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삼부작 중 두 번째 '말하는 건축 시티:홀' 선보여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영화 '말하는 건축 시티:홀'은 서울시 신청사 건립을 둘러싼 논란을 다룬 작품이다. 논란이 된 사안을 차근차근 살펴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논란 자체가 영화의 중심축은 아니다.
정재은 감독은 고발보다는 사안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훨씬 더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발주처·시공사·건축가의 엇갈리는 이해관계, 건축에 대한 그들의 고뇌, 사업적·인간적 교류가 더욱 도드라진다.
이러한 작업은 전작 '말하는 건축가'(2012)의 연장 선상이라 할 만하다. 전작이 작고한 건축가 정기용(1945-2011)의 삶에 표적을 맞혔다면 이번 영화는 좀 더 다양한 인물들로 시선을 분산했다. 전작이 독주라면 이번엔 교향곡인 셈이다.
"만들면서 고발보다는 현장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뀌었어요. 영화는 딱딱한 보고서나 책과는 다르잖아요. 영화 안에 삶이나, 살아가는 모습이 담기지 않으면 영화가 가진 매체의 장점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말하는 건축 시티:홀'을 만든 정재은 감독의 말이다. 정 감독을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 논란이 뒤따랐던 건축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뭇매를 많이 맞았던 서울시 신청사는 최적의 소재였다. 발주처, 시공사 등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을 전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공건물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담기도 수월했기 때문이다. 특히 건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키지 못하는 '가치'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담아낼 수 있었다.
"거대한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한 개인이, 디자이너가, 자신의 건축 철학을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가를 그리려 했어요. 사실 거대한 건축물이라도 그 안에 건축가의 숨결과 의도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실용적인 건물에 불과하잖아요. 건축은 (건축가의) 의도를 공유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영화는 품이 많이 들어갔다. 무려 400시간에 달하는 과정을 1시간46분으로 압축해야 하는 고된 과정이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고통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말하는 건축가'는 건축에 대한 정 선생님의 신념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표현하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숭고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어요. 이번 영화는 현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영화적인 숭고함을 찾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그 사람들의 처절한 생존 모습 속에 '숭고'라는 감정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건축에 대한 정 감독의 관심은 '말하는 건축가' 이전부터 존재했다. 돌이켜보면 그의 영화는 늘 공간이 중심이었다. 평단의 호평을 끌어낸 '고양이를 부탁해'(2001)는 인천 뒷골목이, 그에게 상업적으로 시련을 안겨준 '태풍태양'(2005)은 서울 잠실이 또 한 명의 주인공이었다.
"영화에서는 인물, 의상, 연기, 대사도 중요하지만, 주인공이 사는 동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인천은 단순한 배경 이상입니다.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어요. 그렇게 공간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니 건축과 도시로 관심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했죠."
"공포영화 만들고 싶어 감독 선택했다"는 정재은 감독 |
그러나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찍을수록 극영화에 대한 갈증은 목마르다고 한다. 완벽한 극적 구조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이 장면과 저 장면 사이에 이런 부분이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다큐멘터리는 여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장르입니다. 가공이 아니라 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죠. 영화는 내용상으로 완벽할 수밖에 없지만 다큐멘터리는 불완전하죠. 그래서 관객과의 대화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할 수밖에 없어요."
정 감독은 언젠가 완벽하게 극을 통제할 수 있는 공포영화 한 편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언젠가 호러판타지나 SF 호러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공포영화가 가장 영화적이라고 생각해요. 극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장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