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변변한 수입도 없이 동생에게 얹혀사는 시나리오 작가 진영(김규리). 연필로 쓴 좀비 이야기는 제작사 사장으로부터 퇴짜맞기 일쑤고, 아르바이트 자리는 잘 구해지지 않는다.
어느 날, 제작사에 갔다가 우연히 대학선배 황태일(박원상)을 만나는 진영. 칸영화제에 초청받을 정도로 유명한 감독이 된 그는 진영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진영은 황 감독의 마음을 눈치 채지 못한다.
한편, 전문직에 종사하는 동생(최유화)이 친구 제이미(전수진)를 집에 데려오고, 진영은 만취한 상태에서 제이미와 키스를 나눈 후 사랑에 빠진다.
'사랑해 진영아'의 초반은 꽤 신선하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같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노래와 1950-60년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장화홍련전' 등의 영화를 상기시키는 분위기의 흑백필름을 이용해 기존 상업영화와는 전혀 다른 출발을 보인다.
이야기도 시간적 순서에 제한받지 않는다. 영화이야기, 진영의 복잡한 가족사, 진영의 연애담 등이 교차하면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진영의 상상 속에 있는 좀비가 현실에 개입하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기도 한다. 마치 감독의 머릿속 상상이 그대로 스크린에 구현되는 듯한 인상이다.
시도는 좋고, 재기 발랄한 측면도 있다. 문제는 불쑥불쑥 떠오르는 상상의 나래가 조직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콜라주처럼 이야기가 뒤섞여 있는데, 영화는 이런 자잘한 부분을 보여주느라 진도를 나아가지 못한다. 튼실한 플롯보다는 에피소드식의 재기 발랄함에 주안점을 둔 듯 보인다. 그러다 보니 말쑥한 상업영화와 내용이 탄탄한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중후반으로 갈수록 지칠 수도 있을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 톤은 전반적으로 좋다. 여러 캐릭터가 들뜰 수도 있는 상황에서 출연 배우들은 비교적 차분하게 연기했다. 밝은 성격 하나로 고난의 삶을 견뎌온 캐릭터 진영 역의 김규리도 성실하게 연기했다. 너무 귀엽지 않게 꿈많은 루저의 연기를 덤덤하게 표현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아메리칸 뷰티'(1999) '반칙왕'(2000) 등 유명 장면을 패러디한 영화 속 장면과 대사는 영화팬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단편 '진영이'(2009)로 주목받은 이성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11월7일 개봉. 15세이상관람가. 상영시간 102분.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01 07: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