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아름다움은 ‘진정성’, 쇼팽 콩쿠르 우승자 ‘윤디 리’ 대형 사고 <기자수첩>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반열에 우뚝 선 자랑스러운 조성진이 피아노의 노벨상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해 아직도 그 감동이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클래식 음악계에 여운을 주고 있는 가운데 2000년 쇼팽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당시 18세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던 중국인 피아니스트 윤디 리가 지난달 3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호주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 실수를 연발한 끝에 연주가 중단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조성진이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한 그는 1악장 초반부터 불안정한 속주를 보이다가 오케스트라 템포를 따라가지 못하고 박자를 맞추지 못했다. 결국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천재라 칭송 받아왔던 중국 피아니스트 윤디 리와 지휘자는 짧게 상의한 뒤 공연이 멈춘 소절의 시작 부분으로 되돌아가 겨우 1악장을 마쳤다. 객석에서는 격려의 박수가 나왔지만 일부 관객은 “이런 연주에 박수를 쳐야 하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선 앙코르 요청도 없었다. 음악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진정 황당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음악평론가 장일범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프로 연주자에겐 보기 힘든 ‘대형 사고’다. 정진하지 않는 자에게 퇴보는 따라온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혹평을 남겼다. 공연 뒤 예정됐던 사인회도 취소한 윤디리는 호텔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기획사인 세나코리아 관계자는 “(윤디 리로부터) 공연 실수와 관련한 말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이날 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익살스러운 표정의 사진과 함께 핼러윈 파티를 하러 간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는 “사과 한마디 없이 핼러윈 업데이트나 해 더 욕을 먹는다” “환불 요청하고 싶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이 공연의 티켓 가격은 최고 25만 원이었다.
새삼, 진정한 예술혼(藝術魂)이 무엇인지 보는 이나 연주하는 이나 되돌아보게 만든 사고였다. 조성진의 연주와 이 사고가 대비되는 가운데 한국 뿐만 아니라 글로벌 음악계에 경종을 울려주는 일대사건이었다. 음악 뿐만 아니라 문학, 미술 등 예술의 내용이 어떻든 간에 그 예술을 진행하고 표현하는 예술가의 정신, 혼, 감상문화가 무엇인지도 되돌아볼 일이다. 그 예술표현의 내용이야 예술의 분야, 장르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진실성이고 그 내용을 표현하는 예술가의 피와 땀, 즉 노력이고 장인(匠人)정신, 진정성 아닐까?
진정성이 흠뻑 베여 있는 그림, 글, 음악연주야 말로 사람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준다. 윤디 리를 욕할 것이 아니라 표절이 난무한 신경숙, 남진우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문화 팬들도 진정 자신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진정성이 없는 예술은 한같 어설픈 허영이고 폼이며 사기일 뿐이다. 아름다움이 아니라 추함의 결정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21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최종 심사 결과 발표 전 프레데릭 쇼팽 협회와 한 인터뷰에서 "쇼팽 콩쿠르는 어릴 적부터 꿈이었고, 드디어 그 꿈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쇼팽의 작품에 대해 "기품있고, 극적이고, 시적이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악"이라며 "결선에서 많이 긴장했지만, 이번 콩쿠르에 참가하게 돼 기뻤고, 또 즐겼다"고 털어놓음으로써 자신이 쇼팽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어느정도인지도 짧지만 솔직히 말했다.
조성진은 "콩쿠르 준비를 위해 한동안 '쇼팽'만 연주했다"면서 "몇 년에 걸쳐 한 작곡가의 작품만 연주하면 지루할 수도 있지만 쇼팽을 연주하면서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쇼팽의 음악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고 진솔담백하게 설명했다. 이어 "나는 피아니스트의 삶을 사랑한다"며 "피아니스트로 사는 데 특별히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지만, 진정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겸손히 덧붙였다.
폴란드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인 프레데릭 쇼팽을 기려 1927년 시작된 쇼팽 콩쿠르는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음악 콩쿠르로 꼽히는 최고 권위의 대회다. 쇼팽의 고향인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5년에 한 번씩 열린다. 16∼30세의 젊은 연주자들이 쇼팽의 곡만으로 실력을 겨룬다. 17회를 맞는 올해는 예선에 참가한 27개국, 160명 가운데 20개국, 78명이 본선에 올랐다. 이 가운데 조성진을 비롯해 3차에 걸친 경연을 통과한 8개국, 10명이 결선에서 경쟁했다. 심사위원단의 결선 최종 심사가 4시간 넘게 계속되면서 한 때 우승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 조성진이 1위를 거머쥐었다.
윤디리의 엉망연주와 대비되는 조성진의 연주가 1등을 한 까닭은 아무리 그의 연주를 감상해도 그의 쇼팽곡과 음악에 대한 사랑의 진정성이 표현하는 아름다움 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