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는 '초갑부'들의 내각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4일(현지 시각) "백인 노동자층의 전폭적 지지를 얻어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초대 내각이 갑부들로 채워지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가질리어네어는 '엄청난 수'라는 뜻의 '가질리언(gazillion)'을 어원으로 하는 말로, 백만장자나 억만장자를 넘어선 '초갑부'를 뜻한다. 현재 트럼프 내각에 내정됐거나 유력한 인사들의 재산을 합치면 350억달러(약 41조원)에 달한다고 폴리티코는 집계했다. 미국 연평균 가계소득(5만5000달러)의 약 63만6000배다. 여기엔 100억달러에 이르는 트럼프 본인의 재산도 포함돼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월가의 억만장자 투자자 윌버 로스는 트럼프 내각의 초대 상무장관이 확실시되고 있다. 금융그룹 로스차일드 회장을 지낸 그의 재산은 29억달러에 달한다. 그는 경영 위기에 처한 기업을 싸게 인수해 구조조정을 거쳐 되파는 수법으로 유명해 '기업 사냥꾼' '파산의 왕(king of bankruptcy)'으로 불린다. 2000년대 초반 위기에 빠진 미국 제조업 구조조정에 관여하면서 강경한 보호무역주의자가 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로스는 1997년 말 한국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국제 채권단과 한국 정부를 잇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 2000년 김대중 정부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IMF 구제금융 방안이 나오기 전날 헐값에 산업은행 채권 수백만달러어치를 사들여 200%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고, 한라그룹 구조조정에 관여해 성공 보수와 이자로 800억원을 챙기기도 했다. 미·일 교류단체 '재팬 소사이어티' 회장을 맡을 정도로 지일파인 반면, 중국 제품에 대해서는 고관세를 주장해 중국과는 껄끄러운 관계이다.
교육장관 내정자인 베시 디보스는 생활용품업체 암웨이의 상속자인 딕 디보스의 아내로, 가족 재산이 51억달러에 이른다. 국무장관으로 거론되는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사모펀드 투자가 등으로 일하며 2억5000만달러 재산을 쌓았고, 주택장관으로 유력한 의사 출신의 벤 카슨의 재산도 2600만달러에 이른다.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내정된 스티브 배넌은 1990년대 인기 드라마 '사인필드'에 투자해 큰 이익을 보는 등 4100만달러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경제·산업 분야에도 갑부들의 입각이 예상된다. 재무장관에는 골드만삭스 출신 투자가 스티븐 므누신이 가장 유력하다. 대표적 '친(親)월가' 인사인 므누신의 재산은 4600만달러다. 에너지장관으로는 미국 최대 셰일오일 업체 '콘티넨털 리소스' 회장인 해럴드 햄이 유력하다. 그는 153억달러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어 입각 시 내각의 최대 부자가 될 전망이다.
메이저리그 구단 '시카고 컵스'의 공동 구단주인 토드 리케츠는 상무부 부장관으로 유력하다. 그의 가문은 10억달러 재산을 보유한 공화당의 대표적인 '큰손' 후원자다. NYT는 "외교·안보 분야를 군 출신 강경파로 채운 트럼프가 이제 정책 요직을 채울 인재로 초갑부 보수주의자들(ultrawealthy conservatives)을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트럼프가 유세 기간에 했던 주장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 등 정적(政敵)을 '월가의 꼭두각시'라고 부르며, 부유층 후원 없이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자신이 '보통 미국인'의 대변자라고 했다. 그는 이 같은 메시지로 불평등·경제 침체에 불만을 가진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근로자들을 공략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당선 후에는 갑부들로 주변을 채우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친(親)민주당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의 니라 탠든 소장은 "노동자 계층 유권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배반하는 것"이라며 "트럼프는 엘리트 억만장자들과 싸우겠다고 해놓고는 그들을 요직에 앉히고 있다"고 했다.
스포츠닷컴 국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