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가 현실로?, 글로벌 2%물가전쟁 중
당국과 이주열 한은총재의 안이한 인식과는 달리, 사실상 디플레이션 우려에 빠진 전 세계 주요국들이 지금 ‘2% 물가’와 전쟁 중이다. 미국에선 2% 물가가 금리 인상의 전제조건이 됐고, 일본과 유럽에선 양적완화의 예측잣대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은행이 올해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0.9%로 낮추며 2%대 중기 물가안정목표 하단(2.5%)을 포기한지 오래다. 더구나 정부가 “아직 디플레를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는 근거로 제시해온 ‘2%대 근원물가’도 다시 붕괴될 위기에 놓이게 되면서 경제전문가들 모두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미국상황
글로벌 경제의 최대 관심사인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는 이제 ‘미국의 2% 물가상승률 달성 여부’에 달려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한동안 유지해오던 ‘인내심’이라는 단어를 지난 3월 거둬들인 이후 금리 인상의 새 기준으로 ‘2% 물가’를 내세우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목표치 2%를 향해 움직인다는 합리적 확신이 선 뒤에 금리를 인상하겠다”는 것이 재닛 옐런 Fed 의장의 거듭된 발언이다.
미연방준비제도(Fed)
최근 제자리 걸음 수준인 물가(1~3월 전년동월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 -0.1~0%)를 놔두고 금리를 올릴 경우, 심각한 디플레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월가에선 현재의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빨라도 9월 이후에나 금리 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일본상황
일본에게도 ‘2% 물가’는 경제 정상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목표다. 2013년 3월 ‘2년 내 물가상승률 2% 달성’을 공약처럼 내걸고 취임했던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하지만 지난달 30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목표 달성 시기를 2015년에서 2016년 상반기로 늦췄다. 2% 물가 달성을 위해 부작용을 감수한 대규모 양적완화까지 시행하고 있지만 저유가와 소비세 인상(작년 4월 5→8%)에 따른 수요 위축 여파로 좀처럼 물가가 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 본점
명목상 일본의 소비자물가는 1~3월 전년동월대비 2%대 상승률을 기록 중이지만 소비세 인상효과(2%포인트)를 빼면 0.2~0.4%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다. 구로다 총재는 출구전략(양적완화 종료) 시기를 묻는 질문에 “그런 논의 자체는 시기상조”라며 “2% 물가 목표 달성이 거의 완료될 때 출구전략을 논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우리나라 상황은?
우리나라에서는 ‘2% 물가’가 더더욱 요원하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마지막으로 2%대를 기록했던 것이 30개월전인 2012년 10월(2.1%). 1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월비)은 0.4%로 5개월 연속 0%대를 기록 중이고, 특히 올 1월부터 오른 담뱃값 인상효과(0.58%포인트)를 빼면 3개월째 마이너스 상태다.
물가당국으로서는 근원물가의 하락세도 부담스럽다. 소비자물가와 달리 석유류와 농산물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올 들어 줄곧 2%대를 유지해 온 상황인데 정부가 “물가 하락은 국제유가 급락 영향이 크며 디플레 우려는 시기상조”라고 강조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4월 근원물가가 2%대에 턱걸이(2.0%)를 하면서 수요 요인에 따른 물가 하락이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게 됐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