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는 거꾸로?, 검찰, 홍준표 소환 D-1
검찰이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홍준표(61) 경남도지사 소환을 하루 앞두고 7일 최측근 인사 중 한 명인 강모 전 보좌관을 재소환했다. 검찰은 홍 지사 소환 전 금품이 제공된 상황을 완벽하게 복원하기 위해 강씨를 다시 불러 조사하는 한편, 측근 소환 일정을 공개하면서 홍 지사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홍 지사 측이 검찰 수사에 대비해 조직적으로 말을 맞췄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이를 확인하려는 의도도 있다.
검찰에 소환되는 강모 전 보좌관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이날 오후 7시40분께 강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재소환했다. 앞서 강씨는 지난 5일 오후 7시께 검찰에 출석해 다음날 오전 1시50분께까지 한 차례 조사를 받았었다. 강씨는 홍 지사의 최측근 인사 가운데 한 명이다. 성 전 회장이 1억원을 전달했다는 2011년 6월 당시 홍 지사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 경선에 나섰을 때에도 캠프에서 홍 지사의 일정을 담당하며 수행 업무를 맡았던 인물이다. 검찰은 이날 강씨를 상대로 '전달자'로 지목된 윤승모(52) 전 경남기업 부사장 진술의 진위 여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검찰은 윤 전 부사장으로부터 "2011년 6월 당 대표 경선 당시 아내가 운전한 차량을 타고 국회 의원회관 지하주차장에 도착, 홍 지사가 타고 있는 차량 안에서 1억원이 든 쇼핑백을 전달했고 당시 동석했던 홍 지사의 보좌관이 이를 들고 나갔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해둔 상태다. 검찰은 지난 5일에도 홍 지사의 최측근이자 동석자로 지목된 나경범(50) 경남도청 서울본부장(전 보좌관)과 강씨 등을 소환해 조사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돈을 건넸다는 윤 전 부사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검찰은 이날 강씨를 다시 불러 돈이 전달됐다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다시 추궁했다. 또 홍 지사와 그의 비서진들이 검찰 수사와 관련해 어떤 내용을 논의했는지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씨 등 홍 지사 측근들의 진술과 윤 전 부사장의 진술과 비교, 홍 지사의 알리바이를 깨기 위한 대응책도 마련했다. 검찰은 당초 강씨 소환에 앞서 이날 오후 4시 홍 지사의 전직 비서관 신모씨를 소환할 계획이었으나 신씨는 개인 사정을 이유로 소환에 응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는 홍 지사가 18대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던 2000년대 중·후반부터 한나라당 대표 당시까지 보좌했던 비서관 출신 인사다. 2011년 6월 당 대표 경선 당시 홍 지사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전날 밤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서 확보한 2011년 당시 홍준표 의원실의 배치도, 등록 차량번호, 한나라당 대표 경선 당시 홍 지사 캠프의 후원금 내역과 경선자금 처리 내역 등을 비롯한 회계자료 일체를 분석하는 등 사실상 홍 지사를 조사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검찰은 성 전 회장과 측근들의 객관적인 동선과 행적, 홍 지사의 동선과 행적, 경남기업의 자금 흐름과 홍 지사 측의 자금 분석 결과 등을 바탕으로 윤 전 부사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높다고 보고 홍 지사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홍 지사는 8일 오전 10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할 예정이다. 홍 지사는 이날 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성회장, 왜 로비했나?
로비 배경을 놓고서도 윤씨는 "성 전 회장이 2012년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을 위해 준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지사가 당 대표가 되면 공천권 일부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성 전 회장이 미리 공천 로비에 나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은 육성(肉聲) 인터뷰에서 "공천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 지사도 "그 사람이 나에게 (돈 줄)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 증거인멸 정황포착, 구속영장 청구검토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홍준표 경남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 지사 측에서 사건 관련자들을 회유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홍 지사는 8일 오전 10시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할 예정이다. 검찰은 특히 홍 지사의 측근들이 홍 지사에게 1억원을 줬다고 진술한 윤승모(52)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만나 진술을 바꾸도록 회유한 정황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있다.
홍 지사 측근인 김해수 전 비서관과 엄모씨가 윤씨에게 전화하거나 만나 "홍 지사에게 주지 않은 걸로 해달라"는 취지로 회유 또는 증거인멸에 나섰다는 것이다. 윤씨는 이런 내용을 녹음해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홍 지사는 "측근들이 걱정이 되어서 전화한 것은 맞지만, 회유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홍 지사가 측근들을 시켜 윤 전 부사장의 진술을 바꾸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인되면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창과 방패는 누구?
수사팀은 홍 지사의 사법 처리를 자신하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증거법상 가장 최상의 가치가 있는 인적 증거가 현존하지 않는 상황”이라면서도 “수사의 목적은 기소에 있다”고 말했다. 수사팀이 윤 전 부사장을 4차례 소환해 조사하는 동안
홍 지사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홍 지사는 수사팀 맞춤형으로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문무일 검사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변호사들로 변호인단을 꾸렸다. 검사 출신인 이우승(57·14기) 변호사, 이혁(51·20기) 변호사는 문 검사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비리 특별수사팀에서 손발을 맞춰본 사이다. 2003∼2004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를 수사할 당시 이 변호사는 특별검사보로, 제주지검 부장검사였던 문 검사장은 수사팀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이혁 변호사도 남부지검 부부장검사로 재직하던 중 특검에 파견됐다.
홍 지사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로 법적 논리에 기반을 둔 답변을 통해 무고함을 주장해 왔다. 그는 경남도청 출근길에 만난 기자들에게 “성 전 회장이 자살하면서 쓴 일방적인 메모는 반대 심문권이 보장돼 있지 않아 무조건 증거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메모나 녹취록이 특신상태(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므로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선 홍 지사의 발언을 두고 기소 이후 이어질 법정공방까지 계산에 둔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