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김정남 암살 北배후' 공식화
우리 정부는 김정남(46) 암살사건의 배후로 북한 정권을 공식 지목하면서 이 사건을 계기로 전방위 대북압박에 나설 태세를 갖추고 있다. 정부는 핵·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이복형마저 잔인하게 암살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을 국제사회에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미 공개적으로 김정남 암살의 배후로 북한 정권을 지목하면서 강력히 규탄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면서 "북한이 이러한 테러행위들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를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모색하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최종 조사결과가 나오겠지만, 우리 정부는 피살자가 여러 정황상 김정남이 확실하다고 보며, 용의자 5명이 북한 국적자임을 볼 때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도 이날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김정남 암살사건과 관련해 이 사건의 배후로 북한 정권을 꼽으면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정권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을 암살했다면 최고 지도자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압박은 김정은의 잔혹성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있다. 2011년 말 아버지 김정일의 사망 이후 집권한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핵심 간부들을 잇달아 처형하는 공포통치를 해왔다. 2013년 12월 자신의 고모부인 북한 내 2인자로 꼽히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고사총으로 잔인하게 처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인권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김정남 암살사건을 계기로 제기되고 있어 이번 사건이 북한 인권 문제의 ICC 회부 논의에 전환점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이미 유엔은 총회 결의를 통해 안보리가 북한 인권상황을 ICC에 회부하도록 독려하고 있지만, 중국 등 일부 상임이사국의 반대로 진전이 가로막힌 상황이다. '북한 인권침해 책임규명을 위한 유엔 인권이사회 독립전문가그룹'은 최근 김정은 정권의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규명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임시 국제재판소' 설립 검토를 권고하는 보고서 초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우방국 및 국제사회를 상대로 북한 인권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등 북한의 외교적 고립 강화를 위한 고삐를 바짝 당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 등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대북압박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뮌헨안보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9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 내달 초 유엔인권이사회 등을 계기로 "북한 인권 침해와 관련한 북한 정권의 책임성 문제 측면에서 (국제사회의) 새로운 조명이 이뤄질 것"이라며 "국제사회가 더 관심을 갖고 (북한 문제를) 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남 피살사건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이는 유엔 인권이사회 제34차 회기는 이달 말 시작돼 다음 달 하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할 전망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북한 소행 가능성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수사 결과를 내놓은 만큼, 향후 추가 조사결과에 따라 결의안에 북한의 책임을 묻는 등의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이번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전통적 우방국이었던 동남아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만큼, 북한을 제재·압박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국제사회와의 공조 노력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군당국, 경계태세 강화
한편, 우리 군 당국은 김정남 암살 사건의 여파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에 대비해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의 배후로 북한 정권을 지목하는 유력한 정황과 증거가 잇달아 제시되면서 국제사회에서 궁지에 몰린 북한이 군사도발로 국면전환을 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20일 "현재 북한군의 특이동향은 포착되지 않고 있지만 북한이 김정남 피살에 집중된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리고자 추가로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대북 경계 및 감시태세와 후방지역 테러대비 태세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또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해 한미 정보공유 및 상황평가 횟수를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도 이날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도 북한의 추가 도발 등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김정남 암살과 관련해 김정은을 향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본격화되면 북한이 이에 반발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다"면서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 태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등 사건의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다는 점이 명확해질수록 국제사회의 압박은 거세지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도 커진다고 군 당국은 분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지난 12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북극성 2형'을 발사하면서 미국 대선이 치러지기 직전인 지난해 10월 말부터 지켜왔던 100여 일의 침묵을 깨고 군사적 도발에 나섰다. 군 당국은 북한이 '북극성 2형'의 고체엔진을 묶어 1단 추진체로 사용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나설 가능성을 주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내달 시작되는 한미연합훈련인 키리졸브(KR) 및 독수리연습(FE)을 빌미로 북한이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관측이다.
스포츠닷컴 국방안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