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여야합의 졸속, 비판 잇달아
333조 혹 떼려다 1669조 혹 붙인 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일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과 월권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청와대와 행정부로부터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여야의 합의문 서명 직전 김 대표를 찾아가 “(합의문에 담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은 보험료를 지금(9%)의 두 배 수준인 18%로 올려야 가능하다”며 “보험료를 배로 올릴 수 있는 자신 있느냐. 그렇게 하지 못하면 포퓰리즘이 된다”고 말했다. 소득대체율은 연금보험료를 낸 기간의 월평균 소득 대비 노후연금의 비율을 말한다. 가령 월소득이 200만원이라면 소득대체율이 50%일 경우 100만원의 연금이 나온다는 뜻이다.
여야는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이 3대 연금 개혁을 언급한 이후 국민대타협기구를 구성해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를 다뤘다. 기구 구성 117일 만에 여야가 내놓은 합의안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50% 인상’이 불쑥 끼어든 것이다. 문 장관은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2065년까지 추가로 들어가는 돈만 570조원(정확히는 664조원) 넘는 것 같다”며 “공무원연금 개혁에서 절감하는 돈보다 훨씬 크며 보험료를 대폭 올리면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부터 하루 100억원씩 불어나는 재정적자를 막아 보고자 시작된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가 더 큰 재정적 부담을 미래세대의 어깨에 얹어놓을 수 있다. 이번 개혁으로 2085년까지 333조원을 줄이는 대신 여야의 소득대체율 50% 약속을 위해 드는 국민 부담은 2083년까지 1669조원에 이른다.
여야의 잘못은 공무원연금 절감분과 국민연금 재정은 돈 주머니가 달라 돈이 오갈 수 없는데도 공무원연금 개혁의 재정 절감분으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에 쓸 것처럼 호도한 점이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올리려면 보험료를 올리든지 적립금(470조원)을 털어야 한다. 보험료가 올라가면 국민의 부담을 초래하며 적립금을 쓰게 되면 연금기금 고갈시기(2060년)가 4년 앞당겨질 수 있다. 여야는 이처럼 국민의 의사를 묻거나 동의를 받아야 할 사안을 합의로 결정했다. 게다가 이 기구에는 국민연금과 관련한 당사자가 없다. 보험료를 올리려면 최소한 국민연금 가입자 대표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나선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권한 없는 실무기구가 국민연금을 손댄 월권”이라고 지적한 이유다.
공무원연금 개혁 방안 자체만 봐도 새누리당안 등 당초 개혁안에서 후퇴를 거듭했다. 보험료율, 연금지급률, 기준소득월액 상한, 보험료 납부기간 등이 새누리당이 마지노선으로 내세웠던 김용하(순천향대 교수) 안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달래기 차원에서 보수 적정화 방안과 승진제도 개선을 덜컥 약속했다. 여야는 일제히 “역사적인 합의”라고 자화자찬했지만 자화자찬일뿐 국민들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국민연금 50% 자식세대에 부담 떠넘긴 것
2000만 명을 넘는 국민연금 가입자가 노후에 종전보다 좀 더 많은 돈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면 이를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여야가 이번 합의문에서 “국민의 노후 빈곤 해소를 위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한다”고 못박았을 때 모두가 여기에 박수를 쳐야 이치에 맞다. 국민연금은 현재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는데 40년 가입했을 때 소득대체율(평생 보험료 납부기간의 월 소득 대비 노후연금의 비율)은 올해 46.5%이며, 2007년 참여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에 따라 매년 0.5%포인트 줄어 2028년이면 40%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득대체율을 높이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에서 여야 합의안은 박수는커녕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노후연금 10%포인트를 더 높이려면 방법은 두 가지다. 보험료를 올리지 않고 적립금을 쓰는 것이다. 적립금 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470조원이고 2043년 정점인 2561조원(현재 화폐가치)에 이른 뒤 17년 만인 2060년에 고갈된다. 이 상태에서 내년에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2041년 정점(2041조원)에 이른 뒤 2056년에 고갈된다. 고갈 시기가 4년 당겨진다. 그 이후가 더 문제인 것이다. 한 해 연금 지급에 필요한 돈만큼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게 25.3%다. 현행대로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할 때(21.4%)에 비해 3.9%포인트의 보험료를 더 부담해야 한다. 현재 직장인의 연금보험료(4.5%, 본인부담기준)에 버금가는 돈이다.
다른 방법은 보험료를 올려 조달하는 것이다. 내년에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2065년까지 664조원, 2083년까지 1669조원이 더 필요하다. 2083년 적립기금을 2년치만 보유한다고 가정하면 보험료를 15.1%로 올려야 한다. 2100년 이후에도 적립기금을 보유하려면 18.85%까지 올려야 한다. 지금의 최대 두 배로 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문형표 장관이 이번 합의를 포퓰리즘으로 규정한 이유다. 하지만 여야 합의안엔 보험료 인상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없다.
여야 합의안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에서 절감한 돈의 20%를 국민연금에 쓰겠다고 했는데, 이는 저소득층 보험료와 출산·군복무·실업크레딧에만 지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소득대체율 인상에는 쓸 수 없는 돈이다. 이번 합의안의 주역인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새정치민주연합 추천 인사)는 “보험료를 12%까지만 올려도 된다. 12%로 올리면 기금 고갈 시기도 2060년으로 지금과 같다”고 반박했다. 새정치연합 강기정 의원은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 문제는 여야 모두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 국민연금 개혁을 할 때 ‘보험료 12.9%-소득대체율 50%’ 안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보험료 인상 반발 때문에 소득대체율만 40%로 깎는 안을 택했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해 왔는데 이번 합의안의 토대가 됐다. 이에 대해 김재현 상명대 금융보험학부 교수는 “고령화 때문에 세계적으로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추세인데, 공무원연금 타협의 정치적인 수단으로 올리려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자식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합의안을 시행하면 20, 30대를 비롯한 후세대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이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또 지금도 보험료 부담 때문에 저소득층이 기피해 가입률이 69%에 불과한 마당에 보험료를 올리면 사각지대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회사원 김상현(35·경기도 성남시)씨는 “공무원연금 개혁에서 갑자기 국민연금 얘길 왜 들고나왔는지 모르겠다”며 “소득대체율을 올린다 해서 좋은 걸로 생각했는데 지금보다 보험료를 두 배 내야 한다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