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측근들 첫 재판.. 책임회피 일관
[류재복 대기자]
유병언 (73) 청해진해운 회장의 경영비리에 협조한 측근 8명에 대한 재판이 16일 인천지법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이들 측근들은 "월급쟁이로서 유 회장 일가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며 책임회피에 급급했다. 검찰은 이들이 주장하는 '머슴론'에 근거가 없다고 몰아부쳤다. 하지만 '몸통'인 유 회장 일가가 한 명도 재판정에 서지 않아 세월호 실소유주 일가 비리의 진상이 밝혀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나는 월급쟁이…시켜서 한 일"
이날 인천지법 재판에서 송국빈(62) 다판다 대표 등 대부분의 피고인은 검찰이 기소한 범죄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은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거나 합리적 경영판단"이라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변기춘(42) 천해지 대표 측 변호인은 "공소 사실 중 자금 흐름에 관한 부분은 인정하지만 피고인은 월급쟁이 사장에 불과했다"며 "유병언의 프랑스 사진 전시회 역시 동영상을 보고 사업가능성 있다고 판단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오경석 대표 측 변호인은 "회사 자금이 선급금 명목으로 유 회장 일가 계열사에 지급된 부분은 인정하지만 손해를 끼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며 "배임에 해당하는지는 추후 다뤄보겠다"고 말했다.
피고인 중 일부는 현재 인터폴에 적색수배령이 내려진 김필배(76) 전 문진미디어 대표와 유씨 차남 혁기(44)씨 등의 지시를 받아 범행에 가담한 사실을 시인했다. 일부 피고인의 변호인은 "지시를 어길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는 점을 참작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하기도 했다.
공소 유지를 맡은 이진호 검사는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선장과 승무원 몇 명의 부주의나 그릇된 행동만으로 일어난 사고가 아니다"면서 "사고 전후로 연결된 부조리의 윤곽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또 달아난 유 회장 일가를 겨냥해 "도주가 길어질수록 굴레도 더욱 옥죄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몸통 없는 재판 우려
재판부는 재판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혐의가 같은 이들 사건의 병합 여부를 다음 재판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피고인들은 고문료·컨설팅비·상표권 사용료 지급, 사진과 주식 고가 매입 등의 수법으로 유씨 일가에게 회사돈을 불법적으로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대체로 엇비슷한 범죄혐의인 만큼 사건을 병합해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재판 속도 면에서 이점이 있다. 재판부는 "모든 사건이 병합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오는 30일을 정식 공판기일이 아닌 준비기일로 지정하고, 다음달 9일부터 집중심리 방식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재판을 열 계획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주범인 유 회장 일가가 없는 상태에서 세월호 실소유주의 경영비리를 검찰과 재판부가 제대로 밝혀내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더구나 검찰이 이번 수사와 재판을 통해 입증하려고 했던 '세월호 실소유주 일가의 부실경영→세월호 참사'의 논리구도가 국민에게 제대로 먹혀들지 의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일종의 '별건 수사'로 비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