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중동 화약고에 불붙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 오후(한국시간 7일 새벽) 회견에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할 것이라고 미 고위 관리가 밝혔다.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계획도 함께 발표할 예정이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지역이어서 국제사회가 어느 나라의 수도로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70년 가까이 유지돼온 국제사회 합의를 트럼프 대통령이 깬 것이다. ‘러시아 유착 스캔들’로 수세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 기독교인과 유대인 등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킬 목적으로 대선 공약이던 예루살렘 수도 인정을 밀어붙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미국의 아랍권 동맹국들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후폭풍이 상당할 전망이다.
미 의회가 1995년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의결했지만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매번 ‘6개월 유예’ 행정명령을 발동해 이전을 연기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대사관 이전을 국무부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전 작업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난 6월에 이어 두 번째로 ‘6개월 유예’ 행정명령에 서명할 예정이다. 현재 예루살렘에 대사관을 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86개국이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미 고위 관리들은 이번 결정이 이·팔 평화협상을 저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국무부와 국방부는 중동지역 대사관 경비를 강화하는 등 소요에 대비하고 있다. 중동전문가인 쉬블리 텔하미 메릴랜드대 교수는 이번 결정이 “이란과 이슬람 무장단체에 프로파간다(선전) 먹잇감을 던져준 것”이라고 혹평했다.
국제사회 한목소리로 반대
국제정치와 종교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곳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손을 들어줬으니 화약고에 불을 댕긴 셈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중동지역 동맹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카타르가 이번 결정을 비난하며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국제사회 반응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대표는 “이·팔 평화협상을 저해하는 모든 행동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반대 의사를 밝힌 데 이어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도 우려를 표명했다. 영국은 과거 이·팔 지역을 통치하면서 잘못된 정책으로 분쟁의 씨앗을 뿌린 나라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러시아, 중국 정부도 미국의 결정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이스라엘 빼고는 우군이 없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웨이를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CNN에 따르면 백악관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은 “국내에서 정치적 기반을 잃고 있음을 걱정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 이슈로 핵심 지지층을 달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닷컴 국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