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하루 전의 풍속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곳곳에서 '마지막 식사' 자리가 마련됐고 시민들의 기준은 다르지만 법에 저촉되는 가격의 식당들은 마치 문을 닫는 하루 전 이별처럼 울상을 짓고 있다. 27일 김영란법 시행 하루 전, 점심시간 서울 광화문 일대의 호텔 등 일부 고급 식당은 평소보다 많은 손님으로 붐볐다. 김영란법 시행 전 마지막 점심을 먹기 위해 고급 식당을 찾는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롯데호텔서울의 중식당과 일식당은 이날 점심 예약이 거의 다 찼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중식당과 일식당 예약이 평상시보다 많이 늘었다"며 "한식당은 평상시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더 플라자 호텔도 "뷔페를 제외한 호텔 레스토랑 좌석이 최근 2주 동안 90% 이상 찼다"며 "평상시에는 손님이 그보다 적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많은 공직자나 언론인 등은 점심·저녁 약속이 꽉 차 있었다. 정부서울청사 주변에 있는 식당 역시 대부분 예약이 '풀'(full)이었다. 정부부처의 공보실이나 대변인실은 이날만은 출입 기자단과 식사를 하며 김영란법이 몰고 올 사회적인 파장에 주목을 하고 있다.
한 정부부처의 공직자는 "김영란법 전에 마지막 식사를 한다는 생각으로 출입기자와 점심·저녁 약속을 잡았다"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이렇게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자리는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국회의원들도 김영란법 시행 전으로 식사 모임을 앞당겼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27일 이후 예정된 식사 모임을 앞당겼으며 골프 모임은 지난 주말까지 다 소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진석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는 김치찌개 오찬을 하거나 출입기자들과도 '청국장 점심'을 하는 등 며칠 전부터 김영란법 '예행연습'을 해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들도 10월에 예정된 약속을 앞당겼으며 28일 이후 저녁 약속을 잡는 데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27일까지 기자들과 오찬 만찬 간담회를 잇달아 잡기도 했으며 더민주는 최근 김영란법을 주도한 김기식 전 의원이 강사로 나서서 전체 의원들을 상대로 교육하며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국민의당은 김영란법 관련 지침을 의원실에 돌렸다. 김영란법 시행은 국회의 국정감사 풍경도 바꿔놓았다. 통상 국정감사가 정부부처 등 피감기관에서 열리면 국회의원은 물론 보좌진 등 관계자들에게도 구내식당 등에서 식사가 무료로 제공됐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원회가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국정감사 기간 피감기관이 국회의원 등에게 3만원 이내의 식사 제공조차 허용되지 않는다고 최근 밝히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김영란법 시행을 이틀 앞둔 지난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오전 질의를 마치고 외교부 1층 구내식당에서 '더치페이'로 점심을 해결했다. 가격은 1인당 1만원으로 외통위 행정실이 의원·보좌관 등 국정감사단 85명분 식대 85만원을 별도로 계산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도 소속 의원과 보조관들은 국회사무처 예산으로 점심과 저녁을 해결했다. 다른 정부부처 국감 장소에서도 그동안 관행처럼 제공되던 커피와 다과, 과일 등이 자취를 감췄다. 공무원들도 '몸조심'에 들어갔다. 아예 법 시행 이후로는 외부인사들과 약속을 잡지 않은 공무원들이 대부분이다. 법 시행 전인 26일과 27일에 '마지막 약속'을 '겹치기'로 잡은 이들도 눈에 띈다. 경제부처의 한 공무원은 "최근에 김영란법 시행 전에 얼굴이나 보자는 사람들이 많아 저녁을 먹고 다른 약속에도 잠깐 들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공무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세종청사 인근 식당들은 이미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직접적 타격이 현실화되고 있다. 식당 종업원 해고는 물론 임금을 줄이는 사례도 속속 목격되고 있다. 세종청사 인근의 한 복집 관계자는 "김영란법에 따라 메뉴 가격을 3만원 이하로 조정했다"면서 "비용을 줄이려면 어쩔 수 없이 종업원 임금을 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우 고깃집은 아예 종업원 수를 줄였다.
고위공직자 등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김영란법이 사회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형국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세종청사의 한 공무원은 "법의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과연 법을 제안한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이나 법을 통과시킨 국회의원 등이 법 시행에 따른 각종 문제까지 고려했는지 의문이다"고 꼬집었다.
'김영란법 시대' 권익위가 강조한 10계명
▲1회 100만 원, 1년에 300만 원 초과 금품을 받으면 무조건 처벌받아요 = 공직자 등이 동일한 사람으로부터 1회 100만 원 그리고 1년에 300만 원을 넘는 금품 등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과 무관하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의 처벌을 받는다.
▲음식물 3만 원·선물 5만 원·경조사비 10만 원을 넘으면 안 돼요= 공직자 등은 원칙적으로 직무 관련자로부터 금품 등을 받을 수 없지만, 원활한 직무 수행이나 사교·의례, 부조의 목적인 경우에 한해 3만 원 이하의 음식물, 5만 원 이하의 선물, 10만 원 이하의 경조사비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직접적인 직무 관련성이 있어 공정한 직무 수행을 저해할 수 있는 경우 가액기준 내에 있어도 음식물·선물·경조사비를 받을 수 없다.
▲학교 선생님에게는 커피 한 잔도 안 돼요= 학교 선생님에게는 음식물·선물 제공이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평소에 제공받는 식사나 선물이 학생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스승의 날에 학생들이 1만 원씩 돈을 모아 담임교사에게 선물을 하는 것도 법에 걸린다.
▲골프 접대는 무조건 안 돼요= 김영란법은 직무 관련자로부터의 골프 접대를 일종의 향응 수수로 보고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또 공직자 등이 골프회원권 소유자와 골프를 칠 때 그린피 우대 등의 할인혜택은 금품수수에 해당해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공직자 등이 정당한 그린피를 내고 골프를 치는 것은 허용된다.
▲헷갈리면 '더치페이' 하세요= '직무 관련성'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 개별 사안이 김영란법 적용대상인지 헷갈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헷갈리면 더치페이를 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권익위 관계자는 "공직자 등과 여러 사람이 식사를 할 때 n분의 1로 계산하는 게 원칙"이라고 밝혔다.
▲부정청탁을 받으면 처음에는 거절하고, 두 번째는 신고하기 = 공직자 등이 최초로 부정청탁을 받은 경우 부정청탁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이를 거절하는 의사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럼에도 또다시 동일한 부정청탁을 받으면 소속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부정청탁을 받은 공무원에 대해서는 공정한 직무 수행을 위해 직무 참여 일시중지·직무 대리자의 지정·전보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다.
▲제공자도 처벌되고, 법인도 양벌규정 적용= 누구든지 공직자 등에게 금품 등을 제공하거나 금품 제공 등을 약속하면 과태료 부과 또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또 법인 소속 임직원이 업무 관련 부정청탁을 한 경우 법인도 양벌규정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받을 수 있다.
▲부인이 받은 금품도 알게 되면 신고하세요= 공직자 등의 배우자 역시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 원, 1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을 수 없다.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준 금품 역시 공직자 본인에게 준 금품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공직자 등은 배우자가 직무와 관련해 금품 등을 받은 사실을 안 경우 신고해야 하고,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받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외부강의를 할 때는 미리 신고하고, 기준 금액만 받으세요= 공직자 등이 외부강의를 할 때는 외부강의 요청 명세 등을 소속기관장에게 미리 서면으로 신고해야 한다. 또 공직자 등이 초과사례금을 받은 경우 이를 소속기관장에게 서면으로 신고하고 반환해야 한다. 공직자 등이 신고·반환 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500만 원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외부강의 사례금 상한액은 장관급 이상은 시간당 50만 원, 차관급 40만 원, 4급 이상 공무원 30만 원, 5급 이하 공무원 20만 원이다. 단 사례금 총액은 강의 시간과 관계없이 1시간 상한액의 150%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또 사립학교 교직원, 학교법인 임직원, 언론사 임직원의 외부강의 등의 사례금 상한액은 시간당 100만 원이다.
▲부정청탁·금품 수수 신고하면 보호받을 수 있어요= 누구든지 제3자의 부정청탁을 받거나 금품 등을 수수 사실을 신고하는 경우 신변의 보호를 받고, 2억 원 이하의 포상금이나 30억 원 이하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한 공무원은 기자에게 “하루 지나면 시행될 김영란법, 원래취지대로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막기위한 법으로 개선되고 하위공직자들, 관계자들 사이에서 아예 일이 돌아가지도 않게 하거나 식당 문닫는 고용불안으로 가서야 되겠느냐? 너무 비현실적이다. 좀 액수를 상향조정 하던지, 그 외 방법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언론인, 공무원 처녀 총각들은 결혼도 못하나? 호텔에서는 선도 못보게 생겼다. 맨날 구내식당 식권 밥만 먹나? 이런 상황에서 누가 시집, 장가를 가나?
다른사람 앞에서는 청렴한 척 하고 뒤로는 별별 고급술집으로 가는 고위공직자들의 이중적 행태들도 고쳐야 한다. 국민앞에 모두 솔직하자, 아무리 그래도 서민도 못되는 천막식당에서 먹을 수 있나? 부장, 국장 직함달면 빚을 내어서라도 친구 부모문상에 10만원을 내는데 그 밑이면 욕먹는다. 고위공직자들 부정부패, 의혹 사건들은 해결하지도 않고 의혹만 부풀리는 청와대, 법원, 검찰, 국회 모두 되돌아봐야 한다. 부정부패야 일소해야 하지만 정상적인 일은 돌아가야 할 것 아닌가? 나는 아예 정나미 떨어진다.“ 라며 푸념했다.
사실 일부 특권을 가지고 3천원짜리(일반인에게는 7천-8천원) 기관 구내식당의 식권으로 먹는 밥을 먹는 기관 출입기자, 공무원들은 극소수다. 대게 서울시내에서 두사람이 점심한끼 해결하려면 아무리 허름한 식당으로 가도 3만원 이상, 소주 한잔 걸치면 4-5만원 이상이 나온다. 밥먹으면서 3만원 이상이냐 아니냐 신경쓰는 일이 얼마나 유치하고 짜증나는가? 밖에서 사람 만나는 일이 기본인 기자들에게도 너무나 비현실적이긴 하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