반(위증)이다. 다만 혐의별로 구체적인 공소 사실 중에서는 유죄가 인정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엇갈렸다. 법원 안팎의 법조계에서는 선고 결과를 놓고 '엄벌'이라는 평가가 대체로 많이 나오고 있다. 재판부는 특검이 주장한 여러 사실관계와 증거를 받아들였다. 형량은 혐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해졌다.
법이 정한 형량은 뇌물공여가 징역 1개월 이상 5년 이하다. 특경법 횡령과 재산국외도피가 각각 징역 5년 이상 30년 이하다. 범죄수익은닉법 위반은 징역 1개월 이상 5년 이하다. 위증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이다. 이들 법정형의 상·하한을 계산하면 이론상으로는 징역 5년 이상 45년 이하를 선고할 수 있다. 상한의 경우 형법상 '가중주의'(여러 죄 중 가장 무거운 죄에 적용되는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에 따라 이론적으로는 징역 45년까지 나오게 된다. 다만, 재판에선 법정형 그대로 선고되지는 않는다. 선고할 때에는 형량 산정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여러 요소를 고려한다.
다른 피고인의 선고 결과를 보면 이 부회장에게 상대적으로 무거운 형이 선고된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 전직 임원들의 경우 공범이지만 가담 정도나 역할 등을 고려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된 사례도 나왔다. 가담 정도가 큰 최지성 전 부회장이나 장충기 전 사장에게는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이 부회장의 경우도 재판장이 재량으로 형량의 절반까지 낮춰주는 '작량감경'을 한다면 이론상 징역 2년 6개월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그러나 법원은 작량감경 없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에 앞서 법원 안팎에서는 '유죄가 인정된다면 징역 5∼7년 정도가 예상된다'는 관측이 많았다는 점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온 셈이다. 삼성 측의 무죄 주장은 인정되지 않았다. 다만, 향후 2심에서 이 부회장 측에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처벌 형량이 가장 높은 특경법상 재산국외도피 부분에 대한 법원 판단이 그 근거다. 당초 특검은 재산국외도피 액수가 77억9천735만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이 액수가 인정되면 최소 징역 10년 이상에 처해진다. 국외도피액이 50억원을 넘으면 무기징역 또는 징역 10년 이상으로 정해져 있어서다.
그러나 법원은 혐의사실 가운데 허위 예금거래 신고서 부분(42억원 상당)은 무죄로 봤다. 도피액이 50억원을 넘지 않는 약 36억원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징역 5년 이상 처벌되는 형량이 적용됐다. 결국, 1심과 결과가 똑같다는 가정하에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까지 선고가 가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징역 3년 이하의 경우 집행유예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 측에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다는 의미다. 변호인 측은 1심 판단을 뒤집는 시도를, 특검은 중형을 받아내기 위한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법원이 공개한 이재용 판결 근거
* 이재용 승계 위한 청탁 인정…지배구조 개편은 승계 작업
재판부는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오로지 이재용의 이익을 위한 것은 아니라도 이재용의 삼성전자나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 확보를 주요 목적으로 이뤄졌음이 인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지배구조가 단순화되고 제일모직의 강제 금융지주 전환 문제가 해결된다는 점에서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 강화, 즉 이재용의 승계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합병과 관련한 신규순환 출자 고리 해소 부분도 결과적으로 처분 주식 수 감소를 초래해 지배력 강화와 관련 있다고 봤다.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에 관해서는 인적 분할과 현물 출자를 통해 삼성물산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결과가 초래돼 이재용의 삼성전자나 생명에 대한 지배력 확보에 직·간접적으로 유리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다. 이런 점들을 보면 삼성그룹에서 이재용의 승계작업을 추진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승계 작업 인식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이재용 부회장의 계열사 지배력 확보 등을 포함한 승계에 대해 정부 금융감독 당국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관심을 갖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는 '삼성 승계 모니터링'이란 기재가 있고, 민정수석비서관인 우병우의 지시에 따라 보고서가 작성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처럼 각종 현안에 대해 엄청난 양의 보고를 받는 대통령이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의 승계에 관심을 기울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런 점을 보면 대통령은 삼성 승계 문제를 인식할 수 있었고, 특검이 제시하는 바와 같은 명확한 개념은 아니어도 개괄적으로나마 이 부회장의 계열사 지배력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의 개념과 필요성을 인식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승마 지원 공모
특검이 주장한 증거에 의하면 대통령과 최서원(최순실)은 오래전부터 개인적 친분을 맺어왔고, 취임 후에는 국정 수행에도 최씨의 관여를 수긍해왔다고 재판부는 인정했다. 이 부회장과의 단독 면담에서 승마 지원에 관한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지원이 미흡한 경우 그를 강하게 질책하고 임원 교체를 요구했으며 승마 지원이 이뤄지자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삼성의 승마 지원 경과를 알고 있던 점에 비춰 대통령은 최서원으로부터 승마 지원 상황을 계속 전달받아온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독일 생활이나 승마 지원 관련 주변인들의 인사를 직접 챙기기도 했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이재용, '박근혜 요구는 정유라 지원 위한 것' 인식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정윤회 또는 최서원이 대통령 측근이라는 다수의 언론보도가 있었던 2014년 12월이나 2015년 1월 무렵엔 대통령의 승마 지원 요구가 정권 실세의 딸과 연관돼 있음을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원오(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와 소통하기 시작한 2015년 3∼6월경엔 대통령의 승마 지원 요구가 사실은 정유라 지원 요구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재판부는 봤다. 이는 곧 대통령에 대한 금품 공여와 같다고 인식하고 있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결국 대통령의 승마 지원요구가 최서원 개인에 대한 지원요구임을 이 부회장 등이 알고 있었다는 게 법원의 결론이다. 용역 대금은 코어(코레)스포츠를 사실상 1인 회사로 개인 기업같이 운영하고 지배하던 최순실씨에게 지급됐고,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됐다. 최씨가 코어스포츠를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으며, 최씨에 대한 이익 제공은 은밀하게 이뤄졌다고 법원은 인정했다.
3차례의 독대와 승마 지원 과정에서 포괄적 현안인 승마 지원에 대해 대통령이 우호적 입장을 취하고, 직·간접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대가로 금품을 지원했다고 인정했다. 즉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즉 삼성 관계자들은 승계 작업에서 대통령의 도움을 기대하고 지원 요구에 응해 뇌물을 제공했다고 재판부는 인정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은 2014년 9월 1차 독대 이후부터 정유라 승마 지원이 이뤄지는 동안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박상진 사장 등에게 대통령 요구를 전달하고, 승마 지원에 관한 포괄적 지시를 했다고 봤다. 이후 승마 지원 경위를 보고받는 등 승마 지원에 관여했다고도 인정했다. 결국 다른 피고인들과 공모해 기능적 행위 지배를 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영재센터 지원도 뇌물
재판부는 영재센터 지원의 대가 관계를 인정했다. 두 차례 독대와 지원 과정에서 포괄적 승계 현안과 관련해 대통령이 우호적 입장을 취하고 정부 부처 등에 직간접 영향을 미치는 대가 관계에 대한 인식과 양해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대통령은 1차 독대 때 빙상단체 지원을 요구했고 2차 때는 최순실씨가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전달했다. 영재센터가 사실상 최씨의 사익 추구 수단인 걸 알았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이 부회장과의 단독 면담시 지원 대상, 규모, 방식을 특정했고 1, 2차 모두 후원 계약 체결이나 후원금 지급에 관해 그룹 내 의사결정 구조의 최상위에 있는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부회장, 장충기 사장의 결정으로 신속히 집행됐다. 시기상 영재센터 지원은 승계 작업의 일부를 이루는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 고리 해소, 금융지주사 전환 등 개별 현안이 이뤄지는 시기에 이뤄졌다. 대통령의 직무 집행 공정성이 의심받기 충분하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미르·K재단 출연금, 뇌물 인정 안 돼
재판부는 미르·K재단이 최순실씨의 사적 이익 추구 수단이었고 대통령도 최씨가 각 재단을 이익 추구 수단으로 쓰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한 게 인정된다고 봤다. 미르·K재단 설립 과정과 운영 상황이 상당히 비정상이었다고도 지적했다. 하지만 직무집행 대가로서 재단을 지원한다는 묵시적 양해나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문화융성과 스포츠 활성화를 정책으로 해왔고 삼성은 매년 5천억원 이상을 다수 공익재단에 출연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대통령이 '기업에서 관심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문화·체육 재단의 출연을 요청하고, 여기에 응한 게 이 부회장 입장에서 직무집행 대가라는 인식 하에 이뤄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 부회장 등이 출연금 결정에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인 의사결정을 한 사실이 없고, 전경련에서 정해준 액수에 수동적으로 응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설명했다. 결국 재단 지원 부분은 이재용, 최지성, 장충기가 승계 작업에 대한 도움을 기대하고 뇌물을 준 것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가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겐 각 징역 4년,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규정하며 유죄 판단 근거 및 양형 이유를 밝혔다.
*삼성 피고인 5명의 양형 이유
재판부는 먼저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된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이건희 회장 이후를 대비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꾸준히 준비하던 이재용을 비롯한 삼성 임원들이 우리나라 경제 정책에 관해 막강하고 최종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에게 승계작업 도움을 기대하며 거액의 뇌물을 지급하고 삼성전자 자금 횡령, 재산 국외 도피, 범죄수익 은닉으로 나아간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국민은 헌법상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 대해서 그 권한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행사되리라 기대한다"며 "대기업에 대해서는 합법적이고 건전한 경제활동을 통해 국민 경제에 이바지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서원(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드러난 이 사건을 보면서 국민은 대통령의 직무 공정성, 청렴성에 근본적 의문을 가지게 됐고 삼성의 청렴성에 대해서도 불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과 대규모 기업 집단의 정경유착이란 병폐가 과거사가 아닌 현실이란 점에서 신뢰감과 상실감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들이 삼성을 대표하는 임원들이란 점에서 우리 사회와 경제에 미친 영향력이 크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이 거액의 뇌물을 공여하고,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했다는 점에서도 비난 가능성과 불법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대통령에게 적극적, 명시적으로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하여 뇌물을 공여했다"며 이를 유리한 양형 요소로 봤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공모해 세 차례 단독면담을 통해 이 부회장에게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요구를 했으며, 이 부회장은 승계에 관한 도움을 기대하면서 승마 지원과 영재센터 지원을 지시해 요구에 응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과정이 오로지 이 부회장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은 비난 가능성을 완화하는 요소라고 봤다.
*이재용 부회장 양형 이유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역할과 관련해 "청탁의 대상이었던 승계작업으로 인한 이익을 가장 많이 향유할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며 가장 무거운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재용은 사건 당시 삼성그룹의 사실상 총수로서 다른 피고인들에게 승마 지원과 영재센터 지원 등을 지시하고 범행을 촉진하는 역할을 지시했다"며 "실제 범행에 가담한 정도나 미친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허위 증언을 했다"고 질책했다.
다만 이 부회장이 뇌물공여 의사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통령의 요구가 있었다는 점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봤다. 재판부는 "이재용은 대통령의 적극적인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던 것"이라며 "대통령의 요구를 쉽사리 거절하거나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개별 현안을 대통령에게 청탁했다거나 그 결과로 자신이나 삼성그룹에 부당하게 유리한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고, 승계작업 추진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란 점도 유리한 양형 요소로 참작했다고 밝혔다.
*최지성·장충기 양형 이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에게는 "삼성그룹 의사 결정 구조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라며 이날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이들은 이 부회장으로부터 승마와 영재센터 지원에 관한 대통령의 요구사항을 전해 듣고 뇌물공여, 횡령, 범죄수익 은닉, 재산 국외 도피 등을 기획하고 실질적인 의사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재용이 사실상 총수로서 승마 및 영재센터 지원 등을 지시하고 각 범행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들은 이재용과 긴밀하게 연락해 각 범행이 실현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가담 정도가 상당히 무겁다"고 질타했다.
다만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은 수십 년간 삼성그룹에 몸담아온 직장인으로서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이 성공한다고 해도 직접적인 이익을 누릴 지위에 있지 않다는 점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봤다. 재판부는 "이들은 이재용이 삼성그룹의 후계자로서 자리 잡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수행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상진·황성수 양형 이유
박 전 사장과 황 전 전무에 대해서는 "승마지원 과정에서 최순실 등과 직접 교섭하며 구체적인 지원 계획을 짜고 실행했다"고 질책하면서도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은 승마지원의 실무자로서 범행에 가담한 것이고 횡령에서도 주도적인 의사 결정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핵심적인 실행행위를 했을 뿐, 전체적인 범행의 기획이나 핵심적인 의사 결정에는 관여하였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포츠닷컴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