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88세할머니 1인시위"文 총리자격 없어"
[류재복 대기자]
"지금 할머니들 가슴에 칼을 꽂고 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그런 사람을 국무총리로 앉히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17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 앞.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8) 할머니가 청와대를 등지고 커다란 피켓 두 개를 무릎에 걸친 채 1인 시위에 나섰다.
흰 저고리에 갈색 치마를 입은 김 할머니는 아흔이 가까운 나이임에도 표정에 흔들림이 없었다. 피켓에는 "극우 친일적 신념을 가진 자를 후보로 지명한 대통령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줬다", "문창극 후보자는 진심으로 사과하고자 한다면 후보직 자진사퇴하라"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김 할머니가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가 열리는 수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청와대 앞으로 나온 까닭은 최근 논란이 계속되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과거 발언 때문이다.
문 후보자는 2011년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한 특별강연에서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취지로 발언했고, 서울대 초빙교수로 올해 1학기 '저널리즘의 이해' 수업을 하면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으로부터 굳이 사과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김 할머니는 "우리는 각국을 다니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하는데, 이제야 정부도 눈을 뜨나 했더니 엉뚱하게 '되지도 않을 사람'이 국무총리로 나와서 망언을 했다"며 "대통령이 반장도 못 할 사람을 지명한 것은 너무나 잘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문 후보자는 논란이 지속되자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를 하고 '하나님의 뜻' 발언과 관련해서는 "종교적 인식이었다"고 해명했다. 김 할머니는 이에 대해 "처음에는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해놓고 며칠 떠들썩하니 사죄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했다"며 "사과가 아니라 무엇을 해도 그 사람은 국무총리 자격이 못 되고, 깨끗이 물러나기를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 안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며 "자기 측근만 앉히려 하지 말고 이 나라를 이끌어나갈 만한 사람을 앉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할머니는 30분간 1인 시위를 벌인 뒤 이정희 정대협 실행이사에게 자리를 내줬다. 이날 정오까지 릴레이식으로 진행되는 1인 시위에는 대학생 모임 '평화나비'와 청년모임 '희망나비' 회원, 사전 신청한 일반인 등 모두 8명이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