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나는 내 권리를 지켜주려 하지 않는 나라에 머무르고 싶은 생각은 없소. 발로 걷어차이는 신세라면 사람으로 사느니 차라리 개로 살겠소."
독일의 말장수 미하엘 콜하스는 자신의 말을 못 쓰게 만든 귀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나 소(訴)가 계속 기각되자, 아내에게 이같이 말하며 왕을 찾아 억울함을 호소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 일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독일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1777~1811)의 '미하엘 콜하스'는 16세기 독일을 배경으로 명망 있는 지역 명사 콜하스가 반란의 주동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중편 소설이다. 귀족들의 부당한 사욕과 올곧은 정신을 가진 시민계급 콜하스를 통해 시대의 부조리를 묘파한 고전이다.
프랑스의 아르노 데 팔리에르 감독은 20대 중반에 이 소설을 읽고,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대정신에 풍자와 해학을 담은 이 작품을 스크린에 옮기기에 아직 역량이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고, 더 늦으면 만들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쉰 살이 넘어서야 메가폰을 잡았다.
팔리에르 감독의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원제 Michael Kohlhaas)은 원작보다 훨씬 무겁다. 영화를 만들 때 베르너 헤어조크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떠올렸다는 그는 원작의 풍자와 해학을 걷어내고, 좀 더 엄격하고 위엄있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콜하스 역으로는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매즈 미켈슨을 낙점했다. 그리고 영화는 최소한 배우 선택에서 팔리에르 감독의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다.
말장수 콜하스(매즈 미켈슨)는 말 여러 마리를 이끌고 말 시장을 향해 출발한다. 하지만, 늘 건너던 다리를 웬 군사들이 지키고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새롭게 땅을 다스리는 남작의 군대다
콜하스는 다리를 건너려 하지만 통행세를 내라는 그들의 요구에 황당해한다. 늘 공짜로 다리를 건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이 커질 것 같아 부하 한 명과 함께 말 두 마리를 그들에게 맡긴다.
예상대로 장사를 잘하고 큰 이득을 본 콜하스는 말을 찾고자 남작의 성에 들린다. 그러나 그가 맡겼던 윤기 흐르던 말이 생채기로 가득한 모습을 목격하자 그는 타오르는 분노에 휩싸인다.
영화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보다는 콜하스라는 인물에 주안점을 둔다. 그의 마음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명쾌한 내용을 담은 원작과는 달리 조금은 신비롭다.
콜하스의 결정과 선택에 수긍이 가지 않을 관객들이 꽤 있을 것 같다. 원작의 내용들을 상당 부분 걷어냈기 때문이다.
대신 팔리에르 감독은 콜하스라는 신비로운 인물을 만들어냈다. 유독 안개가 많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다 보고 나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안개처럼 신비로운 매력에 빠져든다. 영화의 흐름이 논리적이지 않은 대신 이미지가 돋보이고 배우의 연기부터 미장센(화면구성)까지, 연출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카케무샤'(1980)나 '거미의 성'(1957)에서 보이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스타일의 꽉 짜인 프레임이 빛을 발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소소할지라도 시대적인 한계 속에서 끝내 이뤄낸 복수, 왕의 자리를 넘볼 정도로 신망이 두터웠지만 원칙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는 강직함에 눈길이 간다. 특히 복잡다단한 삶에서 아주 단순한 원칙만으로 살고자 하는 콜하스의 모습에선 종교적인 장엄함까지도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위엄있는 인물을 그려낸 매즈 미켈슨의 건조한 연기는 단연 발군이다.
영화는 작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2월27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상영시간 122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2/17 07: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