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정 빨간불인데 정쟁에 날샌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일국의 경제수장들이 최근 미국까지 가서 신경전을 벌였다. 갈수록 힘이 빠지는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한은은 금리를 더 낮춰야 한다', 하고 '기재부는 재정을 더 풀어야 한다'를 놓고, 서로 '네가 먼저 하라'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문제는 심각하다. 2년 뒤 우리나라는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14%를 넘어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가만히 있어도 노인은 불어나 돈 쓸 곳은 많아진다. 그러나 세금을 내는 주력세대인 생산가능인구는 벌써 올해를 기점으로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20년 뒤에는 재정이 마비될 것이라는 경고는 현재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이미 나와 있었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위기에 대응해 어떻게 실탄을 비축할지, 정권 초기부터 머리를 맞대도 한참 늦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경제 살리기 추경' 또는 '초이노믹스'라는 이름으로 재정을 헐어 쓰는 데만 급급했다. 이미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다. 이도 모자란 듯, 정부의 경제 수장이라는 사람들은 추가로 더 곳간을 열지 말지에 대한 논쟁으로 시간을 허송하고 있다.
“2036년 재정마비"-쓰일 곳은 많은데 부담할 사람들이 없기 때문
일단 통계청의 장기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올해 15세~64세 생산가능인구가 3704만명으로 최고 정점을 찍었다. 앞으로는 줄어들 일만 남았다. 반면 노인인구는 계속 늘어난다. 내년에는 유소년(0-14세) 인구보다 노인 인구가 더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예상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8년, 우리나라는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세금 내는 주력인구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노인이 늘어난다는 것은 세금을 써야할 곳은 계속 늘어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예산정책처의 추계에 따르면, 현행 세입과 세출 구조를 유지할 경우 2016년부터 2060년까지 국세 수입은 연평균 3.6% 증가하지만, 지출은 해마다 4.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수입이 늘어나는 것보다 쓰는 속도가 더 빠르다. 부족한 수입은 빚으로 막아야한다. 국가채무는 급속도로 늘어난다. 올해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9.5%지만, 2016년에는 151.8%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쉽게 말하면, 올해 국민 한 사람이 지는 국가채무는 1300만원이다. 이대로 가면 20년 뒤인 2036년에는 재정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즉 나라빚 원금은 커녕 이자도 갚기 힘든 재정 위기가 20년 안에 찾아온다는 의미다.
현재 세수증가율 8.8%→3.0% 급감
법인세 증가 등에 힘입어 든든하게 채워졌던 나라 재정이 내년에는 쪼그라들 위기에 처해 있다. 올해 구조조정의 여파로 전체 세수의 20%를 차지하는 금융업종의 실적이 악화되고 삼성·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의 악재까지 더해지면서 내년 법인세 증가율이 감소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양도소득세 증가의 원천이 된 부동산 경기도 어둡다. 16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16~2020년 국세수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국세수입은 전년대비 3.0% 증가한 244조2000억원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내년 국세수입 전망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규모면에서는 올해보다 늘어나겠지만 전년실적 대비 세수증가율이 지난해 6.0%, 올해 8.8%(전망치)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세수입의 감소는 올해부터 감지되고 있다. 올해 국세수입의 전년동월대비 증가율은 1분기 27.5%에서 4월 23.1%, 5월 20.3%, 6월 17.8%, 7월 14.9%, 8월 13.7%로 감소추세에 있다는 점에서 내년 세수감소를 예측할 수 있다. 특히 올해 기업들의 실적이 내년 법인세수 실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법인실적 악화는 내년 법인세 감소의 원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선 조선·해운업종의 구조조정으로 관계은행이 2조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전체 금융업종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전년동기대비 32%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전체 세수의 약 20%를 차지하는 금융업종의 실적 악화가 내년 법인세수 증대를 제약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하반기 터진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 단종과 현대자동차 파업으로 인한 두 회사의 실적악화, 한진해운발 물류대란 등으로 인한 기업들의 매출 감소 등도 세수감소의 주요인이 될 전망이다.
연결재무제표 제출대상 12월 결산 상장법인 514개사의 올 상반기 매출액은 전년동기대비 0.6% 증가했으며 영업이익과 연결순이익은 각각 14.4%, 20.2% 증가했다. 하지만 이는 삼성전자, 현대차 사태로 인한 영업손실이 포함되지 않은 상반기 실적이다. 전체 상장법인 매출액의 12.5%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손실이 포함될 경우 법인순익은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노트7 중단으로 7조원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현대차는 생산손실만 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부동산 시장 전망도 좋지 않다. 지금까지 소득세 증가를 이끌었던 건 양도소득세가 미국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 영향을 받아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보고서는 내년 소득세를 68조1000억원으로 전망하며 올해 증가율(7.3%)보다 낮은 4.5%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지난 2013년 하반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누렸다면 올해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내년 중 우리나라도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유동성이 감소하고 이로 인한 투자심리가 약화돼 부동산 시장이 위축될 것이란 분석이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 주택거래가 줄어들고 그만큼 양도세수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는 내수 부진으로 세수증가율이 올해 8.6%에서 내년 4.1%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소비부진으로 국내 부가세수는 줄어들지만 통관수입이 감소세에서 증가세로 전환되면서 수입 부가세 세수가 증가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밖에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유가상승에 따른 유류소비가 줄어들면서 세수증가율이 8.5%에서 2.0%로 하락하고 개별소비세도 담배소비 둔화로 9.0%에서 3.7%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한 전문가는 "올해 국세가 많이 걷혔다고 안심해도 되는 상황은 아니다"며 "부동산 활황에 따른 양도세 증가와 비과세감면 효과 등으로 소득세가 늘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앞으로 세수가 더 걷힐 것이라 생각은 무리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기가 좋아지면 법인세가 더 걷히겠지만 기업 수익성이 더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며 "해운, 철강 쪽이 살아나면 좋은데 그쪽도 어렵고 삼성, 현대 악재에 게다가 국민소득이 막 늘어나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경기 관련해서는 세수를 낙관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른 경제 전문가는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와 국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말 걱정된다. 구체적인 대비책이 보이지 않는다. 국정감사는 엉망이고 안보는 불안하며 맨날 정쟁에 날이세고 있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스포츠닷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