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사관앞 수요집회서 80대 남성 분신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서 80대 남성이 분신, 중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12일 낮 12시 40분께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8월 14일)을 맞이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주최한 집회가 진행되는 중 최모(81)씨가 갑자기 자신의 몸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최씨가 집회 장소 뒤쪽 제일모직 건물 앞 화단에서 분신하자 집회 참가자들이 달려들어 물과 플래카드, 소화기 등으로 불을 껐다. 당시 주최 측 추산 1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행사 추모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소나무 아래서 갑자기 연기가 나고 학생들이 소리를 질렀어요. 불이 꺼지기 전까지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머리가 아플 정도로 놀랐다. 이곳에 올 때마다 마음이 울적한데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인원들은 갑작스런 사고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최씨는 수요시위 도중 갑자기 집회참석자들이 있던 위안부 소녀상 근처 인도 뒤편 화단 난간에서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을 시도했다. 이날은 14일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세계 시민들이 함께 행동하고자 결의한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3주년을 맞아 여는 수요시위였다.
시위에 모인 2500여명(경찰 측 추산)은 연기와 함께 학생들의 비명이 들리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김모(17)양은 "같이 온 친구들이 소리를 질러 고개를 돌리니 사람 머리에 불이 붙어 있었다"면서 "그 광경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자원봉사자로 시위에 참석한 김모(18)군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니 난간 위 소나무 아래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며 "곧 주변에서 사람들이 천으로 된 플래카드로 불을 진화하고 후송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군은 "당시 단상에서 발언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혀 (사건에 대해) 눈치를 채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불을 진화했던 황우연 국민독서문화진흥회 이사는 "(최씨가) 불을 지피는 걸 보진 못했다"면서도 "너무 뜨거웠고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남자가 계속 불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가 팔부터 가슴과 배, 허벅지까지 솜을 줄로 단단히 고정시켰었다"라면서 "불을 끄기 위해 달려갔을 땐 이미 최씨가 뒹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동아리 '평화 나비' 회원 김모(20)씨는 "주위 사람들이 신속하게 진화에 나서 불은 1분 안팎으로 진화된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최씨의 분신시도가 일어난 지 약 5분 후 출동한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되기까지 시위는 잠시 중단됐었다.
김씨는 "오늘따라 시위 참가자들이 많아 차도까지 시위 장소로 사용해 구급차가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최씨가 구급차에 의해 구조된 이후 시위는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는 수요시위가 끝난 후 기자들에게 "파악해보니 광주에서 광주전남근로정신대 시민모임에서 활동하던 사람"이라면서 "수요시위에 3~4번 방문한 적이 있어 기억한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평소 감정을 드러내거나 자유발언을 하는 등 적극적인 분은 아니었다"면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면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면서 윤 대표는 "일본강점기를 경험한 최씨가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잘못된 방법으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한다"면서 "다른 분들은 절대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윤 대표는 최씨를 "시골의 선비 같은 느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빼빼 말라 샌님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면서 "수요시위 참석 후에도 부끄러워 할머니 손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고 최씨를 기억했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8) 할머니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놀랐다"면서 "수요시위에 올 때마다 마음이 울적한데 (최씨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할머니는 "현장에선 소리와 연기를 통해 상황을 알게 됐다"면서 "너무 놀라 청심환을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찰과 다수의 목격자에 따르면 당시 최씨는 무엇을 요구한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목소리를 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최씨가 따로 분신 전에 소리를 지르는 등 요구사항은 없었고 갑자기 불이 붙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편 최씨는 얼굴, 가슴 등에 3도 화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경찰은 최씨가 솜을 몸에 붙인 뒤 사각형 플라스틱 통에 미리 담아 온 시너를 몸에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한 경찰 조사 결과 광주광역시에서 이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온 최씨는 광주전남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분신한 최씨는 누구?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12일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도중 분신한 최모(80)씨는 2013년부터 관련 집회에 활발하게 참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서구에 거주하고 있는 최씨는 2013년 5월부터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관련한 집회나 재판 등에 참석하며 꾸준히 후원 등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관계자는 "너무나 안타깝다. 원래 성심이 곱고 착한 분인데 광복 70주년을 앞두고도 위안부 문제가 해결이 안되니까 그러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씨의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전남 영암에서 있었던 투쟁을 주도하셨던 독립운동가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해방 이후 좌익 운동과 관련된 부분 때문에 (최씨의 아버지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부분에 대해 평소 속상함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지방보훈청 확인결과 최씨는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등록돼 있지 않다.
최씨의 분신이 남긴 것
울분을 알만하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 어느 누구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통분의 한을 누구인들 가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특히 위안부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최씨의 분신행위는 국민들 뿐만 아니라 집회시위 참가자들도 모두 원하는 행위가 전혀 아닌 집회시위의 잘못된 일탈행위로 심하면 범죄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
법원은 경찰의 무분별한 집회·시위금지에 대해 잇따라 제동을 걸었다. 집회와 시위는 헌법에 보장된 당연한 국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최씨의 분신처럼 함께 참여한 집회시위 참가자들이 원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참가한 사람들의 안전에도 심대히 중요한 문제를 일으키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행위다. 더욱이 그의 부친이 행한 좌익활동은 조부의 독립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행위 아니던가? 마땅히 국민들도 최씨 3대의 모든 행위들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매우 안타까워하는 점을 토로했다. “독립운동을 한 집안은 3대가 가난하고 집안이 몰락한다”라는 이 치욕적인 한마디다. 모 언론의 조사 통계에 의하면 “독립운동을 한 독립유공자 집안들의 경제사정을 조사했더니 1대, 2대, 3대 갈수록 가난함이 대물림되고 학력이 낮더라“는 부끄러운 사실이다. ”친일하고 부역한 집안은 더욱 떵떵거리고 자손들은 안하무인으로 배부르며 잘사는 나라, 이것이 바른 대한민국인가? 대한민국이 당당하고 바람직한 나라라면 일본과 주변국들에도 할말은 제대로 하는 나라로, 즉, 거꾸로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