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헤레베헤 &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지난 2006년 국내 음악팬들의 심금을 울린 헤레베헤의 감동적인 공연을 기억하는 이라면, 이번 공연 첫 곡으로 선보인 모차르트 '주피터' 교향곡 연주에 순간 다소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음색, 처음엔 급한 듯 시작해 조금씩 뒤처지는 템포에 당황하기조차 했다. 그러나 교향곡 연주가 계속되자 이 교향곡의 극적인 개성을 살리고자 하는 헤레베헤의 의도는 점차 분명해졌다.
오페라를 중요시했던 모차르트는 순수 기악곡에서도 오페라와 같은 드라마틱한 표현을 구사하곤 했다. 모차르트의 '주피터' 교향곡도 마지막 악장에 여러 성부가 복잡하게 얽힌 푸가가 나타나는 등 모차르트 작품 중에서도 대단히 지적인 작품으로 통하지만, 1악장에 코믹 오페라의 아리아 선율이 인용되거나 2악장에서도 예상치 못한 강한 악센트와 장·단조의 감정변화가 강조돼 극음악적 느낌을 전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헤레베헤가 이끄는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빠른 템포에 악센트의 효과를 살린 연주로 '주피터' 교향곡의 극적인 면을 더욱 부각시켰다. 여러 성부가 서로 모방해가는 복잡한 부분이나 하나의 주제에 새로운 대선율이 첨가된 부분에선 각 악기의 개성이 두드러지며 마치 오페라의 등장인물처럼 등장하곤 했다. 이런 과정에서 다소 정리되지 않은 인상을 풍기기도 했으나, 몇몇 부분에선 무척 흥미로웠다.
공연 후반부에 연주된 모차르트의 '레퀴엠' 연주에선 전반부 공연의 아쉬운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의 자유분방한 연주는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의 정제된 합창에 극적인 긴장감을 더하며 '레퀴엠'에 담긴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더욱 분명하게 전했다. '레퀴엠'의 도입 합창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에선 오케스트라의 음량이 합창을 압도하는 바람에 균형이 다소 깨지기는 했으나, 연주가 진행됨에 따라 연주자들이 차츰 콘서트홀의 음향에 적응하면서 섬세한 합창과 극적인 오케스트라가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특히 '자비송'의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가 시작되면서 합창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4성부 합창이 서로 모방해가는 부분에서 복잡한 멜리스마(가사의 한 음절에 여러 음표가 붙는 악절)가 너무나 명쾌하고 분명한 소리로 표현돼 감탄을 자아냈다.
'레퀴엠'이 연주되는 동안 헤레베헤가 이끄는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는 믿을 수 없이 정제된 음색과 정확한 인토네이션을 구사하며 음악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을 가식 없이 그대로 펼쳐보였다. 적극적으로 감정표현을 하려는 의도가 별로 보이지 않음에도 '진노의 날'과 같은 극적인 곡에서도 그들은 명확하고 잘 다듬어진 소리만으로도 강한 감정을 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음악 그 자체에 충실한 이상적인 합창이라고 할 만하다.
독창자로 나선 소프라노 임선혜의 맑고 또렷한 음색과, 분덜리히의 음성을 연상시키는 테너 벤자민 훌렛의 미성도 이번 공연에서 돋보였다. 고음 목관악기가 편성되지 않은 '레퀴엠'에서 소프라노와 테너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마치 플루트와 오보에 소리처럼 찬란하게 떠오르며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에 밝은 빛을 던져줬다.
한편 베이스 요하네스 바이써와 트롬본 수석 주자의 멋진 2중주는 '레퀴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둡고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내며 청중의 호응을 얻었다.
지난 2006년 헤레베헤의 바흐 공연이 정제된 합창음악의 진수를 보여준 공연이었다면 이번 모차르트 공연은 모차르트 음악의 극적인 개성이 강조된, 마치 오페라 같은 공연이라고 할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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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02 14: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