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들이 집토끼들의 심정을 알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수첩을 찍은 때아닌 사진 한장에 온 정치권이 들썩거렸다.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음종환 청와대 행정관이 가진 술자리에서 오고간 대화가 파문의 근원지로 밝혀지면서 묻혀가던 청와대 문건파동의 근원지가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그 배후가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이라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또 붉어졌다. 이 말의 진실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번 일로 행정관 직위에서 면직된 음종환은 "그런 말 한적 없다"고 말하고 있고, 이준석은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 배석한 신용한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장은 "'배후' 운운하는 얘기는 못 들었다"고 했고, 또다른 참석자인 손수조 청년위원도 "내가 있을 때는 전혀 배후 얘기가 안나왔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음종환 행정관의 '협박'까지 있었다는 이준석의 계속되는 '폭로'를 뒷받침할 다른 근거가 쉽게 나올 것 같지는 않은 모습이다.
이야기 주제는 '조응천', 이준석-음종환은 왜?
다만 참석자가 공통으로 기억하는 이야기 주제는 '조응천'이다. 조응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자기정치' 즉 공천을 받기 위해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에게 줄을 대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 이야기가 오고가는 과정에서 음종환이 '조응천이 공천을 위해 스스로 유승민 의원을 찾아갔고, 김무성 대표를 만나려 했다'고 말한 것인지, '처음부터 김무성-유승민 의원이 조응천을 조종한 진짜 배후'라고 단정적으로 말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술자리 발언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음종환과 이준석이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살펴보면 음종환이 '왜? 꽤 위험한 문건 배후에 대한 의혹을 이준석에게 말했는가'와, 이준석은 '왜? 그런 위험한 말을 다시 김무성에게 전했는가'가 천박한 정치가쉽성을 지녔지만 반드시 고치고 가야할 국정농단 사건의 본질이다.
친박 이정현 보좌관 음종환, 비박 유승민 인턴 보좌관 이준석
음종환 행정관은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보좌관을 지낸 최측근이다. 박근혜 정부 시작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온 그는 이정현 수석의 '보좌관'을 수행하면서 소위 십상시 명단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잘 나가는' 행정관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면직되기 전까지 홍보수석실 홍보기획비서관실의 선임 행정관으로 일하며 대표적인 정보 기획통을 꼽혔다. 대통령의 홍보전략을 기획하는 부서의 '선임' 답게 '뼈속까지 친박'으로 통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조응천 전 비서관부터 시작된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청와대가 뒤숭숭해지면서 배후에 대한 의혹을 품었다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는 일견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그런 의혹을 술자리에서 가까운 후배들 앞에서 털어놨다는 것도 음 행정관을 잘 아는 주변 동료들은 '그럴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음 행정관은 박 대통령의 둘러싼 오해를 풀어내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또 그런 의견을 그 자리에서 털어놓은 것도 이준석이 지난 2011년 박근혜 대통령이 비대위원으로 발탁한 '같은 친박 동지'로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준석이 현재도 친박이냐'는 것에 있다. 이준석의 배경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이준석은 2004년 유승민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다. 단순한 친박이 아니라 유승민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는 말이다. 유승민 의원은 원조 친박이었지만,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거리가 멀어진 사람이다. 5월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하지만, 이주영 의원을 미는 친박계의 견제를 받는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친박계에서 이탈한 이후 지난해에는 '청와대 얼라들(어린아이라는 경상도 사투리)'이라는 거친 표현까지 써가며 청와대 내부 보좌진들을 비난한 적도 있었다. '청와대 얼라'라는 표현에 십상시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음종환 행정관도 포함된다고 봤을 때 유승민과 음종환의 관계도 그리 좋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음종환은 대단한 말실수를 한 셈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음종환 행정관이 이준석을 단순히 후배로만 생각해 가감없이 얘기한 것 같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 정치적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내뱉은 술자리 발언이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킬지는 몰랐을 것"이라고도 했다.
엄청나지만 미확인 사안을 김무성에게 말 전달한 이준석의 이유는?
그렇다면 이준석은 왜 '파문이 적지 않을' 이 이야기를 김무성 대표에게 전달했느냐도 의문이다. 이준석은 지난해 12월 18일 술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한참이 지난 1월 6일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의 결혼식에서 김무성 대표에게 전했다. 결과적으로 그리 자연스러워보이지 않는 이 '말 전하기'가 결과적으로 친박과 비박의 싸움을 부추긴 꼴이 됐다. 이에 대해 이준석은 "당 대표는 알아야겠다?는 판단으로 청와대에 안팎에서 나오는 얘기를 김무성 대표에게 전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의혹의 출처는 밝히지 않았지만, 당시 주변에 있던 사람이 "그 사람이 음 씨가 아니냐"고 말하면서 이를 다 알게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말이 전해진 당시인 1월5일은 친박과 비박의 갈등설이 극에 달했던 시점이다.
박 대통령이 당선 기념일인 12월 19일 김무성 대표를 제외한 친박 의원 5명을 따로 청와대로 불러 만났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김무성 대표의 심기도 불편했던 즈음이었다. 때문에 김무성 대표도 이를 이준석에게 재차 확인한 뒤 수첩에 메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대표는 특히 "밖에 나가서는 이 얘기를 하지 말라"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혹의 파급력을 인식한 김 대표의 이 같은 경계심을 미뤄볼 때 과연 이준석이 김무성 대표에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을 전했는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여권 관계자는 "설명한대로 이준석 위원이 '당 대표는 알아야 되는 문제'라고 판단해 이를 전달했는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단순히 당 대표가 이를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더라도 일개 행정관이 술자리에서 발언한 말을 당 대표에게 심각하게 전달한 것은 '철없는 행동'이라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말 실수' 이은 철없는 '말 전하기'
술자리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얘기는 전달과 전달을 거쳐 한 언론사의 김무성 수첩 촬영을 계기로 확산되면서 당청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비박계인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청와대가 기강이 없으니 행정관들이 밖으로 나와 술자리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대통령을 향해 날을 세웠다.
반대편인 친박 이정현 의원은 "국민들이 정치권, 대통령, 정부에 바라는 것은 제발 먹고사는 문제에 전념해 달라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판단을 못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정치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맞섰다. 박근혜의 입으로 통하는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보좌관인 음종환 행정관의 가벼운 언사와 김무성 대표에게 이를 전한 이준석 전 비대위원의 철없는 '말 옮기기'가 친박과 비박, 당과 청의 갈등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4월 재보선 승리라는 당면 과제를 안은 김무성 대표에게나 경제혁신으로 하반기 국정운영을 준비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나 모두 뼈아픈 타격일 수 밖에 없다. 결국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각자의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봉합하려 했던 '당청 갈등설'을 유력의원의 보좌관과 갓 서른살이 된 정치 신인 때문에 다 망쳐놓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음종환 행정관과 이준석 전 비대위원의 나이차는 16살이다.
말바뀌는 이준석, 음종환
음종환은 청와대에 사퇴서를 제출한 후 "이준석 전 비대위원이 심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준석 전 비대위원에게 여성들의 이름을 대는 등 협박성 발언을 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선 "2년 전 손수조씨와 사귀면 어떠냐고 농담조로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협박을 한 적은 없다"고 정면 부인했다.
이준석 전 비대위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실관계에 있어서 음종환 행정관은 여성 이름을 거론한 적이 없으며 회사이야기를 한 적도 없다. 음종환 행정관의 사건 이후 (문자에 담긴) 질문들을 협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며 그동안 자신이 언론에 한 말들을 바꾸었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음종환 전 행정관은 이준석 전 비대위원에게 손수조 청년위원과 사귀라는 조언을 했었고 이를 이준석 전 비대위원이 언론 등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여자 문제와 관련된 협박'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음종환 전 행정관은 이준석 전 비대위원과 나눈 카톡 내용의 공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종일 정치권을 강타한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 중 특히, 새누리당 지지자(집토끼)들은 ‘실망’과 ‘자탄’을 넘어 청와대에 대한 지지마저 잃어가고 있다. 대통령과 주위, 청와대의 문제들, 새누리당의 문제들이 불거질 때 마다 묵묵히 입다물고 오로지 국가만을 위해서 일하고 봉사,지지해온 사람들에 대하여 이준석과 음종환은 사죄를 넘어 “정치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문제를 만드는 부류들이 사고칠 때 마다 말없는 지지로 문제를 해결해나간 많은 사람들, 실제 새누리당 안팍으로도 수십년씩 아무런 빛을 못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즉 <웰빙환경에 빛받으면서 사고치는 놈들 따로있고 음지에서도 오로지 민생과 국가정체성을 위해 대통령과 그 추운 겨울의 밤날씨 속에서도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시위했던 동지들은 이번 사건으로 기가 막힌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제는 우리내부에서도 정치모사꾼, 몰이배들 더 이상 봐줄수 없다. 또 정치책임자들도 정말 책임감과 충성도를 보시라, 좋은 스펙만으로, 사리사욕의 청탁아부에 속아서는 안된다. 실제 새누리당에서 하버드 출신으로 일한 사람치고 잘된 이가 없었다. 강용석 전의원이 그랬고 이번에 정치전문성도 한참 의심스러운 얼라 이준석이 그랬다” 그것이 지금 점점 박근혜 대통령 지지를 철회하고 새누리당을 떠나고 있는 많은 집토끼들의 심정이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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