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이완구 내정, 청와대 중폭개편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국무총리 후임에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내정했다. 해양수산부 장관 등 후속 개각은 이 내정자와 정 총리가 상의해 제청하면 그에따라 추후에 발표할 예정이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3년차를 맞아 국정효율성 높이고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내각과 청와대 개편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윤 수석은 이 총리 내정자 인선 배경과 관련,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혁신과 국가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당정과 국회소통이 매우 중요하한 상황에서 이 내정자는 여당 원내대표로서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고 야당과 원만히 협조하고 국정 정상운영에 기여했으며 공직기강 확립과 소통의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또 국정의 효율적인 추진과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각 기능별로 특별보좌관을 신설했다. 국정기획수석실은 정책조정수석실로 확대 개편하고 각 수석실의 정책을 조정하고 조율하는 기능을 맡게 됐다. 측근인 안봉근 2부속실장이 있는 제2부속비서관은 폐지하고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인사위원회에서 제외시켰다.
이와 함께 지난 12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국정의 효율적인 추진과 소통을 위해 청와대 조직도 개편했다. 민정특보에는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내정됐으며 안보특보에는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 홍보특보 신성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사회문화특보에는 김성우 SBS 기획본부장이 각각 내정됐다.
정무특보단은 추후 발표할 예정이다. 국정기획수석실에서 이름이 바뀐 정책조정수석에는 현정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미래전략수석에는 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민정수석에는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자체 영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금일 갑작스러운 청와대 중폭개편에 대해 “‘문고리3인방’이 보직이동만 되고 김기춘 비서실장이 유임되어 확실한 개편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 청와대는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해 조직개편등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며 유임했다.
이완구 총리내정자-“경제살리기 올인”등 언급
한편,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23일 “경제살리기에 올인” "대통령께 쓴소리와 직언을 하는 총리“ ”공직기강을 다잡는 총리가 되겠다 그래야 대통령의 개혁이 원할할수 있다" 또 “야당을 존중하고 야당을 이기지 않는 협력의 총리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오늘 아침 많은 생각 끝에 박근혜 대통령을 잘 보필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 자리가 저의 마지막 공직의 자리라는 각오와 함께 수락을 했다"며 "어제 저녁 늦게 연락을 받았고 오늘 아침에 박 대통령을 잘 모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청문회를 통과해 총리가 된다면 내각을 통할하는 입장에서 경제살리기에 온몸을 바치겠다"며 "이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총리"라고 강조했다.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 내정자>
23일 신임 국무총리에 지명된 이완구 의원은 3선으로 충남 청양 출신이다. '충청권의 맹주'로 불리는 이 총리 후보자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포함해 충청권 출신 첫 원내대표를 지냈다. 이 총리 후보자는 지난해 세월호특별법 제정 등 여야 협상을 이끌면서 산적한 현안들을 무난히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총리 후보자는 양정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재학 중인 1974년 행정고시(15회)에 합격하면서 공직에 입문했다. 당시 경제기획원에서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했다.
그는 홍성군청과 경제기획원 등에서 근무하다 경찰로 옮겨 충청북도, 충청남도 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이때 그는 최연소 경찰서장(31세), 최연소 경무관으로 승진하면서 '최연소'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후 1995년 민자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발을 담갔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자민련 텃밭이던 충남지역에서 유일하게 신한국당 후보로 당선돼 주목을 받았다. 1997년 대선 당시 김종필 전 총리의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겨 원내총무와 대변인 등을 역임했으며,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자민련 부대변인 시절 박태준 총재에게 '철두철미하다'는 평을 들었고, 김종필 명예총재에게는 '번개가 치면 먹구름이 낄지, 천둥이 칠지를 아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적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자민련을 탈당해 한나라당으로 이적했으며, '철새 정치인' 논란이 일자 2004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UCLA대 교환교수로 1년여를 보냈다.
이 총리 후보자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충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후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에 단식투쟁을 벌이면서 반대 입장을 고수하다가 도지사직까지 사퇴하기도 했다. 당시 세종시 원안을 고수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면서 줄곧 친박으로 분류돼왔다. 정계 복귀를 저울질하던 그는 19대 총선 출마를 계획했지만 뜻하지 않은 질병으로 출마를 접어야 했다.
2012년 초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종에 걸려 10개월여 동안 투병생활을 했고 그해 10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는 지난 2013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다시 19대 국회에 재입성하면서 충청권의 신맹주로 떠올랐다. 이후 당내에서 세종시지원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세종시 지원에 앞장섰고 지난해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원내지휘를 맡아왔다.
▲1950년 충남 청양 ▲양정고 ▲성균관대 ▲미시간주립대 ▲행시 15회 ▲LA총영사관 영사 ▲충남북 지방경찰청 청장 ▲미국 UCLA 교환교수 ▲35대 충청남도 도지사 ▲15·16·19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명재 신임 민정특보>
23일 청와대 민정특보로 임명된 이명재 전 검찰총장(71·사법연수원 1기)은 대표적인 '특수통' 출신 검사로 꼽힌다. 경북 영주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 내정자는 1975년 서울지검 영등포지청에서 첫 검사생활을 시작해 26년간 검찰 내 주요 공직에 머물렀다. 전두환 정부 시절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건을 맡아 중립적인 수사결과를 내놨다는 평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씨 비리의혹 사건을 맡아 현직 대통령 자제들을 구속하는 수사결과를 내놨다.
검찰 재직기간 동안 치밀한 수사에다 온화한 성품으로 '당대 최고의 검사'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후배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내정자는 대검 검찰연구관, 대검 감찰2과장 대검 중앙수사부 과장, 서울지검 특수1부장검사, 부산지검 울산지청장, 사법연수원 부원장, 대검 중앙수사부장, 부산고검 검사장을 거쳐 2001년 서울고검 검사장을 마지막으로 퇴임했다.
이후 태평양 변호사 등으로 활동하다가 2002년 신승남 전 총장의 후임으로 31대 검찰총장에 올랐지만, 취임 첫해 피의자 고문치사 사건으로 책임론에 휩싸이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검찰청을 떠났다. 퇴임 이후 태평양 고문변호사로 공직자, 기업 관련 형사 사건 및 일반민사 사건을 담당해오고 있다.
<현정택 신임 정책조정수석>
현정택 정책조정수석(66)은 풍부한 실무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경제기획원 출신의 정통경제관료다. 현 수석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행시 10기로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25년간의 공직생활중 세계은행(IBRD), 주중 경제조사관, 주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경제공사 등 해외근무를 7년간 경험해 국제감각을 쌓았다.
현 수석은 풍부한 대내외 현장경험과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키는 뚝심있는 성격의 소유자로 평가 받는다. 1998년 김대중 점부 출범 초기 청와대로 들어와 기획조정비서관을 지내며 각 부처의 정책업무를 총괄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꼼꼼하게 일처리를 하는 성격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1년 초대 여성부 차관에 발탁된 그는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7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로 복귀,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2005년 제12대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그는 "의사는 환자가 원하는 처방보다 환자에게 필요한 처방을 해야 한다. 정부가 원하는 처방보다는 필요한 처방을 제시하겠다"며 소신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49년 경북 예천 △197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행정고시(10회) 합격 △1982년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학 석사 △1993년 조지워싱턴대 경제학 박사 △1991년 주중국대사관 참사관 △1996년 재정경제원(옛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한 조직) 대외경제국장 △1997년 주(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경제공사 △1998년 대통령비서실 기획조정비서관 △2001년 초대 여성부 차관 △2002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2003년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2005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2010년 무역위원회 위원장 △2013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임종인 신임 안보특보>
신임 청와대 안보특보에 내정된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은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고려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 석사, 박사 학위를 받으며 주로 암호이론과 사이버 보안, 정보보호정책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이후 사이버국방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해킹, 디도스 공격 등 사이버 테러·사이버전에 대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01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에 처음 임명된 뒤 2010년 정보보호학회장을 맡는 등 학계에서 관련 분야의 '좌장' 역할을 해왔다. 재직 시절 대검찰청 사이버수사 자문위원장, 국가정보원 사이버보안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는 등 정부와 언론에 사이버 테러 관련 조언과 분석을 아끼지 않았다. 2003년에는 국가정보원장 유공자 표창, 2004년 대통령 정보화유공자 근정포장, 2012년 제1회 정보보호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지난 1997년 결혼한 부인 강은숙씨도 고려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Δ1956년 서울 Δ고려대 수학과, 고려대 수학석사, 고려대 수학박사 Δ고려대 정보보호기술연구센터(CIST) 소장 Δ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원장 Δ국가정보원 국가보안기술연구소 암호정책 자문위원 Δ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자문위원 Δ한국정보보호학회 회장
<우병우 신임 민정수석>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내정자는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 입성한 지 8개월 만에 대통령 친인척과 공직자 사정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실을 책임지게 됐다. 만 20세에 사법시험에 ‘소년(少年) 등과’한 데 이어 40대 후반에 민정수석까지 올랐다. 우 내정자의 사법연수원 19기 동기들은 일선 검찰청의 검사장이나 대검·법무부에 포진돼 있다. 그는 검사장 승진을 하지 못했고, 동기들에 비해 나이도 어린 편이다. 민정수석을 그동안 검사장이나 고검장급 인사가 맡았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발탁은 이례적이다.
그는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김기춘 비서실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실장이 민정수석을 건너 뛰고 직접 그에게 지시를 내리고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직을 다잡고 일을 밀어붙이는 기질 면에서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있다”며 “그가 어린 나이에 민정수석에 오른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경북 봉화 출신인 그는 서울대 법대 4학년 때인 1987년 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0년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대구지검 특수부장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대검 중수1과장, 대검 수사기획관 등을 거치면서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 검사로 꼽혔다. 그는 2009년 대검 중수 1과장 시절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다룬 ‘박연차 게이트’의 주임검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소환 조사를 받은 이후 갑작스럽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그 여파로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인규 중수부장이 사퇴했다. 그는 까다롭고 깐깐한 성격이지만 그를 거쳐 간 피의자들이나 선후배들 사이에서 “뚝심 있게 수사한다” “독한 검사”라는 평을 들어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에는 DJ 아들 수사로 이어진 ‘이용호 게이트’ 사건 특별검사팀에 파견됐다. 당시 차정일 특별검사가 “믿을만한 검사”라고 칭찬했다.
<권맑은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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