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대국민 사과
대법원장이 대국민사과를 하는 심각한 사법파동이 일어났다. 현직 부장판사가 업자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과 관련해 양승태 대법원장이 6일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머리를 숙인 것은 부장판사 사태를 그만큼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윤관·이용훈 전 대법원장 당시에도 사법비리로 대법원장이 대국민사과를 한 사례가 있지만, 양 대법원장은 현직 판사가 업자로부터 노골적으로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이번 사건이야말로 사법 사상 가장 심각한 비리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특히 양 대법원장은 이번 사건을 부장판사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는 법원 내부 분위기를 극도로 경계하면서 사실상 충격요법으로 대국민사과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95년 2월 윤 전 대법원장은 인천지법 집달관사무소 직원들이 경매입찰 보증금을 횡령한 이른바 '인천지법 집달관 비리' 사건으로 전국 법원장회의를 열고 국민에 사과했다. 이 전 대법원장도 2006년 8월 전국 법원장회의를 통해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구속된 후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당시 전국 법원장뿐만 아니라 전체 대법관도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사법사상 초유의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도 사법비리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부장판사가 현직에 있으면서 직무와 관련해서 금품을 받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이전 어떤 사건보다 중하다고 대법원장이 판단해서 직접 대국민사과를 하시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이 불거진 후 사법부 내에선 현직 부장판사 개인의 심각한 일탈 정도로 선을 긋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래서 양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를 만류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양 대법원장은 이런 느슨한 분위기야말로 제2, 제3의 사법비리 원흉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대국민사과를 강행한 듯 보인다.
사법부가 이번 사태를 얼마나 통렬히 반성하고 있는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동시에 판사들에게는 구성원들의 연대책임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양 대법원장은 대국민사과문에서 "동료 법관의 잘못된 처신으로 직무에 의혹이 제기될 때 그 의혹의 눈길은 자신의 직무에도 똑같이 쏟아진다"면서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자기만은 신뢰와 존중을 받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이는 모든 법관들이 직무윤리의 측면에서 상호 무한한 연대책임을 지고 있음을 뜻한다"고 밝혔다. 양 대법원장의 사과 발표가 이어지는 동안 회의장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을 비롯해 회의에 참석한 33명의 일선 법원장 등은 아무 말 없이 침통한 표정으로 양 대법원장의 발표를 들었다.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