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업무보고> 검증안된 화려한 구상-실현 가능성은 글쎄?
통일부·외교부·국방부·보훈처가 19일 합동으로 진행한 '2015년 통일 준비 업무 보고'에는 각종 대북 협력 사업이 다양하게 포함됐다. 우선 통일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구상 실현을 위해 '나진-하산 물류사업' 등 한반도 종단 및 대륙철도 시범 운행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외교부는 서울~중국~러시아~베를린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친선 특급 열차를 운행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육상·해상 복합 물류 통로를 만들고 '한반도 국토 개발 마스터플랜'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는 두만강 다국적 도시와 DMZ 세계평화공원 개발 등 다양한 북한 개발 프로그램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경제 공동체를 향한 인프라 구축 작업도 시작된다. 이를 위해 개성공단과 관련한 제도 개선과 외국 기업 유치 등을 통해 공단의 국제화를 추진키로 했다. 개성공단을 남북 간 경제 협력의 거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통일박람회 2015'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통일 문화 스페이스'를 조성해 통일 관련 조형물 설치와 전시·공연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통일 관련 조직을 확대하고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각 부처에 통일 담당 공무원을 신설하고, 탈북 청소년들을 미래 통일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메르켈 프로젝트(탈북 대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고 체계적으로 멘토링하는 프로그램)'와 탈북 대학생에게 해외 연수 기회를 주는 'WEST 프로그램' 등을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북측과 농업·의료·환경 분야 협력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통일부는 남북 간 산림 협력과 공유하천 공동 관리, 결핵 치료 지원, 백두대간 보호 및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유산 등재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 '비전 코리아 프로젝트'도 본격 가동하기로 했다. 북한의 철도·도로·전력·통신 등 인프라를 확충하고 국제 금융기구 가입, 외자 유치 등을 지원해 북한의 경제적 자생력을 높여주겠다는 것이다. 또 국내외 민간단체 및 국제기구와 함께 북한 민생 개선 사업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대화'로 對北기조 바꾼 통일부 현재, 미 대북정책, UN제재와 모순요소 지녀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안보 부처의 합동 연두 업무 보고는 통일부가 주관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총괄 보고자'로 나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외교·안보 부처의 통일 준비 계획을 종합적으로 브리핑했다. 작년 외교·안보 업무 보고는 국방부가 주관했고, 장소도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국방부 청사에서 열렸다. 정부 관계자는 "업무 보고 주관이 국방부에서 통일부로 바뀐 것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정부 대북 정책의 무게중심이 '압박·제재'보다는 '대화'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남북 관계와 비핵화의 선순환?
이날 외교부는 업무 보고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 "북한 비핵화와 남북 관계 발전이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남북 관계와 비핵화 문제가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진전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표현은 이전에는 정부가 별로 사용하지 않았던 개념이다. 외교부의 작년 업무 보고에선 '남북 관계'라는 표현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한 외교 소식통은 "비핵화가 여전히 우리 정부의 핵심 목표인 것은 맞지만, 청와대의 방점이 남북 관계 개선 쪽에 찍혀 있는 만큼 비핵화 노력이 남북대화의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내·외신 브리핑에서도 "북핵 관련 남북 간 직접 협의도 모색해나갈 계획"이라며 "특히 6자 회담이 6년 이상 교착된 상황에서 비핵화 대화 프로세스가 하루속히 가동돼서 비핵화와 남북대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했다.
통일부도 작년엔 통일을 위한 3대 추진 전략에서 '북핵 해결 등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 추구'를 제1전략으로 내세웠지만, 올해는 '통일 공감대 확산 등 국민이 참여하는 통일 준비'를 가장 앞에 뒀다. 정부의 이런 분위기는 "비핵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을 남북대화가 지지하길 희망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미국 정부와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이날 "남북 관계 개선과 북한 비핵화를 선순환적으로 추진해나가기 위해서는 한·미 간에 대북 공조를 잘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자극 표현 완화, 인도적 지원 강조
이날 업무 보고에선 작년에 비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표현이 상당 부분 빠졌다. 작년 외교부 보고에 나왔던 '김정은 체제의 불확실성·불가측성'은 빠졌고 '안보리 제재 및 양자 제재 네트워크를 통한 대북 압박'은 '유엔의 단합된 대처'로 표현 수위가 낮아졌다. 통일부 업무 보고에서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등장하지 않았다. 한 소식통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이 흡수통일 야욕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며 "남북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차원"이라고 했다.
외교부는 작년과 달리 '대북 인도적 지원'을 강조했다. 국제보건기구(WHO), 유니세프 등과 인도적 지원 공조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윤병세 장관은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지원은 북한이 가장 고마워하는 분야이며, 남북 관계가 좀 어렵다 하더라도 협력하기 용이하다"고 했다. 통일부의 대북 지원, 교류 사업도 한층 다양해졌다. 지난해 '통일 친화적 사업'이라고 추상적으로 제시됐던 대북 사업은 올해 '통일헌장 제정' '통일 박람회 2015' 등으로 구체화됐다. 문화 교류도 '남북겨레문화원 개설 추진' '한민족 생활문화편람 추진' 등으로 폭이 넓어졌다.
국방부도 업무 보고 슬로건을 '튼튼한 국방, 평화통일의 기본 토대'로 정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통일정책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긴장완화로 신뢰 구축을 모색하고, 남북 교류협력사업 및 DMZ 평화공원과 관련한 군사적 지원 준비 등을 통해 통일 여건 조성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또 통일한국의 국방 설계를 위해 점진적·단계적 군비 통제 등 청사진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했다.
실현될지는 미지수, 전략적 수사 성격이 강해
통일부의 이번 보고는 이명박 정부 이후 끊겼던 남북 간 사회문화 교류협력을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광복 70주년 공동사업으로 5·24 우회
통일부는 이날 남북을 X자로 종단한 뒤 신의주를 통해 중국횡단철도(TCR)로, 나진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철도(TSR)로 각각 이어지는 철도 시범운행 계획을 밝혔다. 남북 철도 연결 구간 중 동해선은 일부가 연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따라 2007년 시험 운행한 경험이 있는 경의선을 이용해 한반도종단철도와 유럽을 잇겠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 사망하기 한 달 전쯤 남북 철도 연결을 지시해 유훈으로 남겼고 경의선 연결에도 애착을 보인 만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남북을 잇는 철도 시범운행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과 평양에 동시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남북겨레문화원(가칭)은 남북한 관계자들이 상주하면서 남북겨레말큰사전을 만들고 개성 만월대 발굴 성과 등을 전시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서는 남북 간 채널은 물론이고 대사관에 준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통일부는 남북 고위 당국자 간 광복 70주년 공동사업 협의 채널로 ‘남북공동기념위원회’를 설립한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정부는 이런 사업들을 5·24 조치 해제와 상관없이 추진하는 우회 전략을 활용할 방침이다.
북한을 대화와 비핵화로 이끌 전략은?
통일부가 이날 발표한 대부분의 계획은 남북대화의 진전 없이는 실현되기 어려운 사업들이다. 북한을 남북대화로 끌어들일 전략이 함께 제시됐어야 한다는 지적도 여기에서 나온다. 이날 통일부와 외교부의 구상은 북한 주민 삶의 질을 개선하거나 북한을 실질적 비핵화로 이끌어낼 전략적 로드맵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벤트성 사업을 통한 양적 확대에 만족하기보다는 남북 주민들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남북 교류협력의 질적인 향상을 이루도록 힘써야 한다. 창의적이고 실질적인 비핵화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관건은 북한의 대화 호응 여부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으면서 대북전단에 이어 한미군사훈련 문제까지 제기하고 있어 북한의 대화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북이 524제재조치의 확실한 답이 없는 이상, 구상대로 되기는 미지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