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프라이데이, 백화점들 ‘노마진 세일’, 10-20%추가할인
정부가 소비 진작 차원에서 추진중인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추석후 유통업계 합동 할인)' 행사가 제한적 할인 품목과 할인율로 '졸속' 논란에 부딪히자, 유통업계가 부랴부랴 추가 세일에 나섰다. 추가 세일 바람에 불을 붙인 것은 롯데그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직접 블랙프라이데이 추가세일 기획을 지시하자 롯데백화점 등 유통 계열사들이 6일 노마진 세일 등 확대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롯데백화점 '노(no)마진' 세일
롯데백화점은 8일부터 18일까지 테팔·필립스·나인 등 인기 브랜드 40여개가 새로 코리아 그랜드 세일(가을세일)에 참여하고, 메트로시티·러브캣·지고트·박홍근 등 70여개 패션·리빙 브랜드는 세일율을 기존 수준보다 10~20%포인트(P) 높인다고 밝혔다. 특히 백화점이 마진을 남기지 않고 그만큼 가격을 낮춘 노마진(No-margin) 상품전도 마련했다. 이번 노마진 행사에는 140여개 브랜드의 450여개 품목이 참여하며 준비된 상품은 모두 100억원 규모이다. 주요 노마진 품목은 ▲ 다우닝 L-알페온 4인 가죽소파 169만원 ▲ 캘러웨이 드라이버 20만원 ▲ 지이크 블루종 점퍼 12만원 ▲ 오브엠 구두 10만7천원 등으로, 최대 70%의 할인율이 적용된다.
같은 기간 DKNY·클럽모나코·바이에토르 등 12개 수입 브랜드는 10% 특별세일, 구매금액대별 5% 상당 상품권 증정 등 다양한 혜택도 선보인다. 이완신 롯데백화점 전무(마케팅부문장)는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고 내수 활성화에 일조하고자 협력사와 함께 다양한 행사를 추가로 보강했다"고 설명했다. 롯데마트는 8~14일 100여개 주요 PB(자체 브랜드) 상품을 준비하고 '다다익선'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 같은 품목을 2개, 3개 구매하면 각각 10%, 20% 깎아준다. 주요 품목은 ▲ 세이브엘 알뜰한 우유(930㎖·1개당 1천820원) ▲ 세이브엘 저지방 우유(930㎖·1개당 1천820원) ▲ 초이스엘 키친타올(200매×4개·1개당 3천980원) 등이다.
아울러 8~14일 롯데·신한·KB국민·우리카드로 롯데마트에서 인기 주방용품 브랜드 테팔·코렐·락앤락의 300여개 상품을 결제하면 최대 50%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롯데마트는 가공식품, 생활용품 20대 브랜드 인기 상품 500여개에 대한 상품권 증정 행사와 초특가 할인 행사 등도 준비했다. 롯데하이마트는 14일까지 14만대, 500억원어치의 초특가 기획 상품을 내놓는다. 자체 유통 마진을 줄여 제품 가격을 낮췄다는 게 하이마트의 설명이다.
LG전자 830ℓ 양문형 냉장고를 1백40만원대에, 삼성전자 900ℓ 4도어 제품을 1백90만원대에 각 1천대씩 특가로 판매한다. 동부대우전자 15㎏ 일반식 전자동 세탁기 1천대(30만원대), 삼성전자 16㎏ 액티브 워시 세탁기(60만원대), LG전자·삼성전자 17㎏ 드럼 세탁기(110만원대) 등도 특가에 선보인다. 롯데면세점도 할인 참여 브랜드 수를 해외 명품잡화·시계·보석·악세서리·화장품·향수 품목의 198개로 늘리고, 할인율도 최대 80%까지 높이기로 했다. 참여 브랜드에는 제냐·발렌시아가·토리버치 등이 포함되며 평균 할인율은 30~50%다.
롯데슈퍼 역시 7~13일 가을 나들이 먹을거리 등을 최대 50% 싸게 판다. 이번 할인행사 대상 품목은 모두 200억원어치로, 평소 행사의 두 배 규모다. 앞서 지난 4일 신동빈 롯데 회장은 주요 유통 서비스 계열사에 "단기 성과에 얽매이지 말고 자체 유통 마진을 줄여서라도 좋은 제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신세계, 현대백화점 10~20% 추가 할인
신세계와 현대백화점도 코리아 그랜드 세일(가을 세일) 참여 브랜드 수와 할인 폭 등을 늘린다. 신세계는 14일까지 편집숍에 입점한 브랜드의 할인율을 최대 20%포인트 높여 손님을 맞는다. 각 편집숍의 할인율은 ▲ 분더샵 50~90% ▲ 분컴퍼니 최대 70% ▲ 분주니어·핸드백컬렉션·슈컬렉션·란제리 컬렉션·피숀 50~80% 등이다. 이 편집숍들이 판매하는 알렉산더 왕, 드리스 반 노튼, 발렌시아가, 알렉산더 맥퀸, 디스퀘어드, 아크네, 필립림 크리스찬 루부탱 등 120여개 신세계 럭셔리 브랜드를 기존 판매가보다 50~90%까지 싼 값에 살 수 있다는 게 신세계의 설명이다.
신세계는 코리아 그랜드 세일과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특수를 고려해 정기휴점일을 12일에서 19일로 바꿨다. 신세계 관계자는 "이번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의 추가 할인을 위해 직매입 브랜드의 이익률을 낮췄다"며 "결과적으로 1년에 두 번 진행하는 해외명품대전 수준 이상의 할인율이 적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은 18일까지 진행되는 '코리아 그랜드 세일' 중 르카프·케이스위스·쿠쿠 등 50여개 브랜드의 세일율을 10~20%포인트 추가하기로 했다. 앤디앤댑 등 40여개 브랜드의 경우 아예 새로 세일에 참여해 10~20% 할인에 나선다.
또 현대백화점이 직접 운영하는 편집숍들은 일부 직매입한 상품 가격을 10~30% 추가로 깎아 최대 할인율을 90%까지 높인다. 주요 추가 할인 브랜드는 이탈리아 프리미엄 패딩 브랜드 ADD, 미국 프리미엄 패딩 브랜드 SAM, 미국 프리미엄 데님 J브랜드 등 약 20개이다. 무역센터점은 9~11일 연휴에 '블랙 하프 위크엔드' 행사를 통해 크레송·디데무·성진모피 등 200여개 브랜드의 패딩·코트·모피 등 겨울 대표 상품 900억원어치를 최대 70% 할인 판매한다.
백화점은 배불러 웃고 납품업체는 울상
4일 오후 4시께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9층 ‘아웃도어 대전’ 행사장. 할인을 하지 않는 명품 브랜드들이 주로 입점한 1층과 달리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아 30~80% 할인판매를 하고 있는 이 매장은 중년 남녀 소비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남편과 함께 온 한 중년 여성은 “행사장에 상품이 많아 고를 게 많다”며 “주로 할인율이 높은 옷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행사장이 북새통을 이루었지만 정작 납품업체들은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한 패션잡화 브랜드의 대표는 “평소 상품값의 33~40%를 수수료로 내는데, 이번 행사에선 백화점이 수수료를 깎아줘 브랜드별로 30% 선의 수수료를 부담한다”며 “50% 이상 할인판매하는 상품에서 수수료를 이렇게 내면 납품업체로서는 남는 게 없다”고 털어놨다. 이 대표는 “백화점들이 통상 외국 명품 브랜드 등에선 15% 안팎의 수수료만 받는데, 국내 브랜드한테도 20% 미만의 수수료를 책정한다면 상품 제조원가와 판매관리비 등을 빼고 이윤에 다소 여유가 생기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의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 등이 참여해 지난 1일부터 진행 중인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에 소비자가 몰리면서 백화점 매출이 지난해보다 20~30%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할인율이 높거나 균일가 행사에 참여한 업체들 가운데 백화점에 20~30%의 수수료를 내고 나면 원가조차 챙기지 못하는 업체도 많아 ‘블랙 프라이데이’가 백화점을 위한 행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백화점 업계 쪽 얘기를 들어보면, 롯데백화점은 1~4일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5% 증가했다. 주로 9층 행사장에서 대폭 할인행사에 참여한 구두, 핸드백 등 잡화류와 아웃도어, 주방·식기 등의 매출 신장률이 높았다. 신세계백화점도 같은 기간 매출이 35.3% 늘었다. 주얼리·시계, 여성복, 남성복, 스포츠 등이 골고루 매출이 올랐다. 현대백화점도 같은 기간에 매출이 19.2% 증가했다.
백화점과 아웃렛에서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한 여성복업체 임원은 “상당수 여성복 업체들의 매출이 20~30% 늘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임원은 “30만원짜리 옷을 이번 행사에서 70% 할인해 9만원에 팔 경우 평소 백화점에 내는 수수료 36%보다 낮은 30%의 행사 수수료를 낸다 해도 원가도 안 남는다”고 하소연했다.
또 전국의 주요 백화점에서 구두 할인 행사를 하고 있는 한 판매팀장은 “백화점이 할인행사 참여 물량을 강제로 할당해 이월상품 외에 정상상품까지 내놓는 경우도 있다”며 “정상상품을 대폭 할인해 팔 경우 손해를 보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가 정상상품보다 질이 좀 낮은 기획상품을 만들어 행사에 내놓고 있다”고 폭로했다. 대규모 가격 세일 행사가 실질적으로 소비자한테 유리할 것도 없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납품업체들이 손해를 보면서도 유통업체의 요구를 따르는 이유는 유통업체와의 관계에서 유통업체 요구를 거절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입점한 한 중소기업 대표는 “대형 유통업체의 요구를 거절하면 나중에 대형 판매행사에서 배제되거나 매장 위치를 나쁜 곳에 배정받는 등 다양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강용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