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정 비상, 정부-장밋빛 환상 버려야
<경제특집>
법인세 인하에 내수 침체까지
살림살이가 나아지려면 쓰는 돈(지출)보다 버는 돈(소득)을 늘리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국가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세수 기반은 수입이 늘기 쉽지 않은 구조로 악화됐다. 법인세 인하로 수출 대기업들은 예전보다 세금을 덜 내는 데다 내수 침체로 부가가치세 등의 수입도 예전 같지 않다. 더구나 정부는 ‘장밋빛’ 세수 전망을 고집하고 있어 세수부족 현상이 만성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2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정부의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GDP 디플레이터(물가상승률과 유사) 전망치는 각각 3.7%, 1.8%다. 세금 수입의 기준이 되는 경상 GDP 성장률 추정치는 이 둘을 합한 5.5%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 등과 위 기관들의 자료를 종합해 보면 2001년부터 올해까지 연평균 실질 GDP 증가율은 4.1%, GDP 디플레이터는 2.2%, 경상 GDP 성장률은 6.3%를 기록했다.
국세 수입은 2001년 95조 8000억원에서 올해 206조 5000억원(추정치)으로 두 배 정도 증가했다. 연평균 증가 폭은 8조 5000억원, 비율로는 6.2%를 기록했다. 경상 GDP 성장률과 세수 증가율이 비슷한 수준을 보인 셈이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해당 연도의 성장률이 높으면 이듬해 세수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후행적인 추세를 보였다. 법인세와 소득세 일부는 전년도 실적을 기준으로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수가 17.0%나 증가한 2007년은 전년도 실질 GDP 성장률이 5.2%의 호황을 기록했다. 2000년대 들어 실질(7.4%)과 경상 GDP 성장률(10.5%) 모두 가장 높은 수치를 달성한 해는 2002년이다. 이는 이듬해 10.3%의 높은 세수 증가율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기재부는 이듬해 예산과 국세 수입을 편성하면서 그해 경상 GDP 경상성장률에 1.3의 지수를 곱해 국세 수입을 구해 왔다. 올해 경상수지 성장률이 5%면 내년에는 세수가 6.5% 정도 늘 것으로 예측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올해부터 지수를 1.0 정도로 재조정했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세수가 걷히는 정도가 최근 들어 큰 폭으로 떨어졌다”면서 “세정당국 입장에서는 금융위기 못잖은 비상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2011년 이후만 따지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 경상 GDP 증가율은 연평균 4.5%를 기록하지만 국세 수입은 연평균 7조 2000억원, 비율로는 3.9%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세수 증가분이 경제 성장률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이는 MB(이명박) 정부 때 단행된 법인세 인하가 2011년부터 본격화된 데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내수 침체까지 겹친 탓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법인세 인하에 따라) 법인세수가 수직 낙하한 뒤 쉽사리 회복되지 못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세수 부진의 만성화는 개선되기는커녕 앞으로 악화될 여지가 더 크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000년대 초반 5%대에서 최근 3% 후반대로 내려앉은 데다 유럽 경기는 장기 침체까지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내년에 연평균 6% 정도의 경상 GDP 성장률을 기록하고 세수가 5.9%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 데 대해 ‘장밋빛 전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올해 10조원에 육박하는 국세 수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최근 3년 연속 ‘세수 펑크’가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모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내년 경상 GDP 성장률을 6% 정도로 잡았지만 국회 예산정책처나 민간 연구소들은 이보다 0.5% 포인트 정도 낮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최근 들어 정부가 GDP 성장률를 과대평가하면서 만성적인 세수 부족 사태를 자초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전세대출 5년새 3배 급증 33조 육박,--'렌트푸어 비명'상태
은행권의 전세대출 잔액이 최근 5년여 간 3배 이상 급증하며 33조원에 육박했다. 특히 올 들어 은행권이 신규 취급한 전세대출이 월평균 1조원을 돌파하는 등 대출 증가세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가계소득은 제자리걸음인 반면, 전셋값은 수급불균형으로 연일 치솟자 '빚'으로 이를 충당하는 이른바 '렌트푸어'(Rent poor)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대출이 급증하면서 '깡통전세' 등 가계 및 금융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원석 의원(정의당, 비례)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은행권 전세대출 잔액은 32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말보다 4조8000억원(17.1%) 늘어난 수치로, 8개월 만에 지난 한해 증가분(4조6000억원)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전세대출 신청건수는 누적 기준 82만1000건에서 87만9000건으로 5만8000건(7.1%) 증가했다.
은행권 전세대출 잔액은 △2009년 10조5000억원 △2010년 12조8000억원 △2011년 18조3000억원 △2012년 23조4000억원 △2013년 28조원 등으로 매년 급증했고 올 4월엔 30조원을 돌파했다.
은행권 전세대출 잔액이 크게 증가한 것은 기존 대출 상환보다 신규 대출 속도가 더 빨라서다.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은행권의 전세대출 신규 취급액은 총 10조4000억원으로, 월평균 1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은행권의 월평균 전세대출 신규 취급액이 1조원을 넘어선 것은 금감원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1년 이후 처음이다.
이처럼 전세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는 이유는 저금리 기조에 따른 월세 전환 가속화 등으로 전세시장의 수급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전세가격이 치솟고 있어서다.
실제 박근혜정부들어 지난 9월까지 19개월간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평균 2485만원(15.9%) 올랐다. 서울의 경우 직장인 평균 연봉(2960만원, 2012년 기준)보다 많은 3810만원(14%)이나 급등했다.
전세대출이 급증하면서 집값하락 등으로 전세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소위 '깡통전세' 위험은 더욱 커졌다. 전세 보증금의 상당액을 은행대출로 조달한 세입자로서는 보증금을 받지 못하면 그대로 빚더미를 떠안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가계부실이 금융부실로 이어져 경제를 짓누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원석 의원은 "전셋값이 단기 급등하면서 빚더미에 내몰리는 서민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며 "전·월세 상한제 등 전·월세시장의 장기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주거안정대책을 조속히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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