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마린보이에게 박수
<스포츠 특집>
세계적인 체육경기대회에서 “금매달”을 따기가 쉬울까? 국제적인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많은 수의 금매달이 흔하고 쉽게 보이지만 출전하는 선수들에게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한마디로 인생 전체를 걸고 최선의 땀과 노력, 경기기량이 갖추어져도 가능할까 말까다.
금,은,동매달의 차이도 별반 차이가 없다. 수영이나 육상경기등 스피드 경기들의 경우 불과 영점 몇몇초 차이다. 사실상 금,은,동의 차이는 선수의 운과 컨디션도 작용한다. 박태환이 금매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고 해서 마냥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운동 전문가들은 “자신보고 해보라”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올림픽의 정신도 금매달보다 운동정신, 최선을 다하는 정신, 경기과정을 더 높이 산다. 우리 국민들은 이제 박태환에게 "수고했다. 할만큼 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박태환이 국민들에게 보여준 노력과 땀은 최선을 다하는 자세의 보기좋은 드라마였다.
'마린보이' 박태환(인천시청)이 새로운 기록을 작성했다. 그러나 의미가 남다르다. 무엇때문일까? 한국은 26일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경영 마지막날 남자 혼계영 400m에서 3분 39초 18의 기록으로 3위를 차지했다. 이날 대표팀의 최종 주자로 나선 박태환은 아시안게임 통산 20번째 메달을 획득, 아시안게임 한국인 최다 메달 기록을 경신했다.
경기고 재학시절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박태환은 자유형 200m를 시작으로 400m-1500m를 석권했다. 고등학생인 박태환이 세계 무대로 진출하는 계기였다. 당시 박태환의 3관왕은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 이후 24년만의 기록이다. 당시 최윤희도 3관왕에 올랐다. 하지만 남자 선수로서는 최초의 기록이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서 박태환은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 최초로 수영종목에서 세계 정상에 올랐다. 또 당시 박태환은 자유형 200m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하며 사실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2009년 로마 세계 선수권에서 부진했던 박태환은 이를 악물었다. 당시 후원사였던 SK텔레콤이 마이클 볼(호주)전담 코치를 박태환과 만나게 하며 다시 기량을 끌어 올렸다.
그 결과 박태환은 201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올랐다. 박태환이 따낸 금메달은 자유형 100m-200m-400m. 1500m 장거리 선수로 시작한 박태환이 자신에게 맞는 단거리 종목으로 변신하면서 완벽하게 살아났다.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박태환은 2011 상하이 세계 선수권에서도 펄펄 날았다. 특히 자유형 400m에서는 1번 레인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막판 스퍼트로 역전에 성공, 1위에 올랐다.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수영장에서 박태환은 힘겨운 싸룸을 차지했다. 하지만 본인이 해낼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자유형 200m를 시작으로 자유형 400m, 계영 400m-800m 모두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비록 자유형 1500m 에서 철저하게 숨겼지만 목표로 했던 금메달은 아니지만 분명 의미있는 성과다.
특히 박태환은 20번째 메달을 후배들과 함께 일궈냈다. 혼계영 400m에 출전한 박태환은 박선관, 최규웅(이상 한국체대), 장규철(강원도청) 등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후배들도 박태환의 아시안 게임 20번째 메달을 위해 역영을 펼쳤다. 또 후배들이 차려놓은 밥상을 박태환이 마무리 하며 동메달을 따냈다.
혼자 힘으로 한국 수영을 이끌던 박태환은 동료들과 '함께' 20개의 메달을 따냈다. 그의 동메달과 신기록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국민들은 마린보이 박태환에게 금매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하지 않는다. 끝까지 보여주는 그의 꾸준하게 노력하는 자세, 비록 금매달은 아니더라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겸손한 자세의 영웅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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