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우꾸라지’, 결정적 송곳 없는 변죽 청문회
역시 ‘우꾸라지(법률 미꾸라지)’였다. 검찰 출두 이후 한 달 보름 만에 22일 '최순실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태도는 뻣뻣하기 이를데 없었다. 여야 의원들의 잇따른 추궁에 맞서 "송구하다"는 입장 표명은 했지만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서는 "나는 할 일을 했다"는 식의 예상답변을 이어갔다. 특히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관계와 가족회사 돈 유용 등 핵심의혹들에 대해서는 시종 모르쇠와 부인으로 일관했다. 이 같은 우 전 수석의 우꾸라지 태도에 일부 의원은 할 말을 잃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번 사태의 핵심 증인을 청문회장에 세워놓고도 결정적 '한 방'을 찾아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린 국정조사특위의 역량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우 전 수석이 이날 국회 청문회장이라는 공식 석상에 나타난 건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됐던 지난달 6일 이후 46일 만이다. 이날 청문회의 가장 핵심적인 증인으로서 여야 의원들의 질문 공세가 집중됐지만 우 전 수석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일관된 목소리 톤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첫 질의자였던 새누리당 정유섭 의원이 가족회사 '정강'의 자금 유용 의혹을 제기하자 우 전 수석은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최순실씨를 아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현재도 (개인적으로) 모른다. 언론에서 봤다"고 답했고, "그럼 전부 근거 없는 의혹이냐"라는 질문에 "전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하자 정 의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 전 수석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여러 관련 문제는 제 입장에선 다 억울하고 근거 없다"면서 "하나만 하면, 저희 외제차 4대가 아니다. 한 대는 법인용 차량이고, 개인용 차량 국산차, 그렇게 두 대"라고 밝히기도 했다. 안봉근·이재만·정호성 등 '문고리 3인방'과의 관계에 대해선,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이 "문고리 3인방이 식사도 하고 자주 어울렸느냐"고 묻자 "자주라기보다는 뭐…"라고 답하며 우회적으로 친분을 인정했다.
그러나 우 전 수석은 '문고리 3인방'과 만난 자리에서 최순실씨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전혀 (나오지 않았다)"라며 "'묻지 말라'는 느낌보다는 말을 안 하니까 (못 들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2년 전 광주지검의 세월호 사건 수사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압수수색 하지 말라고 전화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다만 이후 답변에서 우 전 수석은 검찰이 참사 당일 청와대와의 통화 내역이 담긴 해양경찰청 서버를 압수수색할 때 수사팀 간부에게 전화한 사실이 있다고 시인했지만, 개입이 아닌 '상황 파악 차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민정수석으로서 열심히 일한 결과가 대통령 탄핵"이라고 지적한 데 대해선 "제가 사전에 좀 세밀히 살펴보고, 미리 알고, 막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면서 "그런 부분은 제가 미흡했다"고 시인했다. 국정조사 특위 위원장인 김성태 위원장은 오후까지 이어진 우 전 수석의 '불량한' 답변 태도를 지적했다. 특히 우 전 수석이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메모를 하자 "여기가 무슨 민정수석실 회의장인 줄 아느냐"면서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호통쳤다. 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질의 도중 "우 수석은 거짓말을 할 때 눈을 세 번 이상 깜빡인다"면서 "카메라가 우 수석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은 "경기도에서 아버님이 교장으로 퇴직했느냐"면서 "아버님의 명예를 걸고 답하라. 김기춘 전 실장을 존경하느냐"고 우 전 수석을 압박했다. 그럼에도 우 전 수석은 "제가 모신 비서실장이라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증인의 태도를 지적하는 차원을 넘어 사태의 진상 규명에 기여할 만한 '송곳한방' 질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우 전 수석의 장모 김장자씨 소유 골프장 종업원 음성 녹취록을 공개한 민주당 김경진 의원을 제외하고는, 위원들이 제기한 의혹 대부분은 기존에 알려진 언론 보도에 근거한 것이었다.
한편, 이날 평소 우 전 수석을 '우꾸라지, 법률 뱀장어'로 맹공해온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우 전 수석이 직접 대면해 눈길을 끌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청문회장을 들렀다 우 전 수석과 눈이 마주쳤다. 이와 관련 박 원내대표는 SNS에 올린 글에서 "얼굴이 핼쑥해졌지만 레이저 눈은 그대로이다. 제가 청문회장에 들어서니 저를 쳐다본다. 그러면서도 '법률 미꾸라지' 김기춘 전 비서실장처럼 왜 청문회 안 나오고 도망쳐다녔느냐는 질문 등에 무조건 부인한다"고 우 전 수석의 구속을 촉구했다.
노승일 "차은택 법적 조력자, 우병우가 소개" 증언
한편,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22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최순실 씨의 측근인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을 모른다고 한 것과 관련, 우 전 수석이 차 씨에게 '법적 조력자'를 소개해줬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상반된 주장을 폈다. 노 전 부장은 이날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차은택의 법적 조력자가 김기동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김기동을 누가 소개해줬느냐고 하니 '우병우가 소개해줬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김기동'은 현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 단장을 뜻한다.
노 전 부장은 이 같은 전언을 오랜 지기인 최 씨의 또 다른 측근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고영태에게서 들었고, 고영태도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들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노 전 부장은 '결론적으로 우병우와 최순실은 잘 안다는 뜻이냐'는 새누리당 장제원 의원의 질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우 전 수석은 노 전 부장의 주장에 대해 "말이 안된다"고 전면적으로 부인하며 "차은택이든 김기동이든 불러서 확인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노 전 부장은 차 전 본부장이 김기동 단장으로부터 법적 도움을 받은 게 정말 사실이냐는 새누리당 백승주 의원의 질문에 "받았을 것이란 내 개인적 생각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전 부장은 백 의원이 "상상력을 가지고 증언을 하느냐"고 추궁하자 "개인적 생각으로 이해하고 받아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기동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은 노 전 부장의 주장을 강하게 부인하며 "올 3월 말 잘 아는 후배 검사와 차씨 등 고교 동창 3명이 저녁 먹는 자리에 우연히 합석해 함께 밥 먹고 밥값을 계산한 게 전부"라며 "따로 차씨를 만나거나 전화 통화한 사실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노 전 부장은 최순실 게이트를 밝힐 핵심 근거로 지목된 태블릿PC에 담긴 증거자료의 신빙성 논란과 관련해 "태블릿PC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입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노 전 부장은 "검찰에 제출한 내 자료에는 대통령 연설문도 있고 청와대 문건이 파일로 한 건 한 건씩 들어 있다"면서 "대통령 연설문 같은 경우 독일에 있을 때 최순실이 쓰던 노트북에서 카피(복사)해서 가져왔고 청와대 문건도 내가 쓰던 컴퓨터를 최순실이 잠깐 사용해 그것을 카피해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트북 컴퓨터 소유자가 모르게 복사한 것은 범죄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범죄임을) 알고 있다. 세상에 밝혀 깨끗한 나라가 됐으면 했다"면서 "처벌받겠다"고 말했다.
문고리 3인방은 26일 구치소 청문회
한편,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위는 오는 26일 동행명령을 두 차례 거부한 최순실 씨,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 수감된 구치소를 직접 찾아가 현장 청문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최 씨에 대한 청문회는 오전 10시 서울구치소에서, 안 전 수석과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청문회는 오후 2시 남부구치소에서 열린다. 이를 위해 특위는 국정감사·조사에 관한 법률 제11조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10조를 근거로 이들에게 서울·남부 구치소에 마련된 현장청문회장으로 출석하라는 내용의 제3차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기로 의결했다.
김성태 특위 위원장은 "가장 중요한 증인인 이들은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안이며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동행명령을 거부하고 기어코 출석하지 않았다"며 현장 청문회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최 씨를 비롯한 이들 핵심 증인 3명은 이날 현장청문회도 거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