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교전략 열받네,,,우리정부 신중모드
일본, ‘한국 건너뛰기’ 외교적 종속변수 취급
일본이 외교 무대에서 한국무시 전략으로 ‘건너뛰는’ 듯한 모습이 최근 잇달아 감지되고 있다. 일본은 미·일 동맹 강화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면서도 최근엔 중국과도 관계 개선에 나서 격한 갈등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외교 전략틀에 기초한 일본은 과거사 문제로 관계 회복이 쉽지 않은 한국을 ‘종속 변수’로 축소 취급하는 듯 하고 있다. 그 ‘바로미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민간 자문기구인 ‘21세기 구상 간담회’가 지난 6일 발표한 종전 70주년 기념 담화(아베 담화) 보고서다. 오는 14일 발표될 예정인 아베 담화 내용은 이 보고서의 내용을 기초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일본이) 만주사변 이후 대륙 침략을 확대했다”고 인정한 반면, 한반도 식민 지배에 대해서는 “1930년대 후반부터 가혹해졌다”고만 했을 뿐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자체에 대해서는 가치평가를 내놓지 않았다. 이러한 보고서 내용은 한국 입장에선 ‘퇴행’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무라야마 담화’와 ‘고이즈미 담화’ ‘간 담화’ 등 과거 일본 총리 담화에서 한반도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 입장이 빠짐없이 담겼기 때문이다. 과거 일제 침략의 대상이 중국이었던 반면 식민지배의 대상은 한국이었다는 점에서 보고서가 중국 편향적인 시각을 담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14일 발표할 담화에서 ‘침략’ ‘사죄’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데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과거내각의 역사인식 계승을 중시할 뿐 개별 문구에는 개의치 않겠다는 중국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아베 총리가 담화 내용과 관련해 중국의 눈치를 더 살피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런 상황은 한·일 관계가 최상이던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할 때와 정반대인데 당시 선언문에는 ‘식민 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라는 표현이 포함돼 한반도 식민지배를 사죄하는 일본정부 최초의 공식입장 표명으로 평가됐다. 직후 중국은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방일 시 ‘한·일 공동선언’과 동일한 수위의 표현을 일본에 요구했으나 “한국과 중국은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일 아세안안보포럼(ARF)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한·일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아베 담화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당부에 “전쟁 반성 및 평화국가로의 길을 강조할 것으로 본다”고 원칙적인 답변만 내놓은 것도 이 같은 맥락과 무관치 않다. 한·일은 지난 6월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 정상이 각국 대사관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교차 참석하는 등 관계 회복의 계기를 맞았었다. 직후 일본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를 놓고 격한 외교전을 벌이면서 추가개선의 모멘텀을 많이 상실한 상태로 보인다.
“아베 최종 결심 지켜볼 것”--우리정부 신중
“일단 지켜봐야죠. 아베 총리의 최종 결심만 남은 상태니까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와 관련한 전문가 자문기구 보고서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7일 이렇게 말했다. 전날 이 보고서가 나온 직후 외교부는 “보고서는 한일 관계의 선순환적 발전을 도모하려는 한국의 노력에 역행하고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일본 정부의 공언과도 배치된다”고 비난했다.
우리정부는 일본이 아베담화의 주요골격을 다 짜놓은 상태에서 핵심요소에 대한 결정만 남겨놓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핵심 관건은 ‘사죄’ ‘침략’ ‘반성’ 등 표현 수위다. 당국자는 “담화의 내용을 보고 냉정하게 평가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을 잇달아 만나는 만큼 한국이 역사 문제에 과잉 반응하는 모습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는 계산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보수지인 요미우리신문이 7일 ‘사죄가 포함돼야 한다’고 밝히는 등 이례적인 분위기도 나오고 있어 막판 반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당초 우리정부는 한일수교 50주년이 되는 6월 22일이 양국 관계 개선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양국 정상이 상대국 수도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하는 방안도 한국이 먼저 제안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 난제는 당분간 제쳐두고 우호적 분위기부터 형성하면 아베 담화, 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라는 긍정적 메시지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7월 초 일본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가 한일 간 새로운 갈등 요소로 부각돼 이런 구상은 일그러졌다. 현재로는 아베 담화와 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 기조에 대한 한일 정부 간 사전 조율이나 의견 교환조차도 어려워 보인다. 6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도 18분에 불과한 짧은 만남이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담화에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이 재확인되기를 기대한다”고 하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은 “총리가 대전(大戰)에 대한 반성과 평화국가로 걸어 나갈 것임을 강조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는 원칙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일의원연맹(회장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 상임간사를 맡고 있는 새누리당 심윤조 의원도 “아직 아베 총리의 담화문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며 “그동안 한일의원연맹 차원에서 일본 측과 여러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다음 주 발표 내용을 우선 지켜볼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권맑은샘 기자