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자신들이 저질러놓고 국민들이 우짜라고?
<기자수첩>
정의화 국회의장이 “현행 국회법상 일반 쟁점법안들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방법이 없다”며 청와대가 전날 현기환 정무수석비서관을 통해 요구한 노동개혁 5개 법안과 경제활성화법의 직권상정을 거부했다. 이른바 이미 제정되어 시행되는 국회선진화법(다수결 민주주의 파괴, 마비법)상 국회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어떤 법안에 대해 ‘심사기간을 지정’하고 그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은 경우 ‘바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는 의장의 권한 : 원래 법에는 이런 용어가 없다. 편의상 부름) 할 수 있는 요건은 여야 대표가 합의한 경우와 천재지변, 전시·사변 기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국회법85조)로 한정되어 있다. 현재 야당이 법안처리에 반대해 심의조차 거부하는 소위 ‘입법마비’ 상태임에도 이를 국가비상사태로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국회의장으로서 국회법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정 의장의 말은 원론적으로 백번 옳다. 더욱이 2012년 정의화 당시 취지는 좋았지만 정의화 당시 국회부의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권상정 요건을 엄격히 제한한 국회선진화법 통과를 주도한 사람들 중 일부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이다. 정 의장은 원유철 원내대표 등이 ‘직권상정 요구 결의안’을 갖고오자 이 사실을 상기시키며 5분 만에 집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국회선진화법의 단점들을 생각할 때 반대했던 사람으로써 개인적 감정은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입법자(법률전문가)로써 법이란 사법부의 법해석, 행정부의 법시행 해석과는 조금 달리 법도 살아있는 생물이기에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은 입법부가 그 개선을 위해 개정할 수 밖에 없는 노릇 아닌가? 즉 사법부, 행정부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위해 국민을 위한 정치와 입법부가 존재하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한편, 박 대통령도 “(국회는) 미래세대에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지금이라도 실행을 해야 한다”며 경제법안들 통과에 대해 국회에 요청했다. 행정부의 수반이요 국가원수로써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럴까? 아니 사실상 대통령보다 국민들이 더 답답하다. 언제 닥칠지 모를 경제위기에 대비하려면 노동개혁과 경제관련 쟁점법안 통과가 시급하다는 대통령의 발언이고 국민들도 공감하지만 대통령의 설득 리더십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국무회의는 지시만 있고 소통이 결여된 조선시대 회의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처럼 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하거나 타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거실 생각을 왜 못하실까? 야당의 내분(안철수 탈당)때문에 어렵다면 긴급 기자회견이나 대국민담화를 마련해 여론을 확산시킬 수도 있을 아쉬움이 국민들 마음속에 있다.
정 의장은 정무수석이 “선거구 획정만 직권상정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밥그릇 챙기기”라고 지적한 데 대해서도 “아주 저속하고 합당하지 않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선진화법 통과 당시의 탁월한 통찰력은 높이 사지만 현재에 이르러 정 의장이 국회선진화법(다수결민주주의 파괴,마비법) 해석을 이유로 국가와 국민들의 삶에 시급을 다투는 쟁점 법안들의 처리에 미온적인 것도 문제다. 이럴때는 정말 법문구에만 집착하는 법형식주의와 ‘악법도 법이다’는 소크라테스가 싫어진다. 정의장은 국회의장으로서 여야 협상을 압박하며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셔야 하고 입법부의 수장으로써 좁게 국회만 보실 것이 아니라 크게 국민들을 보고 국가를 생각 숙고 하시기를 바란다.
도대체 국회선진화법(다수결민주주의 파괴,마비법)을 누가 만들었으며 누구를 위해 누가 시행해야 하는가? 국민들을 위해 결자해지 차원으로 풀자면 사실상 대통령, 여야 국회의원들, 국회의장 모두 입법마비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도대체 “자신들이 일을 저지르고 도무지 풀지는 못하는 소위 얼라(어린이들)이실까?” 국민이 하도 답답해 풀려고 해도 풀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필요한 비판은 응당해야 하지만, 비판보다 더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를 놓고 서로 비판에만 열을 올리며 충돌하고 국민을 위해 저질러진 일을 풀지를 못하는 대통령과 국회의장, 가슴과 숨이 턱턱 막히게 답답하도록 여야 지도부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의 불만은 폭발직전,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