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전산업은행장 고백폭로, 일파만파 논란, 파장 번지는 중
홍기택 전 KDB금융그룹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지난달 31일 중국 베이징에서 경향신문 취재진에게 지난해 이뤄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2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과 관련 “청와대·기획재정부·금융당국이 결정한 행위로, 애초부터 시장원리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으며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말했다. 또 산업은행 자회사의 최고경영자(CEO), 감사, 사외이사 등에 대한 인사와 관련해서는 “청와대가 3분의 1, 금융당국이 3분의 1을 자신들 몫으로 가져갔고 산업은행이 자체적으로 행사한 인사권은 3분의 1 정도였다”고 밝혔다.
홍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활동하다 2013년 4월 KDB그룹 회장에 임명됐다. 이후 3년 가까이 산은을 이끌다 지난 2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로 발탁돼 현재 베이징에 머물고 있다. 홍 전 회장의 발언은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드러난 국책은행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 금융계의 관치 실상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그는 대우조선 지원에 대해 “지난해 10월 중순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당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등으로부터 정부의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다”며 “당시 정부안에는 대우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은과 최대 주주 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얼마씩 돈을 부담해야 하는지도 다 정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산은은 채권비율대로 지원하자고 했지만 그렇게 될 경우 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크게 떨어질 것을 우려한 정부가 산업은행으로 하여금 더 많은 지원을 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당시 대우조선에 대한 수은과 산은의 채권비율은 53% 대 22%였지만 최종 지원금액은 산은 2조6000억원, 수은 1조6000억원으로 결정됐다.
그는 또 “STX조선과 팬오션 문제가 불거진 2013년에도 정부는 서별관회의에서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파장이 크다’며 산은에 무조건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통해 떠안으라고 했다”며 “실사 결과 STX조선은 살리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와 자율협약으로 갔지만 팬오션은 자율협약으로 가면 채권단이 2조원의 손실을 입을 상황이어서 우여곡절 끝에 법정관리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우조선 회계부실에 대한 산업은행 책임에 대해 “인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대주주의 권한만으로 자회사 부실을 알아내기는 힘들었다”며 “(낙하산으로 임명된) 대우조선 사장이 오히려 대우조선 회계를 들여다보던 산업은행 출신 감사를 해임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우상호, “홍기택 폭로, 청문회 불가피”
한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 대우조선해양 혈세 투입 과정에 청와대 등 박근혜 정권 실세들이 개입했다는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의 '자폭 발언'에 대해 국회청문회 개최 가능성을 언급하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우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어제 상당히 충격적인 보도를 봤다. 홍기택 산업은행장이 이른바 서별관회의란 이름의 회의를 통해 3인이 모인 자리에서 대우조선해양 지원을 결정했다고 이야기했다"며 '홍기택 자폭발언'을 언급했다.
그는 "최경환·안종범·임종룡 세 사람은 서별관회의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고 어떤 대책을 논의했는지, 배경은 무엇인지 명백히 밝혀주길 바란다"며 이번 사건은 청와대 등 현 정권 실세 개입 사건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게 사실이라면 결국 수많은 실직과 엄청난 재원을 들이부어야 하는 구조적인 조선산업 부실이 서별관 회의에서 결정됐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우 원내대표는 "국민들은 엄청난 공적재원이 들어가는 구조조정의 전 과정이 몇년전 어떤 과정에서 어떻게 시작했고 은폐됐으며 어떻게 연장됐는지 알아야겠다"고 밝혔다.이어 "엄청난 액수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이 사안이 어디서 시작됐고 어떤 관치금융과 정책적 수단이 동원됐는지 20대 국회에서 청문회를 개최할 수밖에 없다"며 청문회 개최 가능성을 경고했다.
청와대, “특별히 언급할 가치가 없다”
한편, 청와대는 대우조선해양 유동성 지원을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금융당국이 결정했다는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의 인터뷰와 관련해 "개인 주장에 대해 특별히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8일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이같이 언급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