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0도 백두산 오른 김정은, 왜?
김정은이 백두산에 올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9일 보도했다. 김정은이 머물렀던 곳은 2600m 안팎이라고 한다. 100m 고도가 높아질 때마다 0.5도씩 떨어지는 걸 감안하면 김정은이 영하 31도에서 영하 22도 사이일 때 백두산 정상에 있었다는 의미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5년간 백두산을 더러 올랐지만 12월에 찾은 건 처음이다. 최고기온이 영하 20도를 밑도는 엄동설한에 최용해 부위원장 등과 백두산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김정은이 백두산에 오를 때 마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났다. 김정은은 과거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백두산을 찾은 적이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최룡해 당 부위원장 등과 함께 백두산 장군봉(해발 2750m)에 올랐다고 9일 보도했다. 신문은 “(김정은이) 장군봉 마루에 서시어 백두의 신념과 의지로 순간도 굴함 없이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빛나게 실현해 오신 격동의 나날들을 감회 깊이 회억(회고)하셨다”고 밝혔다. 집권 후 김정은은 2013년부터 해마다 백두산을 찾고 있다. 김정은은 2013년 11월 백두산을 찾은 다음 달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했고, 2014년 11월 백두산을 찾은 뒤 이듬해 신년사에서 “최고위급 회담을 못 할 이유가 없다”며 남북 정상회담을 깜짝 제의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화성-15형 발사 후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이 내년 신년사에 핵보유국임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산같이 쌓인 강설을 헤치고 찾아왔다”고 선전했으나 그의 코트, 구두엔 눈이나 흙 자국이 없다. 백두산 정상까지 길이 닦여 있어 4륜 구동 차량 등을 통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북핵 해결 데드라인 3개월설(說)' '대북 선제타격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국제사회를 향해 새로운 카드를 꺼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위대한 조선의 '11월 대사변'을 이루고 백두산을 찾았다"고만 보도하고 정확한 방문 일자는 밝히지 않았다. 북한에서 '혁명의 성산(聖山)'으로 불리는 백두산은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활동을 폈던 무대이자 김정일의 출생지라고 북한 당국이 선전하는 곳이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 최고 지도자가 '혁명의 성산'에 그저 바람만 쐬러 올라가진 않았을 것"이라며 "핵 무력 완성 선언 이후 대외·대남 정책을 어떻게 구사할지, 국제사회의 전방위 대북 제재·압박에서 벗어날 묘안이 없는지를 측근들과 고민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정부 안팎에선 "김정은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이를 인정받기 위한 평화공세 형식의 대화 국면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 북한은 화성-15형 발사 이튿날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의 방북을 허가했고, 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앞으로 유엔과 의사소통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펠트먼 사무차장은 방북 기간 박명국 외무성 부상(6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7일)과 회동했다. 이에 앞서 북한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최근 방북한 러시아 하원 의원들에게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 미국과 협상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와 관련, 전직 고위 외교관은 "여섯 차례 핵실험으로 풍계리 핵실험장의 안전 문제가 심각해져 핵실험을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미 의회에서 '대북 선제타격론'이 회자되는 상황에서 추가 도발도 부담스럽다"며 "북한은 '핵실험 중단' 카드를 흔들며 북·미 협상을 제안할 것"이라고 했다. 김승 전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은 "북한의 내구력이 이젠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상태"라며 "이런 상황에서 유화 제스처는 위기 모면을 위한 위장 평화 공세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국책연구소 한 관계자는 "김정은은 백두산에서 신년사 집필 방향을 생각했을 것"이라며 "'미국과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북남 관계 개선과 교류·협력이 절실하다'는 메시지가 담기겠지만 진정성이 있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의 백두산 방문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정보 소식통은 "김정은은 지난주 한·미 연합 훈련차 한반도에 대거 전개된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들을 피해 조선인민군 최고의 지하벙커 시설이 구축돼 있는 북·중 접경지대에 1주일 내내 숨어 있었다"며 "대단한 결심을 하러 백두산에 간 게 아니라, 훈련이 끝나자 한숨 돌리러 나온 것"이라고 했다. 지난 4~8일 한반도 상공엔 미 공군 F-22와 F-35 등 세계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 24대가 집결하는 등 한·미 연합 공중 훈련 '비질런트 에이스'가 사상 최대 규모(230여대)로 열렸다. 이 기간 김정은은 압록강 다이야(타이어) 공장(3일), 감자가루 생산 공장(6일), 백두산과 삼지연군 내 여러 시설(9일) 등 자강도와 양강도 지역을 집중 시찰했다. 미 스텔스 전투기들은 광주·군산에서 이륙하면 북한의 레이더망을 뚫고 15분 안에 평양을 폭격할 수 있다.
스포츠닷컴 국방안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