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실종-무능한 국회, 편법만 난무
“XX 무능한 국회, 꼴도 보기 싫다”라는 국민원성이 자자한 가운데 여야 원내지도부는 11일 선거구 공백 상태가 장기화된 데 대해 “엄중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미등록 예비후보자의 등록 신청을 허용하고 △모든 예비후보자가 정상적인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권고한 게 전부였다. 이는 대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중앙선관위는 이날 여야 권고와 무관하게 전체회의를 열어 이를 허용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경우 예비후보자들의 반발 등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중앙선관위는 선거구 실종 직전인 지난해 12월 30일 여야에 조속한 선거구 획정을 촉구하며 선거구가 사라지는 이달 1일부터 예비후보 신규 등록을 보류했다. 그러나 선거구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예비후보 등록을 계속 보류할 경우 ‘선거운동의 기회 보장’이란 헌법적 가치가 훼손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1일 이후 8일까지 등록이 보류된 예비후보자는 12명이다. 하지만 선거구가 없는 상태에서 선거구별로 예비후보자의 등록을 받는 건 엄연한 ‘편법’이다. 여야의 직무유기로 편법이 또 다른 편법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중앙선관위 이인복 위원장은 이날 성명서에서 “초유의 혼란 상황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고 여야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중앙선관위 산하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의결 요건(3분의 2 이상) 등 제도적 문제로 ‘식물위원회’가 됐다”며 “국회는 지금이라도 제도적 문제를 신속하게 개선해야 한다. 개선되지 않으면 선거구획정위를 중앙선관위 산하에 둘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선거구획정위원장인 김대년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의 전격 사퇴에 이어 중앙선관위가 획정위에서 손을 떼겠다는 ‘최후통첩’인 셈이다. 이날 중앙선관위 결정에 따라 12일부터 다시 예비후보자 등록이 가능하다. 예비후보자가 되면 선거사무소를 설치하고 간판이나 현수막을 이용해 자신을 홍보할 수 있다. 어깨띠 착용과 명함 배부도 가능하다. 한 종류의 홍보물을 만들어 선거구 가구수의 10% 이내에서 발송할 수도 있다. 다만 선거구 자체가 모호한 상황에서 이 규정을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규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