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배임수재, 횡령 구속
경영과 관련 거액의 뒷돈을 챙기고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있는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박찬호 부장검사)는 배임수재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신 이사장을 7일 구속 수감했다.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한 뒤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검찰이 청구한 신 이사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에 따르면 신 이사장은 네이처리퍼블릭을 비롯한 롯데면세점 입점 업체들로부터 매장 관리에 편의를 봐 달라는 청탁과 함께 30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면세점 입점과 매장 관리를 위해 로비에 나선 업체들은 신 이사장의 아들 장모씨가 소유한 명품 수입·유통업체 B사와 컨설팅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신 이사장 측에 금품을 건넨 것으로 파악됐다.
신 이사장은 자신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B사에서 회삿돈 4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다. 자신의 세 딸을 2010년까지 B사의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배당금이 아닌 급여 명목으로 B사의 돈을 챙겨 가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세 딸 외에 다른 직원 이름을 가짜로 기재해 놓고 신 이사장이 급여 명목으로 회삿돈을 빼돌린 사실도 파악됐다.
검찰이 신 이사장을 구속함에 따라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에서 진행하는 롯데그룹 차원의 비자금 조성 및 계열사 부당거래 의혹 수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신 이사장을 상대로 이미 드러난 개인 비리 외에도 롯데그룹의 비자금 의혹 관련 사안들을 조사할 계획이다. 신 이사장은 롯데쇼핑을 비롯한 롯데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면서 등기이사 등의 직책도 맡았다. 신 이사장이 등기이사를 맡거나 주주인 계열사들 중 일부는 위법적인 자금거래나 장부조작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 때문에 수사를 받고 있다.
신영자 이사장, 판사 앞에서 대성통곡
한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대성통곡을 했다. 이날 오전 10시 반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영장심사에서 신 이사장은 심사 중 감정이 복받친 듯 40분에 걸쳐 신세 한탄을 했다. 통곡 소리는 영장심사 법정 밖까지 들려왔다.
특히 신 이사장은 건강이 좋지 않은 아들 장재영 씨(48) 이야기가 거론된 대목에서 “아들에게 미안하다”며 흐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장 씨는 면세통상업체 BNF를 소유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고도의 경영판단이 요구되는 기업 경영이나 컨설팅을 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검찰은 “신 이사장이 BNF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운영한 여러 증거가 있다. 40억 원대 회삿돈이 임직원 급여 명목으로 빼돌려진 뒤 신 이사장의 딸들에게 가는 것을 몰랐을 수 없다”고 압박했다. 신 이사장은 오후 1시 30분경 심사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법정을 떠났다. 신 이사장은 영장심사를 앞두고 청심환을 먹으며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고 한다.
롯데가(家) 착잡, 향후 파장 신경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녀이자 신동빈 회장의 이복 누나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7일 구속되자 롯데그룹은 착잡한 분위기다. 비록 신 이사장의 비리 혐의가 '그룹과는 상관 없는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 롯데의 표면적 입장이지만 오랜 기간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던 신 이사장의 구속이 몰고올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때 신세계 이명희 회장과 함께 '유통가의 대모'로 불렸던 신 이사장은 1983년부터 롯데백화점 영업담당 이사와 상무, 롯데쇼핑 상품본부장, 롯데쇼핑 총괄 부사장 등을 거쳐 2008~2012년 롯데쇼핑 사장을 지냈다.
신영자 이사장은 롯데그룹의 현금창출원이자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성장을 이끌어온 인물이며 경쟁사에 비해 후발주자였던 롯데가 국내 유통업계의 최강자로 발돋움하도록 만든 주역이었다. 이처럼 오랫동안 핵심 계열사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해온 신 이사장이 그룹 내에서 돌아가는 내밀한 사정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는 것이 재계 안팎의 일반적 시각이다.
누구보다 내부 사정을 훤히 아는 신 이사장이 향후 검찰 조사 과정에서 구형량 감경 등을 조건으로 이복동생인 신 회장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롯데는 우려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보통 검찰은 표적으로 하는 인물의 범죄행위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그 인물을 잘 아는 피의자와 구형량 감경 등을 조건으로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신 이사장의 경우 그런 거래를 하기에 최적의 인물"이라고 말했다.
올해 74세의 고령인 데다 평생을 재벌 2세로 호의호식해온 신 이사장이 다른 어떤 인물보다도 구속되는 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란 것도 이런 관측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이사장이 자체적으로 선임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 수사 중인 사안이라 그룹 차원에서 뭐라 언급할 만한 입장이 아니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창업주인 신 총괄회장이 '철권통치'하던 롯데가 차츰 신동빈 회장 체제로 전환하면서 2012년 신 이사장이 롯데쇼핑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롯데시네마 매장 운영권을 상실하게 된 것은 롯데로서는 부담스런 부분이다. 신 이사장이 대주주이던 시네마통상과 시네마푸드가 2013년 알짜배기 사업이던 롯데시네마 매장 운영권을 빼앗기게 된 것은 당시 재벌기업의 '일감 몰아주기'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던 영향이 컸다.
그러나 이로 인해 신 이사장은 중요한 수입원을 상실하게 됐고 신 회장이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해주지 않았던 데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수익원을 상실한 시네마통상과 시네마푸드는 결국 올해 초 청산 절차를 밟았다. 지난해 신동주·동빈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던 초기에 신 이사장이 신 총괄회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과 함께 신동빈 회장을 해임하기 위한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 참석하려고 일본에 건너갔던 것도 이런 사정이 배경이 됐다.
하지만 최근 신 이사장이 신 회장 쪽에 기운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 두 사람이 '전략적 화해'를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신 이사장은 잠실 롯데월드몰 내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린 임직원 대상 콘서트에 신 회장과 함께 참석했고, 롯데월드타워 상량식에도 신 회장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최근 진행 중인 신 총괄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인 지정 관련 심리에서도 신 회장 편에 섰다.
그러나 재계 전문가들은 신 이사장과 신 회장의 이런 관계가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일시적인 것이어서 신 이사장이 필요에 따라 신 회장에게 불리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경영권 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캐스팅 보트'를 쥔 신 이사장과 모종의 거래를 했을 수 있다"며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신 회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닷컴 취재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