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방중 성과와 숙제
한·중 '경제 회복' 물꼬 텄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첫 중국방문 일정이 16일 마무리됐다. 국빈 방문 형식으로 진행된 문 대통령의 이번 방중은 그동안 사드 갈등으로 경색됐던 한중관계를 본격적인 정상화 궤도에 올려놓는 중요한 모멘텀이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사드 갈등에 따른 보복조치를 사실상 철회하고 경제와 무역, 관광 등 실질협력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임으로써 '실리외교' 측면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세번째로 만난 문 대통령은 자존심을 앞세우기보다는 실리를 얻기 위해 철저히 몸을 낮췄다는 평가다. 또 지난 25년간 경제분야에 초점이 맞춰졌던 양국 협력의 틀을 정치·안보분야로 확장하고 정상간 소통 강화를 위한 '핫라인'을 가동한 것이 주목된다. 다만 사드 문제를 둘러싼 양국간 이견은 '불완전 연소'된 상태여서 상황에 따라 갈등을 재연시킬 수 있는 불씨로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한,중 양국은 지난 14일 문 대통령와 시진핑 국가주석, 15일 문 대통령과 리커창 총리의 회동을 거치면서 관계복원을 공식화했다. 시 주석과 리 총리 모두 사드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거론하기는 했으나 종전보다 어조를 낮췄고, 한중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복원시켜나가야 한다는 데 확실히 무게를 싣는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방중을 계기로 세번째 대좌한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 10·31 한중 정부간 '사드 합의'의 흐름을 살려 양국 관계의 완전 정상화를 향한 정상 차원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줬다.
문 대통령은 "최근 양국 간 일시적 어려움도 오히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고, 시 주석은 회담에서 지난 10·31 사드 합의 이후의 상황을 평가하면서 "관계개선의 모멘텀이 됐다"고 강조했다. 국가서열 2위로 경제를 총괄하는 리 총리도 문 대통령과 회동한 자리에서 '봄'을 소재로 관계 정상화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리 총리는 "일주일 지나면 동지(冬至)가 올 것"이라며 "중한관계의 봄날을 기대할만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한중관계를 바둑에 비유하며 "미생의 시기를 거쳐서 완생의 시기를 이루고 또 완생을 넘어서서 앞으로 상생의 시기를 함께 맞이하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방중 기간 중국을 "대국" "높은 산봉우리"로 치켜세우고 한국을 "작은 나라"로 지칭하는 등 철저히 몸을 낮추는 실리외교를 통해 중국의 사드문제 거론수위를 낮추고 보복조치를 실질적으로 철회시키는 성과를 낳았지만 한편으로는 ‘저자세 외교’라는 국가자존심 홰손 지적도 받게 됐다. 한편 리 총리는 15일 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중국 측이 사드 문제를 이유로 한국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가했던 '보복 조치'를 사실상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리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양국 경제·무역 부처 간 소통 채널을 재가동하고 그동안 중단됐던 다양한 협력사업들을 재개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리 총리는 사드 문제로 인해 한국 기업들의 대중 투자환경이 악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리 총리는 또 한국이 내년 2월 개최하는 평창동계올림픽과 중국이 2022년 개최하는 동계올림픽을 고리로 관광교류 활성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리 총리는 "평창올림픽 개최기간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고, 내년과 2022년을 상호 방문의 해로 지정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방중을 계기로 전(全)분야에 걸쳐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심화하는 것을 넘어 수교 25주년을 맞은 양국관계의 틀을 새롭게 '재조정'한 것이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양국은 무엇보다도 '경제'분야에 치중된 협력분야를 '경제'에서 '정치·안보'로 확대해나가는 데 합의했다. 이는 동북아 역내 핵심 플레이어로서 한반도 현안에 있어 공조를 모색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소(小) 다자그룹으로 볼 수 있는 한·미·중, 한·중·일 등 역내 국가들과의 새로운 협력 메커니즘도 제안했다. 양국 정상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4대 원칙'에 합의한 것은 이번 방중의 주요 성과물이다. 4대 원칙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한반도의 비핵화 원칙을 확고하게 견지한다 ▲북한의 비핵화를 포함한 모든 문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남북한 간의 관계 개선은 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문제를 풀어가는 원칙과 방향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함께 풀어갈 것이냐 하는 '공통의 로드맵'은 나오지 않았다. 특히 문 대통령의 2단계 북핵해법 구상이나 중국의 '쌍중단'(雙中斷)론은 회담테이블에서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다. 당초 문 대통령이 대북제재에 미온적인 중국 정부를 향해 대북 원유공급 중단 등 '더 강력한 역할'을 요청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으나 원론적 수준의 협력을 요청하는 선에 그쳤다.
세번째 만난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번 방중을 계기로 정상 차원의 신뢰와 우의를 돈독히 다졌다. 14일 오후 4시30분 공식환영식에서부터 시작된 두 정상의 만남은 저녁 9시30분 한중 문화교류의 밤 행사가 끝날 때까지 5시간 동안 이뤄졌다. 여권의 고위인사는 "두 정상이 5시간 동안 옷 갈아입는 시간을 제외하고 끊임없이 소통하고 대화했다"며 "국빈 만찬에서도 두 정상이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양자와 다자외교 계기는 물론 전화 통화와 서신 교환 등 다양한 소통 수단을 활용해 정상 간 '핫라인'을 가동하기로 합의했다. 시 주석이 평창동계올림픽에 반드시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의미가 있다. 시 주석은 문 대통령의 방중 초청에 대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여의치 못할 경우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시 주석이 최소한 리 총리나 상무위원급에 해당하는 고위급 대표단을 한국에 보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사드 갈등 불씨 남아…'홀대론'·기자폭행 사건 아쉬움 남겨
주목할 점은 사드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이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점이다. 물론 종전보다 수위가 낮아지기는 했으나 문 대통령을 만난 중국 권력서열 1,2,3위의 지도자가 잇따라 사드 문제를 제기했다. 시 주석은 문 대통령에게 사드 문제를 거론하며 "한국이 적절히 처리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고, 리 총리는 완곡한 어법이지만 "한국과 중국이 민감 문제를 잘 처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장더장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양국은 사드의 단계적 처리에 의견을 같이했다"며 미묘한 언급을 내놨다.
물론 이들의 언급은 사드 갈등을 '확대'하기보다는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해나가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다만 한반도 정세와 안보상황에 따라서는 한중관계 개선 흐름에 복병으로 작용할 공산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3일 문 대통령 내외가 중국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 영접나온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의 격(格)이 논란이된 이후 국내 일각에서 '홀대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을 수행 중인 여권 고위인사는 "의전과 전반적 예우로 볼 때 홀대론을 제기할만한 상황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중국 측 경호원들이 과잉경호를 넘어 문 대통령을 근접 취재 중이던 사진기자 두 명을 집단폭행하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빚어진 것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