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남자펜싱 에페 ‘대한민국 박상영 영광의 금메달’
박상영 금은 추신수의 공(功)
10일(한국시각) 10-14로 끌려가던 펜싱 에페 결승전 경기를 15-14로 뒤집으며 박상영 선수가 드디어 인간승리로 신의 영역에 도달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상영은 폭염과 짜증에 지친 국민들에게 포기를 모르는 도전정신을 일깨워주었다. 박상영과 추신수. 언뜻보면 두 사람은 아무런 인연이 없어 보인다. 굳이 찾자면 대한민국을 빛낸 스포츠 스타라는 것 정도? 하지만 두 사람에겐 연결된 끈이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매개체다.
대한의 자랑스러운 아들, 영광의 얼굴 박상영은 어린 시절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 때문에 선배들에게 펜싱 장비를 얻어 쓰면서 훈련했다. 박상영은 2014년 11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날의 가난에 대해 “(고등학교 2학년 때 당했던 부상 당시) 한 달에 100만 원에 달하는 치료비 때문에 부모님께 죄송스러워서 눈물이 났다”고 떠올렸다. 장비를 물려 쓰다보니 훈련의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을 터. 그런데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 박상영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지원을 받으면서 실력이 급성장했다.
박상영은 지난달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지원받고 새 장비는 물론, 처음으로 개인 도복을 입어봤다”면서 “한참 목마름을 느끼던 저에게 (재단은)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박상영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으로부터 지원 받은 것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였다. 추신수와 재단은 어떤 관계일까? 2011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홍보대사로 활동해오고 있는 추신수는 2014년 스포츠 꿈나무들에게 써달라며 재단에 1억 원을 기부했다.
추신수의 기부가 박상영의 훈련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된 것이었다. 추신수는 지난해에도 스포츠 꿈나무들을 위해 1억1000만 원을 쾌척했다. 추신수는 후원금을 전달하면서 “부족하나마 제 도움으로 아이들이 자립해서 꿈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면서 “더 많은 친구들이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추신수의 후원은 스포츠 꿈나무들에게 희망이 됐고, 지금의 박상영이 있는데 밑거름이 됐다. 박상영은 “후원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운동을 지속하고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영 선수 어머니 "금빛 불상이 다가오는 꿈 꿨다"
"경기가 열리는 전날 집에서 잠을 자는데 금빛 찬란한 불상이 다가오는 꿈을 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확신했어요. 스코어가 뒤지고 있는 순간에도 상영이가 역전하리라 생각했죠"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남자 펜싱 박상영(21·한국체대) 선수 어머니 최명선(51·경남 진주시)씨는 10일 아들의 금빛 승전보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아들이 결승 경기를 벌이던 시각 그녀는 진주 인근 사찰에서 평소 친분이 깊은 스님과 함께 TV를 지켜보며 응원했다.
그는 스코어가 9대 12로 뒤질 때는 은메달에 머무나 싶었지만, 역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금빛 불상 꿈에 앞서 지난 일주일 내내 가족, 친지들과 함께 집에서 잔치를 여는 꿈도 꿨는데 이것이 개꿈이 아닐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도 스코어는 더 불리하게 몰려 10대 14까지 갔다. 하지만 상대 선수 스코어는 거기서 멈췄고, 기적 같은 역전극이 시작됐다.
아주 불리한 스코어였지만 그 순간 상영이가 흔들리지 않고 이기리란 확신이 왔다고 그는 밝혔다. 특히 TV속에서 경기 중 상영이의 왼손 포즈가 평소보다 높아 이런 확신이 더 강했다고 했다. 평소 상영이 동료들이 '상영이 왼손이 높으면 반드시 이긴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올림픽 경기장에 직접 가서 응원하고 싶다고 하자 상영이가 '부모님이 경기장에 오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탓에 오히려 경기를 망칠 수 있다'며 오지 말라고 했다"고 아쉬운 마음을 나타냈다.
올림픽이 열리는 리오에는 가지 못했지만, 상영이가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기(氣)를 전하고 싶어 전국 사찰을 돌며 108배를 했다. 결승전이 열린 이날도 사찰에서 응원을 했다. 그는 진주 제일중학교 1학년 때 현희 코치의 권유로 펜싱을 시작한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10개년 계획을 세웠다고 소개했다. 고등학교 때 최연소 국가대표가 되는 것,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확보, 리오 올림픽 금메달 확보 등이었다. 그는 아들이 이런 꿈을 하나씩 이루는 모습이 너무 자랑스러웠다고 칭찬했다.
박 선수는 중학교 때부터 매일 '일지'를 기록하며 하루하루를 반성하고 훈련을 분석하며 세계 정상급 실력을 쌓았다. 2012년 9월 일지에는 '오늘 오전에는 코샘께 레슨을 받았는데 팡트를 쏠 때, 착지 될 때 버티고 끊어줘야 하는데 계속 버티지 못하고 쭉 밀어줘서 그다음 동작을 취하지 못하였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런 내용의 일지는 자그마치 10여 권에 이른다. 최 씨는 "펜싱 입문 당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비싼 장비를 제대로 사주지 못하고 기도 외엔 도움을 주지 못해 늘 미안했다"라며
"지난해 경기 때 연골판 파열 등 큰 상처를 입었을 때 너무 슬퍼 큰 소리로 울었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금메달을 딴 뒤 전화가 왔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는 "어제 전화가 왔다"며 "결승에 진출했고 꼭 금메달을 따서 가겠다고 약속하더라"고 전했다. 박 선수의 형인 상훈(24) 씨는 "상영이는 동생이지만 배울 좀이 많고 멋진 녀석"이라며 "오는 14일 예정된 단체전에서도 꼭 금메달을 따 주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