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국회 전격 방문, ‘국회추천 총리 수용’ 새 국면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8일 국회를 전격 방문해 김병준 국무총리 지명을 사실상 철회하고 국회가 새 총리를 여야 합의로 추천해달라는 입장을 밝히며 한발짝 물러나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정국이 풀려갈 실마리는 찾는 듯 하지만, 여야 입장차가 커서 출구까지는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제안을 환영하며 여야 협의에 착수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으나 동력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거의 없다. 야권은 "여전히 미흡한 불통 정치"라며 '완전한 2선 후퇴'를 약속하라고 요구하며 국회 추천 총리 협의를 위한 공식 협상 테이블은 열리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에 좋은 분을 추천해 주신다면 그분을 총리로 임명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야당에서 반발해온 '김병준 카드'를 지명 6일 만에 사실상 철회하고 야권이 원하는 총리를 지명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의장은 "국회가 적임자 추천을 하면 임명을 하고 권한을 부여해야 하고 차후 권한부여에 대한 논란이 없도록 깔끔히 정리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박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김 내정자도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기자들에게 "저를 끌어내리는 방법은 여야가 새로운 총리에 빨리 합의해 내가 사라지게 하거나 대통령께서 지명 철회를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과 정치권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야 3당은 즉각 박 대통령의 제안을 평가절하하면서 완전한 권한 이양, 2선 후퇴, 탈당 등을 약속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총리에게 조각권을 주고 일절 간섭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국회 추천 총리에게 실질적 운영권을 주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면서 "국민과 야당은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요구했는데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인지, 계속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으로 남겠다는 것인지 책임 있는 말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는 기자들에게 "나와 야당이 제안한 거국중립내각의 취지와 다르고 민심과도 많이 동떨어져 있다"면서 "국회 추천만 중요한 게 아니라 총리에게 조각권과 국정 전반을 맡기고 대통령은 국정에서 2선으로 물러선다고 하는 것이 나와 야당이 제안한 거국 중립내각의 취지"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대통령은 탈당과 책임총리의 권한에 대해 명확한 입장부터 발표해야 한다"면서 "국민의 뜻에 따르는 대통령의 책임 있는 결단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무 언급이 없었다"면서 "성난 민심은 대통령의 하야, 탄핵, 2선 후퇴를 얘기하는 데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만 하면 그 총리가 뭘 하겠느냐"라고 비판했다.
반면 여당인 새누리당은 지금까지 박 대통령의 행보에 비판적이었던 비주류까지 나서 야당의 대승적 수용을 압박했다.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오늘의 대화가 막힌 정국에 물꼬를 트고, 얽힌 난국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면서 "야당도 국정 파탄과 헌정중단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현 정국을 풀기 위한 야당의 대승적 결단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비박(비박근혜)계 잠룡인 김무성 전 대표는 "대통령이 정치권의 의견을 받아들여 사실상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한 것 아니냐"면서 "아주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유승민 의원도 "국민적 요구에 미흡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대통령께서 야당의 주장을 일부 수용했다. 사태 수습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총리의 권한행사 범위 등 불명확한 부분에 대해 논의하고, 정치권이 요구해온 거국내각과 특검 등에 대해 협의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여야 정치권이 사태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 의장은 이날 오후 여야 3당 원내대표를 불러 박 대통령과의 회동 내용을 설명했다. 여야는 이 자리에서도 박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여전히 각자 기존 입장을 고수한 채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그런데 큰 문제는 또 있다.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보인 대통령의 행보에 숨은 의중은 백기를 든 듯하나 완전히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야당과 국민은 이를 잘 읽어야 한다. 특히 야당은 무조건 막연하고 추상적이며 법률적 정치적 용어도 아닌 2선후퇴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명확히 대통령에게 대안을 제시하며 제도권의 야당으로써 책임있게 무엇무엇 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현재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민신망을 잃어 정치적 동력이 없고 이 상황에 야당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만 얽매여 국민 눈치만 보고 따라간다면 야당마저 수권능력이 없어 국민들에게 버림받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