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획정 결국 입법시한 넘기나?
다가오는 20대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획정안 처리가 연말을 넘겨 초유의 선거구부존재 상태가 발생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현행 '3대1'에서 '2대1'로 조정하라며 올해 12월31일을 입법시한으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국회의 여야는 그간 법정처리시한(11월13일)을 넘긴 채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전달할 지역구 및 비례대표 의석 등을 포함한 선거구획정기준을 논의해 왔지만, 비례대표 의석 축소 및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여야는 이달 들어서만도 이미 7차례 당 지도부간 회동을 한 데 이어 오는 27일에도 만나 담판을 시도한다는 계획이지만, 양측의 입장차가 워낙 커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야는 그간 협상을 통해 농어촌 지역대표성 확보를 위해 지역구 의석수를 현행(246석)보다 7석을 늘리고 그 수만큼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자는 것과 지역구도 완화 차원에서의 석패율제 도입에 대해선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이 비례의석 축소의 전제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나 군소정당에게 우선의석 배정 등의 방안과 선거연령 하향 조정(만19세→만18세)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 붕괴 등을 우려하며 이를 반대하면서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여야가 선거구획정안과 경제활성화법안 등 쟁점법안 처리를 테이블에 한꺼번에 올려놓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어 선거구획정 협상이 더욱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이로 인해 선거구획정안 처리가 결국 헌재의 입법시한을 넘길 공산이 커지고 있다. 만약 연내에 획정안이 처리되지 않는다면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3대1'로 정하고 있는 현행 246개 선거구는 위헌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선거구의 근거가 되는 '선거구 구역표'가 전면 무효가 되어 사상초유의 선거구 부존재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예비후보 등록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지난 15일부터 등록한 예비후보자들의 신분도 상실되게 된다. 이에 더해 예비후보자의 선거사무소가 폐지되고, 명함배부?홍보물발송 등 각종 선거운동도 할 수 없게 된다. 정치신인들이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원천봉쇄 되는 것이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그간 선거구 획정 만큼은 직권상정을 통해 처리하겠다는 정의화 의장도 입장을 바꿀 가능성도 제기돼 이런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 의장측은 여야 합의 불발시 오는 12월31일 선거구획정안을 처리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1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내달 8일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장측은 25일 "당초 여야가 28일 본회의에서 (획정안을) 처리하자는 쪽에 의견을 모았었기 때문에 일단 28일까지 지켜볼 것"이라며 "만약 28일 본회의에서도 처리되지 못할 경우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막기 위해 획정위에 획정안 마련을 요청하고 12월31일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의장측은 다만 "여야가 합의해서 정 의장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하면 그것마저도 뿌리칠 순 없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내달 처리 가능성도 열어뒀다. 설사 정 의장이 28일 획정위에 획정안 마련을 요청한다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연말까지 처리되기가 어려워 '선거구 부존재'라는 초유의 사태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획정위 관계자는 "정 의장이 요청을 한다면 그동안 준비해 온 게 있으니 최대한 빠르게 획정안 마련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면서도 "그렇지만 획정안을 마련하기 위해선 (획정위) 전체회의를 몇 차례 열어야 하기 때문에 12월31일까지 국회에 획정안을 제출하긴 물리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연말까지 획정안이 처리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정치신인들의 선거운동 기회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유예기간'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내달 8일에도 획정안이 처리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유예기간을 줘야 한다는 부담이 뒤따른다는 지적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지난 20일 선관위 내부 회의에서 연말까지 획정안이 처리되지 못할 경우의 문제점을 보고하긴 했지만, (유예기간 부여 등) 어떤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면서 "내부 회의를 거쳐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여야가 위헌적 상황에 놓이지 않게 조속히 합의를 도출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정 의장이 직권상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원지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